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출판 편집자들은 어떤 책을 꼽았을까?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다. 이 책은 독일어로 된 원서를 번역한 책이다. 그래서 어떤 편집자는 이 책을 올해의 국내서 베스트 5 가운데 한 권으로, 어떤 이는 올해의 번역서 베스트 5 중 하나로 꼽았다. 한국인 저자가 쓴 번역서라는 특성상 두 응답을 합하면, 응답이 단연 많다. 〈피로사회〉가 ‘출판 편집자가 꼽은 2012년 올해의 책’이라 할 만하다.
‘할 수 있다’는 게 최상의 가치가 된 성과사회.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라는 한 교수의 진단은 한국 사회도 비껴가지 못한다. 김수한 현암사 주간은 “〈88만원 세대〉가 청년층이 비정규직화하는 구조를 제목과 콘셉트로 사회적 의제화한 것처럼, 〈피로사회〉도 우리 사회를 무엇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의제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김 주간은 ‘현대사회의 피로에 대한 스케치’라고 부연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도 큰 호평
국내서로는 〈내가 읽고 만난 일본〉(김윤식 지음, 그린비), 〈욕망해도 괜찮아〉(김두식 지음, 창비),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전성원 지음, 인물과사상사), 〈사당동 더하기 25〉(조은 지음, 또하나의문화) 등이 많이 거론되었다. 〈내가 읽고 만난 일본〉은 원로 국문학자 김윤식 교수의 지적 여정기이자 사유의 자서전이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800쪽 가깝게 두꺼운 책인데도 마치 여행기처럼 금세 읽혔다”라고 독후감을 전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헨리 포드에서 마사 스튜어트까지 일상에 깊은 영향을 준 사람을 통해 사람과 도시, 삶의 변화를 관찰한다. 필자 전성원씨는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이며, 블로그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의 운영자로도 유명하다. 역사학자 한홍구가 “날 보고 별걸 다 기억하는 역사학자라 하지만, 전성원은 그런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꼼꼼한 디테일을 가졌다”라고 말한 것처럼 책의 구성력이 돋보이고 팩트가 디테일하다는 평이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다양한 지식을 끌어들여 논리를 펼쳐나간다. 첫 저작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괜찮은 필자를 발견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조은 교수의 〈사당동 더하기 25〉도 ‘한국에서 장기적으로 탐침한 논픽션이 드문데, 사당동의 변천사를 통해 빈민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길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와 〈사당동 더하기 25〉는 출판 편집자뿐만 아니라 인문·사회 분야 전문가 추천위원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이 밖에 국내서로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김상봉 지음, 꾸리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유홍준 지음, 창비),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최장집 지음, 폴리테이아), 〈현시창〉(임지선 지음, 알마) 등이 선정되었다.
〈미생〉(윤태호 글·그림, 위즈덤하우스)은 유일하게 꼽힌 만화책이다. “〈개그 콘서트〉가 시대의 텍스트이듯, 〈미생〉은 지금 대중문화에서 스토리텔링의 최전선.” “주변에서 ‘〈미생〉 봤어?’라고 제일 많이 확인한 도서.” 출판 편집자들이 〈미생〉을 ‘2012년 올해의 책’ 가운데 한 권으로 추천한 이유다.
〈생각에 관한 생각〉(이진원 옮김, 김영사)의 저자는 대니얼 카너먼. 2002년 심리학자로는 처음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심리학과 경제학을 융합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한 출판 편집자는 “해외 저작권사에서 저자가 이 책을 쓴다고 짧은 뉴스레터를 내보내고 나서 바로 국내 판권이 팔릴 정도로 유명한 필자다”라고 말했다.
실용서로는 〈1일1식〉(나구모 요시노리 지음, 양영철 옮김, 위즈덤스타일)이 꼽혔다. 한 시사 주간지가 특집 기사를 내보낼 정도로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올해의 번역서로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블러디 머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등이 복수로 추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