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대신 ‘오래된 남자친구’라는 표현을 썼다.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44)은 결혼식은 올렸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비혼(非婚)이다. 변호사 초년생이던 1999년 ‘호주제 폐지’ 준비 모임에 참여했던 게 계기였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복학생 선배였던 남자친구는 “호주제가 바뀌면 그때 혼인신고를 하자”라던 진 의원과 생각을 함께해 주었다.

진 의원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노력 끝에 2005년 호주제 폐지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도 시행됐다. 그러나 두 사람은 굳이 제도에 묶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이가 있었으면 달라졌을 수도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제도에 의지할 필요가 없는 관계가 됐거든요(웃음).” 그런 그도 비례대표 신청서를 작성하고 각종 증명 서류들을 내야 할 때, 잠깐의 망설임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의 대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사IN 조남진“우리 사회는 퍼즐 같이 다양합니다.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하나 메워가면서 큰 그림을 만들어야 해요. 한두 조각만 빠져도 완성이 안 돼요.”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검사나 판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변호사에 뛰어든 것도 자신의 ‘편파’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옳고 그르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확신이 없었어요.” 성소수자·병역거부자·철거민의 편에서 그들의 입이 되어 주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건 그래서 다행이었다.

비례대표를 준비하며 변호사 생활 10년을 압축·정리한 자기소개서와 의정활동 계획서를 이틀 밤 꼬박 썼다. “좋은 정치야말로 예술이다”라며 망설이던 그녀를 북돋아주던 제주돌문화공원 백운철 원장의 말이 큰 힘이 됐다. 비례대표 공천심사 면접장에는 1000조각짜리 퍼즐을 들고 갔다. 퍼즐 한 조각은 일부러 뺐다.

“우리 사회는 퍼즐같이 다양합니다.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하나 메워가면서 큰 그림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두 조각만 빠져도 그림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비례대표 5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진 의원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와 운영위원회, 특별위원회인 윤리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다. 행안위에서는 SJM 노사분쟁에 연루된 경비용역 업체 컨택터스 일로 현장을 누볐고, 운영위에서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연임을 두고 입씨름을 벌였다. 현 위원장의 논문 표절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것도 그였다. “일을 몰고 다니는 사람인가 봐요”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그가 맡은 상임위는 바쁜 일이 연일 터진다. 

정치는 따뜻한 밥 한 그릇

거기에 일을 하나 더 얹은 건 당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인 문재인 후보였다. 대변인 제안을 처음에는 완곡히 거절했다.

문 후보와 개인적인 친분도 없었지만, 초선 의원이 특정 후보에게 ‘줄 선다’라는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결국 대변인직을 수락한 건 ‘정권 교체’에 대한 절박감 때문이라고 했다. 문 후보와 어떤 연결고리도 없는 만큼 캠프의 ‘친노 폐쇄성’에 대해 자신이 설득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선을 앞두고 여의도는 수많은 ‘입’들이 싸우고 있다. 그리고 아직 진 의원에게 대변인으로서의 뚜렷한 존재감을 찾기는 어렵다. 그도 안다. 진 의원 역시 총선 과정에서 수많은 기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대변인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 힘든 일 하지 말아야지’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조금 더디더라도 성실함으로 승부를 볼 작정이다.

“법이 따뜻한 한 그릇의 밥일 수 있다.” 인권 변호사의 대부이자 그가 아버지처럼 모셨던 고 이돈명 변호사의 말을 그는 늘 떠올린다고 했다. 법이 그러했듯 정치가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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