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주요 외신은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한국에서 독재자의 딸이 당선했다”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를 접했을 때 가슴 속에서는 여러 복잡한 감정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부끄러웠다. 쿠데타로 헌정을 유린하고 18년간이나 장기 집권한 독재자의 피붙이에게 자유선거에서 표를 몰아준 나라의 국민이라는 게 무참했다. 악독한 인질범과 사랑에 빠진, 스톡홀름 증후군에 발목을 잡힌 희생자라도 된 듯한 착잡한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서방 언론이 괘씸하기도 했다. 지들은 뭐 잘났다고 남을 흉보는 거야, 라는 억하심정이 발동했다. 특히 미국이나 독일 언론이 거품을 물었다는 데 비위가 뒤틀렸다. 조지 부시를 두 번이나 대통령으로 뽑고, 히틀러를 총통으로 모시고 설설 기었던 주제에 남의 나라 일에는 입을 잘도 놀린다는 분한 마음이 들었다.

솔직히 고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 놓고 환호작약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마치 구정물 한 바가지를 끼얹은 듯 후련했다.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대개 외신의 평가에 아주 민감한 사람들이 아니던가. 남의 손을 빌려 약간의 보복을 한 듯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상처받았던 마음이 다소 힐링되는 느낌을 받았다.

기왕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으니 조금 더 껍질을 까보자.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가슴 속에서는 격렬하게 복수심이 들끓는 걸 느낀다.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진 가난하고 나이 든 사람들이 5년 뒤에는 더욱 궁핍하고 불행해져 헤매는 상상을 하며 미소 짓는다. 박근혜 당선자의 불통 리더십 탓에 온 나라가 결국 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저주를 퍼붓는다.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종합편성채널이, 그리고 그 모체인 조·중·동·매(조선·동아·조선·매일경제)가 누적된 적자를 이기지 못해 결국 망하는 상상을 한다. 방송사의 낙하산 사장들이 교통사고 같은 끔찍한 횡액을 당하는 걸 바라기도 한다. 마음이 자꾸만 사악하게 돌아가는 걸 의식하며 소스라치곤 한다.


복수심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치졸한 복수심은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나라, 민주적인 열린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준 책이 바로 〈블루 드레스〉(일월서각, 2012)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권과 맞서 싸운 전설적인 투사이며 새로운 나라의 헌법을 기초한 명판사 알비 삭스가 쓴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박근혜 당선자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독재가 정당해서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사람을 몰아가는 게 바로 독재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녀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보통 사람의 딸과 차별하는 짓이다. 연좌제를 적용해 월북자의 자녀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이유도 없이 전라도 사람을 공직에서 배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고문은 고문이고 차별은 차별이다. 거기에 악하고 선하고가 있을 수 없다. 박 당선자의 뒤에 붙어 따라다니는 무슨 무슨 공주라는 말에도 여성을 비하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이민 가려면 어느 나라로 가는 게 좋으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대답하기가 난감하다. 세계를 다 둘러봐도 정의의 시체가 뒹굴지 않는 곳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굳이 이민을 가야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남아공을 권하고 싶다. 본래 선진국이란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남아공이야말로 선진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남아공은 150년간의 노예제도와 300년간의 식민체제에 이어 1948년부터 1994년까지 반세기에 걸쳐 인종차별 체제인 아파르트헤이트를 겪었다. 다른 여러 나라처럼 빈부 격차가 극심하다. 국민 수백만 명(주로 흑인)이 혹독한 빈곤과 비참한 생활 조건에서 산다. 실업률은 높고 사회복지는 형편없다. 많은 사람이 깨끗한 물과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국제사회는 남아공을 주시한다. 이 나라가 인권과 환경 분야에서 다른 나라가 꿈만 꾸던 일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곧 민주주의가 만개하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진정한 열린 민주사회로 진행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했을 때만 해도 국제사회는, 남아공은 헌법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오히려 대량 인종 학살이 일어날 위험이 가장 큰 나라로 지목했다. 하지만 남아공 국민은 기적을 일궜다. 국제사회의 예상과 달리 인간 존엄성, 자유와 평등, 정의가 뿌리를 내린 사회로 변모했다. 그것은 남아공이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헌법과 헌법재판소, 그리고 알비 삭스와 같은 양심적인 판사들을 가졌기 때문이다.

남아공 헌법재판소의 이름난 판례들은 미국의 대법원 판사나 유럽의 대법관들이 자기들 법정에서 즐겨 인용할 만큼 권위를 갖게 됐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을 회사로 돌려보내지 않은 판례나 누리꾼을 처벌한 판례가 국제사회에서 조롱거리가 되는 나라.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보호하는 보수 일변도의 판례만 쏟아낸 헌법재판소장 후보를 가진 국민으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이 책은 저자가 14년간의 남아공 헌법재판소 판사 생활을 마친 뒤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며 강연한 내용을 담았다. 강연 원고만으로는 짜임새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그와 그의 동료들이 내린 판결문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 보완했다. 친근하고 이해하기 쉬운 강연과 엄숙하고 냉담한 판결문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저자는 교도소에 들어가 두 번이나 독방에 갇혔다. 처음에는 168일, 그 다음에는 3개월 동안 갇혀 있으면서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에 시달렸다. 몇 년 뒤에는 모잠비크에서 법률연구를 하던 중 조국에서 날아온 보안요원이 차에 설치한 폭탄이 터져 한쪽 팔과 한쪽 눈 시력을 잃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부 내에서 그는 백인이란 이유로 ‘백색 독소’라고 불렸다. 테러와 고문이라는 극적인 경험을 한 그는 투쟁에서 얻은 지혜를 판결에 녹여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래서 이 책에는 ‘법과 삶의 기묘한 연금술’이라는 부제가 붙었다(제목이 어째서 ‘블루 드레스’인지는 의문으로 남겨 놓겠다). 그는 삶의 경험을 진화하는 법 원칙의 프리즘을 통해 표현하려고 판결문을 27번이나 고쳐 써 비서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그의 책 처음부터 끝을 관통하는 정신은 ‘우분투’이다. 내 삶은 너를 통해서만 가치 있다는, 공생을 강조한 아프리카식 사고방식이다. 줄루족의 반투어로는 우분투이고, 소토족 언어로는 보토라고 한다. 합쳐서 우분투 보토 정신으로 통한다. 내 꿈이 아니라, 네 꿈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지향한다고 보면 맞다.

‘네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우분투는 해외로 망명했던 아프리카민족회의(최초로 흑인 정부를 세운 지금의 남아공 제1여당이다)를 지탱한 힘이었다. 테러를 혐오해 ‘알몸이 드러날까 바지춤을 붙들고 싸우는 조직’이란 비아냥을 들었으나 정의와 도덕을 잃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30년을 버텨냈다. 그동안 다른 운동조직은 사실상 모두 와해됐다. 이들은 지도자를 살해하려고 조직에 침투했다 체포된 정부 요원에 대한 고문을 금지했다. 형법과 유사한 행동강령을 만들어 조직원의 범죄를 처벌한 세계 유일의 투쟁조직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라는 큰 질문을 머릿속에서 지운 일이 없다. 그들의 적은 한 개인이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시스템이었다. 적의 방식으로 싸우던 동지들이 끔찍한 괴물이 돼가는 걸 신물 나게 보았다.

그래서 정권을 잡았을 때 너무나 자연스럽게 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들 수 있었다. 테러와 암살 혐의자를 재판 없이 처형하라는 여론의 압력에 결코 굴하지 않았다. 그 모든 역경을 이겨냈을 때 헌법재판소 판사들은 재판관이 된 것이 자랑스러워졌다. 가난한 자와 소수자를 위한 명판례가 쏟아져 나왔다. 그 고심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이 책을 읽는 큰 기쁨이다. 이 책은 복수심과 분노로는 절대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우리가 선고한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다.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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