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한파가 닥친 겨울 저녁, 밥솥에서 피어오른 수증기가 뽀얗게 창문에 서린 식당에 배고픈 아이들이 모였다. 네 살 성민이(가명)부터 대학생 아름이(가명)까지, 아이 40여 명이 옹기종기 앉은뱅이 식탁에 앉아 집밥을 먹는다. 오늘 저녁 메뉴는 잡곡밥과 비지찌개. 식판 반찬 칸에는 오징어야채볶음, 고구마샐러드, 콩나물무침이 나란히 담겼다. 달그락달그락, 아이들은 비지찌개에 밥을 말아 싹싹 잘도 긁어 먹는다. 12월12일 서울 봉천동 동명아동복지센터(무의탁 아동 보육시설·보육원)의 저녁 식사 풍경이다.

동명 아이들의 집밥을 책임지는 하지윤 영양사의 마음은 성장기 아이를 키우는 여느 부모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선한 제철 재료들을 맛있게 요리해 먹이고 싶다. 값싼 수입산 고기 대신 등급 높은 국내산 쇠고기·돼지고기를 사주고 싶다. 냉동 생선 외에도 냉장 해산물을 다양하게 먹이고 싶다. 미숙아 상태로 입소한 0세 아기들에게는 좀 비싸더라도 구토 방지용 분유를 먹이고 싶고, 막 밥맛을 보게 된 이유기 영아에게는 별도의 이유식 재료를 챙겨주고 싶고, 센터 아동 가운데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비만·아토피 아이들을 위한 식이요법 식단도 따로 짜고 싶다.  

하지만 나라에서 책정한 한 명당 한 끼 식사 비용은 1420원. 김밥 한 줄 값도 안 되는 이 돈으로는 하 영양사의 바람을 단 하나도 이룰 수 없다. 유기농이니 국내산이니 하는 선택지는 언감생심, 제한된 예산 안에서 머리를 짜내야 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저녁이나마 배부르게 해주자니 아침 식단이 약해졌다. 태풍, 이상 고온, 한파 때문에 신선 식품 값이 치솟으면 값싼 육가공품 따위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 식재료의 양과 종류를 포기할 수 없으면 상중하 품질에서 눈물을 머금고 ‘하’를 골라야 한다. 하 영양사는 “그나마 센터 직원들이 자신들의 후생비를 아이들 식비에 보태고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이 사랑의 김장 행사를 통해 김치를 보내줘서 막막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시설 수급자니까 1400원만 받아라?

보육원 아이들 밥은 1990년대 후반까지 현금 대신 현물로 내려왔다. 남북 긴장관계 때문에 정부미 3년치를 쌓아놓던 시절, 비축 기간이 지난 쌀 포대가 군대나 무의탁 아동·장애인·노인 등이 생활하는 사회복지시설에 나누어진 것이다. 동명아동복지센터 김광빈 원장은 “당시 배급받은 쌀 봉지를 뜯으면 쌀바구미가 바글바글하거나, 하도 오랫동안 눌려 있어서 쌀이 떡이 돼 있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현금으로 지원 방식이 달라진 뒤에도 보육원 아이들 한 끼 식비는 매년 40~50원씩만 인상돼 올해 겨우 1400원을 넘겼다. 방학이 다가와도, 주 5일제 수업으로 보육원에서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 끼니 수가 늘어나도 식비는 내내 그 수준에 머물렀다.

이에 비해 아동복지법에 따라 지원되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한 끼 식비는 평균 3500~ 4000원. 보건복지부가 지역아동복지센터를 운영하는 지자체에 권고하는 최소한의 아이들 밥값 기준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육원 아이들은 그 아동복지 정책을 적용받지 못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최저 생계비 기준을 적용받는 다른 사회복지시설의 노인·장애인 등과 함께 ‘시설 수급자’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보육원과 함께 지역아동복지센터도 운영하는 김 원장은 “이런 제도 때문에 한자리에 모여 놀고 공부하던 보육원과 지역 내 저소득층 아동들이 저녁 식사 시간에는 각자 두 식당으로 쪼개져 보육원 아이들은 1400원짜리 밥을, 부모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지역아동복지센터 아이들은 3500원짜리 밥을 먹는 기현상이 벌어진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서울이나 수도권처럼 후원의 손길이 잦은 보육원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한국아동복지협회 정미영 총무부장은 “경기 침체 때문인지 최근 도와주는 분이 확실히 줄었다. 특히 지방이나 외진 곳의 아이들이 그 영향을 많이 받는다”라고 말했다. 전국 1만6500여 명에 이르는 보육원 아이들 가운데 약 70%가 지방 소재 시설에서 생활한다. 

내년 밥값도 100원 오르는 데 그쳐

이런 보육원 아이들의 급식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7월 보육원 원장들은 한국아동복지협회 명의로 보건복지부에 “우리 아이들도 아동복지법에 따라 한 끼 밥값을 3500원 수준으로 올려달라”라는 건의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고작 200원 오른 보육원 아동 밥값을 2013년도 예산 요구안에 올렸고, 기획재정부는 그 추가분마저 절반으로 뚝 깎아 100원 인상분만 남겼다.

정부 예산이 꼼짝하지 않으니 자발적인 기부로 꾸려진 ‘시민 예산’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비영리 공익재단인 아름다운재단은 지난 11월12일부터 보육원 아동의 한 끼 식비를 3500원으로 올리자는 ‘나는 (아이들의 불평등한 식판에) 반대합니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단순히 ‘배고픈 아이들에게 밥을 사주자’라는 시혜성 이벤트가 아니다. 내년 1월 말까지 두 달간 3억5000만원을 모금해, 2개 시설 130명 아이들에게 적정 단가 3500원짜리 식사(정부 지원금 1400원+시민 예산 2100원)를 1년간 제공할 계획이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달라진 식단을 제공받은 아이들의 사전·사후 건강 실태를 조사해 좋은 ‘모범’을 보여주고, 이듬해에 적절한 급식비가 책정될 수 있도록 정부에 공개 청원을 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캠페인 중반을 넘어선 12월21일 현재 시민 3800명이 그 뜻에 공감해 1억3000만원을 기부했다. 아름다운재단 홍보팀 권연재 간사는 “시민들이 동정의 마음으로 기부하기보다, 먹을거리라는 아이들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호해주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마음으로 개선 참여 의지를 갖고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 밥 먹이고 싶은 〈시사IN〉 독자라면…

지난해 말 〈시사IN〉은 11월부터 아름다운재단이 벌이는 ‘나는 반대합니다’ 캠페인에 합류했다. 〈시사IN〉 제225호부터 연재 기사를 통해 ‘나는 엄마와 아이가 헤어지는 것에 반대합니다’(싱글맘 자립 지원), ‘나는 가난 때문에 어린 생명이 위협받는 것에 반대합니다’(이른둥이 지원), ‘책 한 권이 사치인 이주민의 현실에 반대합니다’(이주민 독서 지원) 등 소외된 이들의 현실을 알리고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반대’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기사를 보고 1만원 이상 기부에 참여한 〈시사IN〉 독자는 전체 기부자의 10%에 해당하는 100여 명. 〈시사IN〉 독자들이 ‘천사표’ 큰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올해 ‘나는 반대합니다’의 큰 주제인 ‘보육원 아동 급식비 인상’ 기부 캠페인에 동참하는 〈시사IN〉 독자들을 위해 〈시사IN〉과 아름다운재단이 작은 선물을 마련했다.

기부자 정보 기입 난의 ‘캠페인을 알게 된 경로’에 〈시사IN〉을 기재한 독자 가운데 추첨을 통해 박재동 화백의 그림 액자 4점(사진 참조)과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티켓 40장(1인 2장, 1월30·31일 오후 8시)을 제공할 예정이다(개별 연락). 기부 참여는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www.beautifulfund.org)에서 가능하다(문의: 02-766-1004).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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