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노인들은 열이면 열한 분은 우리가 하는 짓이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격려와 응원보다는 지적과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 것이 대세였다. 파종을 하지 않은 땅이 훨씬 넓기에 5월에는 풀이 올라왔다. 당연히 왜 제초제를 하지 않는가라는 것이 관전자들의 주요 참견 내용이었다. 그 외에도 참견 내용은 다양했다. 밭고랑에 물 고인다, 두덕이 얕다, 비닐을 씌워야 한다, 그래봐야 어차피 틀렸다, 고랑 방향이 글렀다…. 그러던 노인들은 예쁘게 올라온 감자 싹을 보고 모두 자신의 텃밭인 듯 좋아라 하셨다. 싹수는 노랗지 않고 힘찼다. 이제 펀드매니저들을 투입할 시기가 된 것이다.

하루 전날 입수된 첩보에 따르면 이전에 대평댁이 감자 파종하는 날 오전 일을 하고 2만원 받았다고 인력을 모으는 중에 ‘한 4만원 줄 거다’라고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그래서 운암댁은 ‘꽃 심는 데 가도 5만원은 줘야 해!’라고 불참을 선언했다고 한다. 나는 이날 일은 제법 정상적인 모양새를 갖출 것이니 5만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1만원 차이는 심리적인 저항선을 좌우했다.


ⓒ권산 제공5월22일 아침 7시부터 토란밭에 펀드매니저들이 투입되었다.

“아 약을 해야제, 이라고 언제 풀을 잡냐 말이여. 그라고 뭔 돈으로 우리들한테 놉(인건비)을 준다고 해쌌냐 말이제, 그래싼게 어매들은 애가 터지는 것이제.”(대평댁)

“그러니까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시방 우리들이 하는 일은 맨땅에 펀드라는 것인데 펀드란 게 돈 놓고 돈 묵기라요. 긍께로 100명한테 30만원씩 받고 이 밭에서 나는 것을 이미 다 팔았습니다. 그 돈에서 엄니들 놉도 드리고 땅 빌린 값도 주고 뭣도 하고 짜장면도 사 묵고…. 그러다보니 뭐가 많이 나오고 적게 나오고가 문제가 아니라 약을 안 하고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소상허니 설명을 해주니 알겄네. 그라믄 되얏어. 그란디 펀드가 뭐여?”(엄니들)

그렇게 1차 김매기가 시작되었다. 5월부터 여름까지는 풀과의 전쟁이다. 그것은 펀드매니저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에게 전선은 두 개다. 풀도 잡아야 하고 매니저들의 지청구도 감당해야 했다. 


ⓒ권산 제공대평댁은 밭일을 할 때 신발을 신지 않는다.

고랑이 없는 고추밭이라고?

5월이 되면서 주요 작물의 하나인 고추도 심었다. 금년에는 고추 모종 자체를 구하기 힘들었다. 2011년에 고춧가루 값이 금값이었던 까닭에 모종은 일찍 동이 났다. 결국 고추 모종은 홍순영 형님 농장에서 들고 왔다.

“형님, 고추 모 있어요?”

“얼매나?”

“좀 많이 필요한데… 100주.”

“하이고 눈꼽시롸서….”

“형님은 얼마나 했는데요?”

“8000주.”

우리 고추밭은 고랑이 없다. 이런 방식은 새로운 펀드 텃밭 관리자 ‘무얼까?’의 결정인데 ‘고랑이 없는 고추밭은 평생에 처음’이라는 소리를 3만 번 정도 들어야 했다. 


ⓒ권산 제공오이를 땅에 세워두고 목이 마를 때 씹는다.

감자 잎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잎이 자라면 왕성한 광합성 활동을 하고 감자 씨알도 땅속에서 열심히 성장할 것이다. 한 달 지나면 하지감자는 수확에 들어간다. 중간 중간 빈자리가 있는데 느리게 올라온 것들이거나 벌레들이 끊어먹은 자리다. 이른바 ‘꺼먼 벌거지’다. 수석 펀드매니저 대평댁 말씀에 따르면 ‘심술 벌거지’라고 한다. 심술부린 놈이 죽고 나면 그 벌레가 된다고 하는데 과학적인 근거는 좀 약한 것 같다.

전개되는 상황은 대부분 예측한 것보다 빠르고 강하게 진행된다. 5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두어 차례 비와 무더운 낮 기온은 순식간에 잠복해 있던 풀을 일제히 밀어올렸고, 그것은 정말 하루가 다르게 땅 위를 점령해 나갔다. 이곳에 살면서 하나 깨달은 것은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것은 나무이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풀이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농부와 노인들에게, 농사짓는 방법은 한 가지이다. 풀 죽이고 약 치고 비료 내고 고랑은 높게. 그 밖의 모든 방법은 틀린 것이다. 우리는 결국 계절에 따라 잔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는데 초록이 우세한 계절에는 그 잔소리의 강도와 횟수가 상상 이상이다.

5월22일 화요일. 아침 7시부터 토란밭에 매니저들이 투입되었다. 대평댁, 지정댁, 갑동댁 세 분이다. 갑동댁은 오늘 펀드매니저 데뷔전이다. 무얼까?는 완전히 이사오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그는 토란밭과 땅콩밭, 고추밭 앞머리 김을 매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표표히 떠났다. 어쩌면 풀과의 전쟁을 포기하고 서울로 도주한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 풀밭은 누가 관리할 것인가? 음… 나는 처음부터 박 과장이 잘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카페&게스트하우스보다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하면 그는 돌아올 것이다. 물병 들고 펀드 밭으로 내려서자 대평댁의 불평이 폭발한다.

“이거 땅이 깡깡해가꼬 영판 지랄이라니까. 하이고 사람 죽겄네.”

3일 정도 김매기 작업을 계속했다. 나는 하루 두 번 정도 텃밭의 엄니들에게 물을 공급하러 내려갔다. 3일째는 오후 5시가 되어서야 텃밭으로 내려섰다. 목이 마를 것이니 오이를 하나씩 드렸다. 노인들의 등판으로 5월의 햇살이 비수처럼 내리꽂히고 있었다. 그 비수를 내가 꽂은 듯 마음이 불편했다. 대평댁은 밭일을 할 때에는 신발을 신지 않는다. 버릇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보기에 마음이 편치는 않다. 그녀의 맨발에는 지난 칠십 평생 노동의 이력이 새겨져 있다. 어쩌면 그녀가 진정한 맨발의 디바일지도 모른다. 온몸으로 삶을 노래하는.

기자명 권산 (지리산닷컴 운영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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