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등산객 같다. 성균관대 해고 강사 류승완 박사(45)는 두꺼운 패딩에 털모자와 목도리로 중무장한 채, 총장실이 있는 ‘600주년기념관’ 건물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가 농성 중이란 걸 알았다. 농성을 시작할 때부터 길렀다는 수염이 덥수룩했다. 그가 입고 있는 조끼에는 ‘삼성 회장 이건희씨는 빼앗아간 강의를 돌려다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2011년 2학기 성균관대 학부 강의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가 곧바로 취소 통보를 받았다. 강사들의 강의 배정은 학과 교수들이 정하는데, 류씨의 경우 대학 본부로부터 거부당했다. 이유도 분명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2000년 학내 분규 당시 학생들을 배후 조종한 게 의심된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라고 류씨가 소명하자, 그 뒤에는 노조 활동이 우려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을 요구하며 여의도에서 장기 농성을 벌이는 김동애·김영곤 강사 부부를 도운 건 맞지만 강의를 배제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보다 류씨는 불경죄를 의심한다. 외부 학술지에 성균관대 총장이 주도한 국제학술대회의 발표 내용 가운데 일부 논리가 황도유학(일본의 식민 지배에 논리적 정당성을 준 친일 유학)과 비슷하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게다가 강의 시간에 성대 재단을 장악한 삼성그룹의 대학 운영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류씨는 대학 교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신분은 불안정한 ‘보따리 장사(시간강사)’ 처지를 대변한다. 그는 2011년 8월부터 삼성과 학교 총장, 상임이사, 이사장을 상대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가 유일하게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퇴근시간대인 저녁 6시에서 8시 사이다. 류씨는 이들이 퇴근할 때 옆으로 다가가 “내 강의를 돌려달라”고 말한다. 이것이 시위의 전부이다. 대부분은 묵묵부답, 가끔 ‘힘내시라’는 가벼운 말을 건넨다고 한다. 그는 칼럼을 기고하거나 시민단체에서 주관하는 강의로 생활을 버틴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손지은·이아인·김수민·배준용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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