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식 사지선다형 시험에 익숙한 학생은 주관식 문제가 어렵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아파트나 원룸의 획일적인 주거 방식 중에서만 답을 찾던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 해답을 찾는 과정이다. 그런데 자신의 삶의 방식과 조건을 일일이 고려해 주관식 시험지를 채워나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바로 조립식 주택 혹은 모듈러 홈이 적절한 대안이다. 제한된 사지선다형보다는 선택 폭이 넓고, 그렇다고 완전한 주관식 서술형 문제보다는 막막하고 갑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형 모듈러 주택의 소재로 선박용 화물 컨테이너를 떠올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컨테이너는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주택의 대안으로 단골 메뉴에 들긴 하지만 마지막 순서로 떠올릴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을 뒤집자. 철은 콘크리트, 목조와 함께 수많은 건물의 기본 구조체 구실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으며 수출입을 위한 운송용 컨테이너는 그 자체로 뛰어난 구조체이기 때문에 건축물로 전환하기에 적합하다. 주거 공간으로 변신이 쉽다는 것은, 집의 틀인 구조와 외피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줄여서 경제적인 주택 마련의 밑거름을 제공한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40대 초반의 건축주 부부가 컨테이너를 소재로 한 네모하우스 집짓기 여정을 시작했다. 건축주는 전남 목포 시내의 아파트 생활을 끝내고 어린 두 자녀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삶터를 마련하고 싶었다.

직장이 있는 시내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대지는 영암군의 작은 전원 마을 끝자락이어서 주변이 산과 들로 채워져 있었다. 100㎡ 미만의 규모에 2인에서 4인 가족이 머물 수 있는, 집짓기 기간은 한 달에서 두 달가량으로 짧고 위치는 도심에서 가까운 교외지 정도 등의 조건에 만족하는 집으로 설계했다.

컨테이너 문 다양하게 활용

스틸하우스가 건물의 뼈대를 철재로 세우듯 네모하우스는 컨테이너 프레임을 활용한다. 국제 규격에 따라 컨테이너 모델별로 크기가 일정하고 구조와 방수 등의 성능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있다. 여기에 약간의 보완-결국은 내벽이라든가 외벽이라든가 바닥 난방이라든가 하는 건축적 보완이긴 하지만-을 더하면 컨테이너 고유의 볼륨을 가진 기다란 육면체의 입체감을 드러내면서 디자인에 대한 개성까지 연출할 수 있다. 이 건축주 주택의 경우가 기본적으로 컨테이너 세 개를 쌓아 올린 모습으로 내부 공간을 만들었는데 아래쪽에 놓아둔-쌓거나 붓거나 세운 것이 아닌- 두  컨테이너의 간격을 띄어놓고 그 사이 빈 공간 위를 나머지 하나의 컨테이너로 덮는 형태다. 컨테이너 세 개의 사이에 한 개 분량의 실내 공간을 보너스로 얻게 되는 간단한 블록 쌓기의 원리를 통해 전체적인 모습의 방향을 잡았다. 여기에 각 직육면체의 조형들을 들여넣고 밀어내서 현관이 있는 진입부와 2층에 뚜렷한 입체감을 더했다. 2층의 돌출된 부분은 그 아래 현관에 비를 피할 수 있게 하는 차양을 제공하고 반대쪽 2층 자녀의 방 끝에는 발코니를 만들어준다. 또한 내부 공간 구성 면에서도 2층을 균등하게 삼등분할 수 있도록 해 중앙 부분에 계단을 둘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을 마련해준다. 외부 디자인과 내부 공간이 연계되어 공간을 알차게 쓰는 실용성도 높아졌다. 


수출용 컨테이너의 또 한 가지 장점은 한쪽 끝에 달린 문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문을 어떤 장치로 활용하는가에 따라 열린 집의 개념이 실현될 수 있다. 이 문을 식탁과 연계하면 아담한 테라스를 앞에 두고 저녁을 즐길 수도 있고, 이 문을 현관과 연결하면 날씨가 좋은 날 이 문을 열었을 때 실내에 탁 트인 개방감을 선사한다. 닫으면 벽이 되고 열면 창이 되어 때때로 안과 밖의 변화에 적응하고 마치 집이 숨을 쉬는 듯 환기를 돕는 것이다. 

2층 양쪽 끝 두 개의 방 중 하나는 가족실이나 아이들 놀이방으로 쓸 수 있으며, 아래층 상부는 테라스 공간으로 이용해 여러 용도의 외부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비용 문제로 미뤘다.

내부 공간들도 규격화된 크기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합하고 또는 잘라내는 과정을 통해 거실과 주방 그리고 안방은 필요한 만큼 확대시켰다. 벽·바닥·천장을 잘라내서 필요한 공간들을 조립해 나가는 방식은 건축 자재들을 더해가면서 완성시키는 일반적인 소조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다. 이미 정해진 사이즈들의 조합을 통해 수평적으로 혹은 수직적으로 확대하고 조절해 거실과 식당, 주방에 여유를 주고 그 사이에 계단, 2층까지 뻗어 올라가는 책장, 그리고 계단 아래 어린 자녀를 위한 작은 틈새 공간을 만들었다. 실내에서도 외부에서도 공간들이 서로 연관되어 연속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네모하우스가 들어설 대지 면적은 435㎡이다. 1층 면적 75.74㎡, 2층 22.85㎡에 들어간 총건축비는 1억2000만원(현장 운송, 설치비 별도)가량이다. 창호 시스템, 마감재 등의 사양에 따라 여기에서 10~15% 늘어날 수 있다. 같은 면적의 주택 짓기에 비하면 아주 경제적이다.

저렴한 건축비 외에 이동성과 장소에 대한 유연성도 네모하우스의 장점이다. 제작 장소가 지역의 조건에 영향을 덜 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제작 이후 땅에 앉는 과정이 여러 면에서 주택의 품질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더욱이 네모하우스는 설계가 끝나고 제작이 한창 진행 중인데 행정절차상의 이유로 이미 정해놓은 집터를 변경해야 했을 때 그 덕을 톡톡히 보았다. 일반적인 건축 방식이라면 많은 시간과 수정이 필요할 과정인데 네모하우스는 일정과 추가 비용 없이 가능했다. 5대양 6대주를 오가며 치열한 무역과 운송의 산업현장을 누비던 컨테이너가 이제는 한국의 전원마을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상품 대신 한 가족의 행복한 삶과 성장을 담아내는 안식처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집이다’를 외치며.

기자명 강주형·이강수 (생각나무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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