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면서 마음속에서 영 떠나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었다. 선관위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지 않은지 의심되는 새누리당 지지 사무실을 급습했을 때마다 쏟아져 나왔던 ‘박근혜 임명장’의 정체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우등상장처럼 붉은 표지의 케이스에 들었던 이 물건이 전국 도처의 수상쩍은 사무실에서 쏟아져 나왔다. 압수된 것만 수천 장에 달하니 실제로 뿌려진 양은 적게 잡아도 그 수십 배에 달했으리라고 추측해도 무난하리라.

밑도 끝도 없이 박근혜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중앙위 본부 명의로 무슨 무슨 대책위원, 행복위원, 청년위원 등 다채롭기 짝이 없는 직책을 주겠다고 되어 있던 이 임명장은 무엇에 쓰는 물건이었을까. 당시 여러 기사를 뒤져봐도 석연치 않았고, 나중에 선관위나 수사기관에서도 별 말이 없어 영 께름칙했다.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일을 발견하면 마음속에 계속 담아 두는 것이 오래된 직업 근성이다.

이렇게 물음표를 간직하면 신기하게도 어딘가에서는 작은 실마리나마 발견하게 마련이라고 현장 취재 경험은 가르친다. 이번에도 그랬다. 힌트는 근래 흥미롭게 읽는 중인 〈안나와 로테〉(푸른숲, 2012)라는 소설에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로 꼽히는 테사 데루가 쓴 이 책은 어려서 가정 사정 탓에 헤어져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각각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노인이 돼서야 만난 쌍둥이 자매 얘기를 다뤘다. 네덜란드에서 목숨을 걸고 유대인을 숨겨줬던 동생 로테는 히틀러의 만행을 묵인했던 독일 국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온 언니 안나에 대한 혐오감을 지울 수 없어 괴로워한다. 반면 안나는 콧수염을 기른 그 멍청한 남자 밑에서 제정신인 독일 사람들이 어떤 불구덩이와 칼산을 통과해왔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비난만 퍼붓는 동생이 원망스럽다. 소설은 두 사람이 진정을 담아 각자의 삶을 털어놓으면서 사랑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너도나도 글을 잘 써야 하는 시대

내가 찾던 해답의 유력한 용의자는 안나의 회상 속에 있었다. 독일 국민에게 영원히 씻을 길 없는 상처를 안겨준, 히틀러가 합법적인 투표에 의해 총통에 오르고 의회를 거치지 않고 법을 제정할 권한까지 거머쥔 그 즈음을 회상하며 안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네가 아무것도 못 가진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면 넌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다른 뭔가가 필요할 거야. 히틀러는 바로 그걸 교묘하게 이용했던 거지. 그 조그만 남자는 사람들에게 임무와 지위를 주고 칭호를 부여했어. 구역 관리소장, 그룹 리더, 지방 사령관. 그런 체계를 만들었기에, 그들은 명령을 내려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를 실행에 옮길 수 있었어.”

안나의 증언에 따르면 히틀러 시대에서만큼 임명장이 남발된 예는 없었다. 코흘리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감투를 쓰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다. 제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1차 대전에서 패배해 천문학적인 배상금에 짓눌려 미래를 포기했던 독일의 힘없는 사람들은 바로 그 완장에서 희망을 찾았다.
박근혜 대통령 정부가 앞으로 히틀러의 제3제국을 닮아가리라고 경고하는 쪽으로 이 글이 흘러가리라고 짐작한다면 오산이다. 이 미스터리의 결말은 아직 미완성이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 참모들이 진지하게 히틀러의 선거 전략을 차용했는지, 집권 후에도 그 통치 방식에서 교훈을 얻으려 할지 판단하려면 아직도 더 찾아야 할 단서가 많다. 이 추리를 끝내려면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번 주에 이 얘기를 꺼낸 까닭은 단지 글 쓰는 방식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기묘한 시대를 살아간다. 지식과 정보를 활자로 표현하는 인쇄매체는 급속히 쇠락해 가는데 그 주요한 수단이었던 글쓰기는 거꾸로 무게를 더해간다. 책은 점점 덜 팔리고, 유명 작가가 아니면 밥 먹고 살기가 갈수록 고달파지는데 사람들은 글쓰기에 목말라한다. 종이 책의 종말을 재촉하는 인터넷 시대에 글쓰기가 가장 요긴한 소통의 수단으로 떠오른 것은 지독한 역설이다.

무선통신은 전업 작가나 출판인과 같은 전문가의 손에서 글쓰기를 해방했다. 사람들은 전화통을 붙들고 소리 지르기보다는 문자 메시지를 통해 말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 있는지 여실히 깨닫는다. 하지만 동시에 문자 메시지 한 줄에 자신의 교양과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날 것을 알기에 사람들은 고민한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글쓰기는 괴력을 발휘한다. 공들여 쓴 이메일이 중요한 거래의 성패를 좌우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이런 시대 흐름 덕에 억지로나마 오랫동안 글을 써온 나 같은 사람도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강의할 기회가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수영이나 테니스를 익히듯이 글쓰기를 배울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서점에는 글쓰기 책이 벌써 많이 나왔지만 그대로 따라 해서 효과가 있을지 내 강연 내용만큼이나 의심스러운 것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 수중에 넣게 된 책이 〈미스터리를 쓰는 방법〉(모비딕, 2013)이다. 무려 30년도 더 전인 1978년 미국추리작가협회가 펴낸 책이다. 모비딕 편집자는 지금도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리라고 판단한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같다. 이 책을 엮은 이는 근래 몇 년간 미드(미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대세 중 하나인 경찰 수사물 분야를 개척한 유명작가 로렌스 트리트이다. 이 책에는 미국 추리작가협회에 속한 작가들의 지혜와 경험이 응축돼 있다.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그들은 직업상의 비밀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로렌스 트리트는 머리말에서 장르를 막론하고 모든 작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그 때문에 책을 읽은 독자에게 욕먹었을 것 같지는 않다.

추리작가, 글 배우기 적합한 모델

작가 중에서도 프루스트는 엄청나게 복잡한 문장으로 인간의 신경체계를 닮은 문단을 만들기로 유명하다. 윌리엄 포크너는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문체로 불확실성과 망설임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하지만 추리작가가 그런 식으로 썼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다. 그들은 문장에 짐을 싣지 않고 경쾌하게 쓰려고 기를 쓴다. 그런 점에서 추리작가야말로 보통 사람이 배우기 적합한 모델이다. 이 책에는 추리소설에 관심이 많거나 추리소설을 쓰고 싶은 작가 지망생에게 유익한 내용이 많지만 여기서는 글쓰기 요령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글쓰기에 수학문제처럼 정답이 있을 리 없다. 따라서 설문이나 인터뷰에 응한 작가 중에는 매우 독특한 방식을 제시한 이도 있지만 다수의 생각은 대체로 한 지점을 향한다. 

‘어?’ 혹은 ‘아하!’와 같은 내면의 의문이나 깨달음에 집중하라는 조언이다. 거기서 모든 글쓰기는 출발한다. 물론 그런 아이디어는 당시로서는 의미를 알 수 없거나 너무나 하찮아 오랫동안 마음속이나 메모장에서 잠을 잘 수 있다. 그러다가 불쑥 새로운 놈이 나타나 앞서의 생각과 결합해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이렇게 처음의 아이디어는 살을 붙여간다. 때가 되면 이것을 장르의 형식에 맞게 다듬어내는 것이 글이다. 내면에서의 화학작용이 격렬할수록, 새로운 것을 붙여가려는 작가의 노력이 치열할수록 독창성은 돋보인다. 이 책에서는 작가가 글을 쓰기 전에 제목을 먼저 정하는지, 이야깃거리를 주로 어디서 얻는지, 대화는 어떻게 구성하는지, 글을 쓰려는 이들이 모니터 앞에서 만나는 세세한 문제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하는 데 유익하다. 

로렌스 트리트의 말대로 책장을 넘기며 기쁨을 느낀다면 당신은 이미 글쓰기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그렇다면 이 지긋지긋하게 고통스러운 세계에, 하지만 생각 있게 사는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한다.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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