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3일, 나라에 경사가 났다. ‘제한적 본인확인제’, 즉 인터넷 실명제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은 것이다. 인터넷 실명제가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 및 서비스 제공자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 그 판결의 취지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이렇게 올바른 판단을 할 줄 아는 양반들이 도대체 이 법이 통과될 때는 어디서 뭘 하고 계셨는지 한편으로 궁금하다. 물론 이 법을 적극적으로 통과시켰던 양반들이 이에 대해 얼마나 조용히 부끄러워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아무튼 이번 위헌 판결에 힘입어 아직 지긋지긋하게 남아 있는 선거법상 실명제라든가 게임 실명제도 그 폐지를 향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리라 생각하니 기쁘다. 기쁜 마음에 바로 다음 날, 새벽이 밝도록 소중한 사람들과 축배를 들었다. 굳이 올림픽 특수 같은 것 없이도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은 이렇게 많다. 마음 깊이 기쁜 일이 많으면 자연 축하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난나 http://www.nannarart.com/sisain.html( '까칠거칠 삽화를 구매하고 싶으면 클릭하세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뒤통수 후려치기를 좋아할까. 헌재의 결정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인권위 내부 실명 게시판(이름하야 ‘위원장에게 바란다’ 게시판) 설치 지시를 보니 그날 먹었던 술이 그냥 확 깬다. 레임덕이든 말든 대통령의 권세를 등에 업은 인권위원장에게 헌법 따위는 볼라벤에 날아간 동네 노인정 문짝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술 깬 김에 요즘 전 세계를 휩쓰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패러디 대열에 합류해 하나 만들어보았다. 이름하야 ‘오빤 병철 스타일’.

“낮에는 어딜 갔는지 안 보이는 위원장/ 대통령의 빽을 아는 품격 있는 위원장/ 익명 글만 보면 심장이 철렁하는 위원장/ 그런 반전 있는 위원장/ 나는 위원장/ 점잖아 보이지만 논문은 베끼는 위원장/ 국가보안법만 나오면 완전 미쳐버리는 위원장/ 턱살보다 양심이 더 울퉁불퉁한 위원장/ 그런 위원장/ 기분 나빠 의심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기분 나빠 의심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 오빤 병철 스타일/ 에에에에 섹시레이레/ 옵옵옵옵 오빤 병철 스타일.”


이런 나라가 점점 익숙해진다는 사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조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입법·사법·행정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적 국가기관이다. 그렇게 만든 것은 입맛대로 누구 편에 붙을지를 고르라는 것이 아니라 삼권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라는 취지에서다. 사회 속에 그 어떤 분쟁과 갈등이 있더라도 그 양상이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 가치를 확립하고 지키는 것이 인권위의 임무이자 존재 목적이다. 이것은 힘든 일이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고, 달려가서 우리가 아수라장이 아니라 인간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매순간 확인시켜주어야 하는 아주 바쁜 일이다.

그런데 인권이 위험에 처해도 본척만척하며 대통령 눈치만 보던 식물 인권위의 수장이 낙하산 연임을 하면서 지금 싫은 소리가 듣기 싫다고 게시판을 실명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런 나라에 사는 것이 점점 익숙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진짜 우린 ‘망국 스타일’이다.

장기전에 기운이 빠지더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인터넷 실명제를 아웃시켰듯이 현병철 위원장의 연임을 아웃시켜야 한다. 내가 또 우리 동네 지역경제에 기분 좋게 이바지할 수 있도록. 가을바람에 기분 좋게 현병철 연임 저지를 축하하며 술잔을 기울일 수 있도록.

기자명 장혜영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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