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은 가격을 높여야 마진이 많이 남기 때문에 대표선수를 발탁하고 공급을 조절하는 시장 조작을 한다. 구매자의 이해관계도 이와 잘 맞아떨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그림 구매자는 소수 부자이다. 이들에게 미술품 구매는 문화 소비이자 경제 이익 추구 행위이다. 고가 미술품은 상속과 증여 과정에서 탈세 수단이 되고, 재테크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재벌이나 대형 언론사마다 별책 부록처럼 갤러리가 딸려 있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이리라. 유사시에는 돈세탁 채널로 활용되고 평소에는 척박한 돈벌이 과정에서 노출한 탐욕을 우아하게 덧칠해주는 기제로 작용하리라. 보라! 삼성 특검에서 드러난 〈행복한 눈물〉이 비자금의 채널로 활용되는 풍경을.
미술 작품의 감상은 그림을 통해 그 너머의 화가의 마음을 읽는 눈이 중요하다. 거기에 진본의 사소한 질감의 우위는 결정적 요소가 아니다. 그런데도 진본성에 목을 매는 태도는 문화적 취향보다는 경제적 탐욕 때문일 게다. 왜곡된 시장에서 화가는 구매자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생산하는 존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소비자는 복제본 생산을 통제하는 시장 때문에 화집과 같은 열악한 형태로 작품을 감상할 수밖에 없다. 유명 화가의 괜찮은 복제본이 대량 유통되는 시장, 무명 화가의 작품이 적당한 가격에 활발하게 거래되는 시장이어야 미술을 통한 소통이 가능할 듯싶다.
그림이든 문화재든 문제는 ‘도착증’
문화재도 마찬가지다. 문화재가 소통을 위한 매체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재에 깃든 노동의 역사에 대한 감정이입이 있어야 한다. 숭례문을 만든 장인의 생각과 손길을 개인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어머니가 딸에게 물려준 결혼반지를 받아들이듯 문화재를 본다면, 그 교감 속에서 단단한 역사의식이 생길 것이다. 역사의식은 역사가 중요하다고 강변하는 게 아니라 과거 속에서 삶의 숨결을 느끼고 삶의 연속성을 확신하는 것이다. 우리가 문화재를 이렇게 대했다면 숭례문은 불타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문화재는 국가주의의 도그마를 강변하는 기제로 집단 동원된다. 노동의 역사를 느끼지 못하는 문화재는 다만 낡은 건물일 뿐이다. 생종 페르스의 시구처럼, 노동의 역사가 거세된 유적에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림이든 문화재든 역시 문제는 도착증이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시사IN〉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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