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이 아파트’, 잘못 사면 바가지
  • 변진경 기자
  • 호수 273
  • 승인 2012.12.12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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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내세우는 미분양 아파트가 쏟아진다. 전세처럼 먼저 살아보고 매입을 결정하는 계약도 있다. 그러나 자금난에 처한 시공사의 말만 믿고 샀다가 나중에 손실을 떠안는 경우도 많다.
“어때요? 정말 싸죠?” 11월28일, 경기도 고양시의 아파트 분양 사무소를 찾은 기자에게 분양업체 직원은 ‘파격적 할인 상품’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 번째 집은 경의선 역세권에 위치하고 조망이 좋은 155㎡(47평) 아파트. 최초 분양가에서 기본 30% 할인에 ‘한정세대 할인’ 1.5%, ‘바로 입주 할인’ 1.5%가 추가 적용된다. 도심에 위치해 생활 편의가 좋은 옆 동네 168㎡(51평) 아파트는 계약금 30%만 내면 바로 입주할 수 있다. 3년 뒤까지 잔금을 미뤄서 내도 되고, 3년간 대출 이자도 면제해준다.

단지 조경과 내부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워 유명 연예인이 많이 산다는 195㎡(59평) 아파트는 조건이 더 파격적이다. 계약금만으로 입주가 가능하고 잔금 20%를 먼저 깎아주는 것은 물론, 살다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아파트 값이 오르지 않으면 4년 뒤 건설사에서 ‘판매한 가격 그대로’ 다시 사준단다.

미분양 아파트의 ‘떨이 마케팅’이 한창이다. 11월20일 서울시 SH공사는 은평 뉴타운 미분양 아파트 특별 할인에 들어가면서 최대 2억원 이상의 할인 금액을 제시했다. 일시납 선납 특별 할인, 일시납 잔금 유예, 할부납 잔금 유예, 분양조건부 전세 등 할인 유형도 다양하다. 일시납과 할부납은 평면 개선 비용과 발코니 확장 비용도 무료로 제공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런 혜택을 홍보하고 SH공사 이종수 사장은 직접 분양 상담사로 나서기도 했다.


이 정도면 양반이다. 민간 아파트 미분양 시장에는 아파트 시세가 떨어져도 산 가격 그대로 되팔 수 있다는 ‘원금보장제 분양(환매조건부 분양)’, 아예 먼저 전세처럼 살아보고 2년 뒤 천천히 매입을 결정해도 된다는 ‘애프터 리빙(After Living)’, 현금이 하나도 없어도 기존 소유 주택이나 전세 보증금을 담보로 새 집을 살 수 있는 ‘하우스 바이 하우스(House by House)’까지 등장했다. 오래된 부동산 경기 침체 현상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떨이’를 외쳐도 미분양 주택은 쌓여만 간다. 국토해양부가 집계한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10월 말 기준 7만2739가구. 지난해 12월(6만9807가구)보다 4.2%, 한 달 전(7만1552가구)보다 1.7% 증가한 수치이다. 특히 수도권 지역의 미분양 주택 증가율이 16.4%(지난해 말 기준)로 가장 높았다. 

그나마 미분양 시장에서 사람들이 몰리는 곳도 단순 할인 상품이 아닌 ‘선입주 후분양’ 형태 등으로 팔리는, 최종 분양 결정을 2~4년 뒤로 미루는 ‘임시방편’ 미분양 해소 상품들이다. 은평 뉴타운 미분양 할인 판매의 경우만 해도 첫날 신청된 107가구의 분양 계약 가운데 84가구는 ‘분양조건부 전세’ 분양이었다. 주변 전세 시세의 80% 수준으로 전세 계약을 하고, 입주 2년 뒤 감정 가격으로 분양 전환하는 조건이다. 최대 4년까지 연장도 가능하고, 그때 분양을 받지 않더라도 위약금이 없다. 

7억원짜리 아파트 2억원에 사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금의 떨이 아파트들을 일찍이 제값 주고 산 초기 분양자들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일부 은평 뉴타운 입주자들은 “이번 미분양 할인은 애초 분양가가 원가 수준이라던 최초 분양 당시 홍보가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자인하는 꼴이다”라며 서울시와 SH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울산의 신정 푸르지오 아파트 분양 계약자들은 최근 미분양 할인에 들어간 건설사를 상대로 할인 분양 중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경기도 고양·김포 등 미분양 물량이 쌓인 중·대형 아파트에도 엘리베이터마다 손해배상 소송 참여단 모집 안내문이 붙어 있다.

파격 조건을 내세우는 판매자 말을 믿고 미분양 아파트를 샀다가 후회하는 사람도 많다. 2010년 ‘신개념 전세형 분양’으로 시행사와 분양 계약을 맺은 부산 퀸덤 아파트 계약자 사례가 대표적이다. 입주자들은 “전세처럼 보증금 일부만 내면 2년 후 선택에 따라 보증금을 돌려주거나 완전히 소유권을 이전해주겠다”라고 시행사가 약속했지만, 당시 아파트 소유권은 이미 시행사가 대출을 받은 23개 금융기관(대주단)에 넘어간 상태였다고 한다. 입주 보증금을 받아 챙긴 시행사는 2년 사이 부도를 냈고, 입주자들은 소유권은커녕 시행사가 대주단에 진 빚만 넘겨받았다.

2009년 ‘원금 보장제’를 믿고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받은 경기도 파주 한양수자인 아파트 일부 입주민도 뒤늦게 가슴을 친다. 계약 당시 “국민은행 아파트 시세 일반 평균가를 기준으로, 분양가보다 시세가 떨어지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라는 특별 약정서에 사인했지만 실제 아파트 시장 가격이 떨어진 지금까지 분양가 원금을 되돌려 받지 못했다. 특별 약정서에 명시된 ‘국민은행 아파트 시세표’에 해당 아파트의 시세 정보가 아예 등록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지금까지도 경기도 일산·김포 등 일부 미분양 아파트들이 국민은행 시세를 기준으로 한 ‘환매조건부 분양’ 혜택을 내세우며 미분양 아파트를 팔지만 이 아파트들 시세 역시 현재 국민은행 아파트 시세 정보에 등록돼 있지 않다.

이런 미분양 사태 속에서 시장은 좋은 교훈을 얻는다. 세종대 변창흠 교수(행정학과)는 “긍정적으로 보면, 과거 중대형·고분양가로 지은 주택들이 시장 수요와 전혀 맞지 않다는 걸 확인한 주택 공급자들이 앞으로는 구매자들의 부담 능력과 실제 소요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주택 공급자들의 판단 오류에 따른 손실과 위험 부담을 ‘미분양 할인 혜택’에 현혹된 일반 주택 수요자들이 가져간다는 점이다. 선대인경제연구소 정남수 팀장은 “거의 모든 아파트가 빚으로 지어진다. 지금 아파트 떨이를 한다는 것은 시행사·시공사들이 그 빚을 털지 못해 위급한 상황이라는 방증이니, 미분양 아파트 구매자들은 이 점을 분명히 알고 ‘투자’ 결정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11월28일 기자가 제안받은 미분양 아파트 중 한 곳은 최초 분양가가 8억6000만원, 3.3㎡당 1500만원이 넘는다. 이런저런 할인 혜택을 받아 깎은 금액은 1억7000여만 원, 집 가격은 여전히 7억원대에 달한다. 하지만 분양업체 직원은 전세 보증금 2억여 원이 전 재산이라는 상담 고객에게 ‘(계약금 30%에 얼추 맞으니) 딱 맞는 조건’이라며 그 7억원짜리 아파트를 연신 권했다. 나머지 5억원에 대해서는 건설사가 소개해주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매달 200여만 원의 이자만 내면 된다는 것이다. 그 직원은 보금자리를 찾는 구매자에게 분명 ‘고위험 투자 상품’을 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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