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조사에서는 단연 〈닥치고 정치〉(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푸른숲)였다. ‘나꼼수 열풍’은 출판가에도 그대로 이어져 ‘나꼼수 4인방’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올해 출간된 주진우 〈시사IN〉 기자의 〈주기자〉(푸른숲)도 상반기에 베스트셀러 수위를 다투었다.

2012년 출판 편집자들은 어떤 책을 꼽았을까?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다. 이 책은 독일어로 된 원서를 번역한 책이다. 그래서 어떤 편집자는 이 책을 올해의 국내서 베스트 5 가운데 한 권으로, 어떤 이는 올해의 번역서 베스트 5 중 하나로 꼽았다. 한국인 저자가 쓴 번역서라는 특성상 두 응답을 합하면, 응답이 단연 많다. 〈피로사회〉가 ‘출판 편집자가 꼽은 2012년 올해의 책’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의 원서가 독일에서 출간된 후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한병철 교수의 작업을 조명하는 특집 기사를 내놓았다. 한국에서 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해 독일 출판사에서 꾸준히 저서를 출간해온 한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독일에서 주목받는 철학자로 떠올랐다. 서양철학의 언어를 구사하며 그 안에 동양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새로운 문화 비판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할 수 있다’는 게 최상의 가치가 된 성과사회.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라는 한 교수의 진단은 한국 사회도 비껴가지 못한다. 김수한 현암사 주간은 “〈88만원 세대〉가 청년층이 비정규직화하는 구조를 제목과 콘셉트로 사회적 의제화한 것처럼, 〈피로사회〉도 우리 사회를 무엇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의제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김 주간은 ‘현대사회의 피로에 대한 스케치’라고 부연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도 큰 호평

국내서로는 〈내가 읽고 만난 일본〉(김윤식 지음, 그린비), 〈욕망해도 괜찮아〉(김두식 지음, 창비),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전성원 지음, 인물과사상사), 〈사당동 더하기 25〉(조은 지음, 또하나의문화) 등이 많이 거론되었다. 〈내가 읽고 만난 일본〉은 원로 국문학자 김윤식 교수의 지적 여정기이자 사유의 자서전이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800쪽 가깝게 두꺼운 책인데도 마치 여행기처럼 금세 읽혔다”라고 독후감을 전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헨리 포드에서 마사 스튜어트까지 일상에 깊은 영향을 준 사람을 통해 사람과 도시, 삶의 변화를 관찰한다. 필자 전성원씨는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이며, 블로그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의 운영자로도 유명하다. 역사학자 한홍구가 “날 보고 별걸 다 기억하는 역사학자라 하지만, 전성원은 그런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꼼꼼한 디테일을 가졌다”라고 말한 것처럼 책의 구성력이 돋보이고 팩트가 디테일하다는 평이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다양한 지식을 끌어들여 논리를 펼쳐나간다. 첫 저작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괜찮은 필자를 발견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조은 교수의 〈사당동 더하기 25〉도 ‘한국에서 장기적으로 탐침한 논픽션이 드문데, 사당동의 변천사를 통해 빈민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길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와 〈사당동 더하기 25〉는 출판 편집자뿐만 아니라 인문·사회 분야 전문가 추천위원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이 밖에 국내서로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김상봉 지음, 꾸리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유홍준 지음, 창비),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최장집 지음, 폴리테이아), 〈현시창〉(임지선 지음, 알마) 등이 선정되었다.

〈미생〉(윤태호 글·그림, 위즈덤하우스)은 유일하게 꼽힌 만화책이다. “〈개그 콘서트〉가 시대의 텍스트이듯, 〈미생〉은 지금 대중문화에서 스토리텔링의 최전선.” “주변에서 ‘〈미생〉 봤어?’라고 제일 많이 확인한 도서.” 출판 편집자들이 〈미생〉을 ‘2012년 올해의 책’ 가운데 한 권으로 추천한 이유다.

 2012년의 번역서로는 〈유럽문화사 1~5〉(오숙은·이은진·정영목·한경희 공역, 뿌리와이파리)를 추천하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1800년에서 2000년까지 유럽인들이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해온 문화형식을 거의 총망라한 이 책은 한국어판 전체 분량이 2790쪽에 이를 정도로 대작이다.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예전에 새물결에서 나온 〈사생활의 역사〉 이후 간만에 나온 대작. 작은 출판사에서 이 작업을 해낸 것을 높이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번역 과정도 흥미롭다. 3년 반에 걸쳐 번역과 편집 작업을 했다. 각각의 전공 언어(러시아어,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를 가진 네 번역자는 각각의 전공 언어와 관심 분야를 고려해 각자가 맡을 분량을 나누었다. 장별로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한 장 안에서 소제목 단위별로 나누기도 했다. 각자의 초벌 원고를 모으고 편집부와 세 차례 워크숍을 통해 번역의 원칙과 기준, 편집의 기본 방침을 결정했다. 〈유럽문화사〉는 북스피어와 모비딕이 함께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 27권을 펴내기로 한 ‘세이초 월드’ 기획과 함께 출판인이 주목한 ‘올해의 기획’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콰이어트〉와 〈생각에 관한 생각〉은 저자의 인지도와 주목도가 높아 일찍부터 기대를 모은 책이다. 〈콰이어트〉(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RHK)는 요즘처럼 시끄러운 세상에서 오히려 내향적인 사람들이 조용히 세상을 움직인다는 통찰을 아인슈타인, 간디, 스티브 워즈니악 등 여러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일종의 내향적 리더십이 통한다는 뜻. 저자 수전 케인은 2012년 TED 강연에서 1500여 청중으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출간 이후 〈뉴욕 타임스〉 커버스토리로 다루어지는 등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생각에 관한 생각〉(이진원 옮김, 김영사)의 저자는 대니얼 카너먼. 2002년 심리학자로는 처음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심리학과 경제학을 융합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한 출판 편집자는 “해외 저작권사에서 저자가 이 책을 쓴다고 짧은 뉴스레터를 내보내고 나서 바로 국내 판권이 팔릴 정도로 유명한 필자다”라고 말했다.

실용서로는 〈1일1식〉(나구모 요시노리 지음, 양영철 옮김, 위즈덤스타일)이 꼽혔다. 한 시사 주간지가 특집 기사를 내보낼 정도로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올해의 번역서로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블러디 머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등이 복수로 추천되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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