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의문사의 상징적 사건으로 꼽히는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을 놓고 권익위는 지난해 9월부터 약 10개월에 걸쳐 정밀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초동수사 잘못으로 사망의 진실을 알 수 없게 만든 진상규명 불능 사건’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권익위는 군 수사기관이 세 차례에 걸쳐 내놓은 ‘자살’ 발표를 수용하지 않았다. 수사권이 없는 권익위로서는 범인을 특정하는 등 별도 수사를 펼 수 없어 형식상 ‘진상규명 불능’으로 표현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타살’ 판단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권익위의 이번 결정은 일견 과거 김 중위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나 대통령 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군 의문사위)의 결론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2006년 대법원은 김 중위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배소송 판결에서 “초동수사를 엉망으로 해서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라고 판시한 뒤 국가에 일정한 배상 책임을 물었다. 2009년 군 의문사위도 3년여의 조사 끝에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당시 군 의문사위는 군 수사당국이 내세웠던 김 중위의 자살 징후와 동기 등 자살 판단 근거 일체가 무리한 꿰맞추기나 허위사실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을 낱낱이 밝혀냈다. 다만 타살로 볼 경우 핵심 사항인 ‘권총 발사자가 누구인가’에 대해 별도의 검증 조사를 벌이지 못하면서 자살·타살 모두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타살’ 판단에 더 무게 실려
반면 이번 권익위 조사는 과거 어느 국가기관의 조사보다 공정하고 치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훈 중위 사인 규명에서 핵심 사항인 ‘권총 발사자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직접 총기발사 시험까지 벌였다. 지난 3월22일 군부대 사격장에서 실시된 발사 시험에는 12명이 참가했는데, 12명 모두의 왼손등과 11명의 오른손등, 그리고 10명의 왼손바닥과 8명의 오른손바닥에서 뇌관화약흔이 검출됐다. 사망 당시 오른손잡이인 김 중위에게는 오직 왼손바닥에서만 다량의 화약흔이 검출됐다. 이는 타살 시 ‘방어흔’을 강력히 시사했지만 군 수사당국은 이에 대한 과학적 검증절차를 철저히 외면한 채 자살로 꿰맞추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권익위는 또 이번 조사에서 김 중위 사망 현장에 있던 클레이모어 스위치 박스가 파손돼 있고, 손목시계가 둔탁한 물체에 맞아 깨져 있는 등 격투나 방어흔이 보이는 점을 군 수사기관이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김 중위 사망에 사용된 M9 베레타 권총이 길이 약 22㎝에 달하는 비교적 큰 총기인데도 김 중위 머리로부터 총구가 3㎝ 정도 떨어진 상태에서 격발된 점 등도 자살로 보기 어려운 근거로 제시했다. 권익위의 결의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김훈 중위 사망에 직무 관련성이 있는지 검토한 뒤 그 결과를 육군본부에 통보해 원만하게 해결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권익위의 김훈 중위 순직처리 권고 결의는 유사한 군 의문사 문제를 해결할 합리적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2009년 활동을 종료한 대통령 소속 군 의문사위가 김훈 중위처럼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린 사건은 모두 49건에 이른다. 당시 군 의문사위는 진정을 낸 군 사망자 유가족들에게 ‘자살을 인정하면 순직 권고를 할 수도 있다’라는 견해를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반발해 진상규명이 먼저라며 유가족이 이를 거부한 경우가 48건이었다. 이들 대부분이 ‘진상규명 불능’으로 처리돼 사실상 명예회복의 길이 막힌 상태였다. 김훈 중위 순직처리 권고 결의로 군 의문사 해결의 물꼬를 튼 권익위는 조만간 나머지 48명의 유사한 군 의문사 사건에 대해서도 김훈 중위와 같은 방향으로 일괄 결의안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