잘못된 재판에 목숨 빼앗긴 조봉암
  •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 호수 289
  • 승인 2013.04.12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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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김남일 지음/한겨레출판 펴냄
‘잃어버린 진보의 꿈’이라는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 1899~1959)은 잘못된 재판(법)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지 52년 만인 2011년 1월20일 대법정에서 대법관 전원일치로 국가변란죄 무죄, 간첩죄 무죄, 불법무기소지죄 기소유예 판결을 받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반세기 동안 역사의 그늘에 갇혀 있던 조봉암이 다시 역사의 현장으로 소환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조봉암이 무죄를 확인받은 대법정에서 오랫동안 그와 함께 고초를 겪었던 동지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정한 세월 속에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침묵을 강요받았던 유족들은 이제 눈물조차 말라버려 재판정은 무거운 침묵만 길게 이어졌다.

 
당시 주심은 <기울어진 저울-대법원 개혁과 좌절의 역사>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참여정부 초기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등용된 ‘독수리 5형제(이홍훈·박시환·전수안·김영란·김지형 대법관)’ 중에서도 가장 개혁적 법관이라 할 수 있는 박시환 대법관이었다.

민주주의란 곧 ‘법에 의한 통치(rule of law)’를 의미하며 법치주의란 국가가 공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통치원리를 말한다. 오늘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시민 가운데 이런 사실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법치주의란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국가 권력을 구속시킴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원리로, 어떤 통치자도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제정한 법률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비관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정치제도이다. 민주주의는 국가 권력의 작용을 입법·행정·사법의 셋으로 나누어, 상호간 견제·균형을 유지시킴으로써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려는 삼권분립(三權分立)을 통해 유지된다.

삼권분립이란 말은 역설적이게도 사법권 역시 국가 권력의 하나라는 사실을 재확인해준다. 사법권은 선거를 통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행정권·입법권과 달리 유일하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법과 규범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사법권이야말로 그 어떤 권력보다 독립적이고 불가침적인 권위를 지닌다. 그러나 오늘날 ‘권력의 인격화’를 방지할 수 있는 가장 믿을 만한 제도로 고안되었던 법치주의가 자족적 권력으로 변질되고, 변질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현실은 법치주의의 아이러니다.

왜 사법 권력은 이토록 완강한가

해방 이후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법부는 권력의 하수인이었다는 지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사법부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제대로 사과한 적도, 성찰한 적도, 스스로를 개혁한 적도 없다. 정치권력도, 기업권력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시민 권력에 의해 견제와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사법 권력의 견제와 개혁은 왜 이토록 어려울까? 법조팀 기자로 잔뼈가 굵은 두 저자 역시 이 같은 의문을 품었고, 그들이 지난 10년간 사법 개혁의 시도와 좌절을 정리한 탐사보도(investiga– tive reporting)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나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다룬 책일수록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미있어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 이해하고 논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개혁이 진행되는 장면은 조자룡이 적진을 돌파해 유비의 자식을 구출하는 대목만큼 흥미진진하고, 개혁이 좌절되는 대목은 관우가 육손의 계략에 빠져 목숨을 잃는 장면만큼 서글프다. 어쩌면 우리 사법부가 원래 그런 곳이었는데 나만 몰랐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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