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2012년 한국사회의 자화상
  • 차형석 기자
  • 호수 276
  • 승인 2012.12.26 03: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판 편집자가 꼽은 올해의 책
2011년 조사에서는 단연 <닥치고 정치>(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푸른숲)였다. ‘나꼼수 열풍’은 출판가에도 그대로 이어져 ‘나꼼수 4인방’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올해 출간된 주진우 <시사IN> 기자의 <주기자>(푸른숲)도 상반기에 베스트셀러 수위를 다투었다.

2012년 출판 편집자들은 어떤 책을 꼽았을까?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다. 이 책은 독일어로 된 원서를 번역한 책이다. 그래서 어떤 편집자는 이 책을 올해의 국내서 베스트 5 가운데 한 권으로, 어떤 이는 올해의 번역서 베스트 5 중 하나로 꼽았다. 한국인 저자가 쓴 번역서라는 특성상 두 응답을 합하면, 응답이 단연 많다. <피로사회>가 ‘출판 편집자가 꼽은 2012년 올해의 책’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의 원서가 독일에서 출간된 후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한병철 교수의 작업을 조명하는 특집 기사를 내놓았다. 한국에서 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해 독일 출판사에서 꾸준히 저서를 출간해온 한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독일에서 주목받는 철학자로 떠올랐다. 서양철학의 언어를 구사하며 그 안에 동양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새로운 문화 비판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할 수 있다’는 게 최상의 가치가 된 성과사회.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라는 한 교수의 진단은 한국 사회도 비껴가지 못한다. 김수한 현암사 주간은 “<88만원 세대>가 청년층이 비정규직화하는 구조를 제목과 콘셉트로 사회적 의제화한 것처럼, <피로사회>도 우리 사회를 무엇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의제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김 주간은 ‘현대사회의 피로에 대한 스케치’라고 부연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도 큰 호평

국내서로는 <내가 읽고 만난 일본>(김윤식 지음, 그린비), <욕망해도 괜찮아>(김두식 지음, 창비),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전성원 지음, 인물과사상사), <사당동 더하기 25>(조은 지음, 또하나의문화) 등이 많이 거론되었다. <내가 읽고 만난 일본>은 원로 국문학자 김윤식 교수의 지적 여정기이자 사유의 자서전이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800쪽 가깝게 두꺼운 책인데도 마치 여행기처럼 금세 읽혔다”라고 독후감을 전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헨리 포드에서 마사 스튜어트까지 일상에 깊은 영향을 준 사람을 통해 사람과 도시, 삶의 변화를 관찰한다. 필자 전성원씨는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이며, 블로그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의 운영자로도 유명하다. 역사학자 한홍구가 “날 보고 별걸 다 기억하는 역사학자라 하지만, 전성원은 그런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꼼꼼한 디테일을 가졌다”라고 말한 것처럼 책의 구성력이 돋보이고 팩트가 디테일하다는 평이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다양한 지식을 끌어들여 논리를 펼쳐나간다. 첫 저작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괜찮은 필자를 발견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조은 교수의 <사당동 더하기 25>도 ‘한국에서 장기적으로 탐침한 논픽션이 드문데, 사당동의 변천사를 통해 빈민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길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와 <사당동 더하기 25>는 출판 편집자뿐만 아니라 인문·사회 분야 전문가 추천위원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이 밖에 국내서로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김상봉 지음, 꾸리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유홍준 지음, 창비),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최장집 지음, 폴리테이아), <현시창>(임지선 지음, 알마) 등이 선정되었다.

<미생>(윤태호 글·그림, 위즈덤하우스)은 유일하게 꼽힌 만화책이다. “<개그 콘서트>가 시대의 텍스트이듯, <미생>은 지금 대중문화에서 스토리텔링의 최전선.” “주변에서 ‘<미생> 봤어?’라고 제일 많이 확인한 도서.” 출판 편집자들이 <미생>을 ‘2012년 올해의 책’ 가운데 한 권으로 추천한 이유다.

 2012년의 번역서로는 <유럽문화사 1~5>(오숙은·이은진·정영목·한경희 공역, 뿌리와이파리)를 추천하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1800년에서 2000년까지 유럽인들이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해온 문화형식을 거의 총망라한 이 책은 한국어판 전체 분량이 2790쪽에 이를 정도로 대작이다.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예전에 새물결에서 나온 <사생활의 역사> 이후 간만에 나온 대작. 작은 출판사에서 이 작업을 해낸 것을 높이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번역 과정도 흥미롭다. 3년 반에 걸쳐 번역과 편집 작업을 했다. 각각의 전공 언어(러시아어,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를 가진 네 번역자는 각각의 전공 언어와 관심 분야를 고려해 각자가 맡을 분량을 나누었다. 장별로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한 장 안에서 소제목 단위별로 나누기도 했다. 각자의 초벌 원고를 모으고 편집부와 세 차례 워크숍을 통해 번역의 원칙과 기준, 편집의 기본 방침을 결정했다. <유럽문화사>는 북스피어와 모비딕이 함께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 27권을 펴내기로 한 ‘세이초 월드’ 기획과 함께 출판인이 주목한 ‘올해의 기획’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콰이어트>와 <생각에 관한 생각>은 저자의 인지도와 주목도가 높아 일찍부터 기대를 모은 책이다. <콰이어트>(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RHK)는 요즘처럼 시끄러운 세상에서 오히려 내향적인 사람들이 조용히 세상을 움직인다는 통찰을 아인슈타인, 간디, 스티브 워즈니악 등 여러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일종의 내향적 리더십이 통한다는 뜻. 저자 수전 케인은 2012년 TED 강연에서 1500여 청중으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출간 이후 <뉴욕 타임스> 커버스토리로 다루어지는 등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생각에 관한 생각>(이진원 옮김, 김영사)의 저자는 대니얼 카너먼. 2002년 심리학자로는 처음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심리학과 경제학을 융합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한 출판 편집자는 “해외 저작권사에서 저자가 이 책을 쓴다고 짧은 뉴스레터를 내보내고 나서 바로 국내 판권이 팔릴 정도로 유명한 필자다”라고 말했다.

실용서로는 <1일1식>(나구모 요시노리 지음, 양영철 옮김, 위즈덤스타일)이 꼽혔다. 한 시사 주간지가 특집 기사를 내보낼 정도로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올해의 번역서로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블러디 머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등이 복수로 추천되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