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라남도 여수에 다녀왔다. KTX를 타고 세 시간 남짓 달려 여수 엑스포역에 도착했더니 여기가 과연 내가 알던 그곳인가 싶었다. 낯설다기보다는 지나치게 낯익었다. 대형 조형물과 멋을 부려 지은 고층건물 사이로 널찍한 포장도로가 사방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서울 하고도 강남의 어느 길모퉁이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항구 도시 특유의 비린내를 쓸어내버려 여기 사는 사람들은 행복해졌을까. 나날이 인구가 줄어가는 여수가 앞으로 이런 과잉투자를 감당할 흥행을 지속할 수 있을까. 다분히 기자다운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갑자기 여수에 가게 된 것은 〈9시의 거짓말〉(시사IN북) 저자 KBS 최경영 기자가 모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어서였다. 파업과 징계 기간에 본인보다도 부모가 얼마나 더 가슴을 졸이는지 잘 알기에 최 기자 모친

마지막 가시는 길에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한동안 못 본 최 기자의 손도 잡아보고 싶었다.

통통했던 최 기자의 얼굴은 반쪽이었다. 좋지 않은 일은 혼자 오는 법이 없다고 했던가. 그는 내 손을 붙들고 바쁠 텐데 뭐 하러 먼 길 왔냐고 나무라더니 곧 소리를 죽여 조만간 회사를 그만두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돼 오히려 잘되었다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마음이 어지러웠다. 기차를 타기 전 잠깐 오동도에 들러 이제 막 꽃봉오리를 터뜨리기 시작한 동백을 가슴에 담아왔건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최 기자가 KBS에서 얼마나 신명나게 일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타고난 기자이다. KBS에서 처음으로 탐사보도의 영역을 개척한 주역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속한 탐사보도팀은 계속 특종을 터뜨려 사내외에서 모두 24차례 상을 받았다. 삼성언론상까지 받아 상금액만 2억원을 넘기는 진기록을 세웠다. KBS가 매체 신뢰도 조사에서 모든 언론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게 만든 공로자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상황이 돌변했다. KBS의 봄을 뒷받침했던 정연주 사장을 경찰 특공대까지 동원해 쫓아내려는 사태가 일어나자 여기에 항의하는 사원행동에 가담한 것이 죄라면 죄였다. 사내 탐사보도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는 졸지에 스포츠 중계팀으로 발령을 받았다. 자의 반 타의 반 1년여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 KBS 새노조 공추위 간사를 맡았다. 그러다 파업기간의 언행을 문제 삼아 회사가 일방적으로 해임 통보를 하는 바람에 이번에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된 것이다.

KBS 탐사보도를 개척한 그 기자도

최 기자뿐 아니라 사원행동에 참여했던 KBS의 400여 명은 거의 예외 없이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겪는 중이다. 오랫동안 경험과 전문 식견을 쌓아온 부서에서 뿌리를 뽑혀 엉뚱한 부서나 지방으로 쫓겨 다니는 신세다. KBS만이 아니라 낙하산 사장이 투하된 모든 언론사에서 제정신 박힌 기자와 PD는 비슷한 신세이다.

열정을 가지고 일하던 젊은 언론인들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는 것도 모자라 생존권까지 박탈하는 나라가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분명히 대규모 국가 폭력이며, 엄중한 헌법과 인권 유린 사태라고 새삼 깨달았다.

여수에 다녀와 집어들고 단숨에 읽어내린 책이 암살당한 러시아 기자 안나 폴릿콥스카야가 쓴 〈더러운 전쟁〉(이후, 2013)이다. 부끄럽게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녀를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그녀에 관한 자세한 뉴스를 접하기 힘들어 이름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정도였다.

1958년 8월생, 개띠.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생일이) 빠른 1959년생인 나와 같은 학년을 다녔을 그녀는 벌써 6년도 더 지난 2006년 7월 저세상 사람이 됐다. 〈더러운 전쟁〉은 그녀가 죽기 전까지 일했던 러시아 반체제 언론 〈노바야 가제타〉(그녀 역시 탐사보도팀에서 일했다)에 격주로 연재했던 칼럼을 지인들이 묶어서 펴낸 책이다.

그녀는 모스크바의 자택 엘리베이터에서 모두 네 발의 총알을 맞았다. 범인은 먼저 관자놀이를 쏜 다음 쓰러진 그녀의 가슴에 두 발, 어깨에 한 발을 더 쏘았다. 러시아 검찰의 추정에 따르면 이 올곧은 기자의 몸에 악의에 찬 폭력이 저질러지는 데는 채 30초가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취재로 정신없이 바쁘면서도 병에 걸린 어머니와 임신 중인 딸을 돌보고 있었다.

러시아 정부는 범인을 잡는 데 내내 소극적이다가 국제사회의 비난이 빗발치자 2011년 체첸 반군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 루스탐 마흐무도프를 살해 용의자로 체포했다. 러시아 검찰은 암살의 배후는 없다고 발표했지만 수사는 허점투성이였다. 확증은 없지만 그녀를 아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푸틴 대통령 일당이 그녀의 입을 막으려고 살해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럽의회 기자들은 브리핑 룸에 안나 폴릿콥스카야 룸이란 이름을 붙여 그녀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2000년 이후 기자 36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분쟁지역 여성 활동가를 지원하는 ‘전장에 선 여성들’이 그녀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안나 폴릿콥스카야 상’ 첫 번째 수상자인 그녀의 동료 나탈리아 예스테미로바 역시 2009년 7월15일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분쟁지역 돌아다니며 난민 고통 전해

그녀의 죽음에는 첩보 소설에나 나옴직한 또 다른 암살이 얽혀 있다. 그녀가 죽고 몇 달 뒤 영국 런던에서는 알렉산드르 루트비넨코라는 전직 KGB 요원이 독극물에 중독돼 죽었다. 그를 부검한 영국 경찰은 아연실색했다. 그의 몸에서 이른바 핵주스로 알려진 폴로늄 210이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입자 가속기나 원자로에서 극히 미미한 양이 추출되는 폴로늄 210은 평소에는 손에 들고 다녀도 해가 없지만 인체에 들어가기만 하면 작은 핵폭탄으로 변하는 치명적인 물질이다.

영국 경찰은 그의 암살 배후에 러시아 정부가 있지 않은지 강하게 의심했고, 그로 말미암아 영국과 러시아의 외교관계는 몹시 불편해졌다. 푸틴이 체첸 침공의 구실로 삼았던 모스크바 폭탄 테러가 러시아 정보국의 자작극이었다고 폭로하고 영국에 망명 중이었던 루트비넨코는 독살당하기 직전 안나 폴릿콥스카야 암살 배후를 밝힐 결정적인 단서를 손에 넣으려고 백방으로 뛰던 중이었다.

폴릿콥스카야는 체첸과 그 주변의 러시아연방 내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푸틴 집권 이후 테러와의 전쟁으로 뿌리 뽑히고 참혹한 고통을 겪는 난민을 주로 취재했다. 폴릿콥스카야는 모스크바에서 정부 관계자나 정보원으로부터 주워들은 얘기만 쓰는 다른 기자들과는 달랐다. 철저하게 직접 눈으로 보고 겪은 것만을 적었다.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주려고 엄마의 잘린 다리를 쉬지 않고 긁어대는 여섯 살 난 딸, 조각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며 울부짖는 소녀, 이웃을 구하려고 비행기 총격을 몸으로 막은 중년 여성, 미래에 대한 어떤 꿈도 버린 젊은이들…. 그녀의 글에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차마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녀는 러시아 정부도 반군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 편이었다. 목격자이며 폭로자인 동시에 구원자이기도 했다. 취재비를 아낌없이 털어 난민을 도왔고 모스크바에 돌아와서는 기부금을 모아들고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녀 눈에 체첸 전쟁은 푸틴과 그를 따르는 소수의 정치 야욕과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조작된 미친 짓이었다. 이 미친 장단에 놀아난 러시아 국민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죄 없는 수십만 생명이 망가지는 걸 방관하는 기이한 풍경이었다. 그녀는 이 광기가 앞으로 러시아 국민의 목숨을 노리는 칼날이 돼 돌아올 것을 두려워했는데 자신이 먼저 제물이 되고 말았다.

세상이 변화할 때 최전선에 선 양심 있는 기자는 생태계의 깃대종과 같은 존재이다. 그런 이들이 박해받는다는 것은 그 사회의 건전성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증거다. 옮긴이인 주형일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말대로 이것이 과연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겠는가. 기자의 양심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민은 민주주의 잔해 속에서 신음할 수밖에 없다고 이 부드러운 표정의 여성, 폴릿콥스카야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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