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서진수씨(33)는 경차를 몬다. 서씨의 직장은 서울 광진구 광장동. 회사 근처에 주유소가 두 군데 있다. 그래도 서씨는 기름을 넣으러 광진구 중곡동까지 간다. 지난 4월 문을 연 알뜰주유소 때문이다.

7월24일 오후 2시. ‘알뜰주유소’라는 대형 플래카드를 내건 광진구 중곡동 용마주유소. 그는 5만2000원을 내고 기름을 가득 채웠다. 서씨는 “일주일에 한번 와서 무조건 ‘만땅’으로 넣는다”라고 말했다. 그의 차 뒤로 기름값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알뜰족’들이 줄을 섰다. 


ⓒ시사IN 이명익용마주유소가 있는 광진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주유소 간 기름값 경쟁이 치열하다.
이 주유소는 원래 ‘SK 용마주유소’였다. 이른바 ‘폴 주유소’(정유 4사의 간판을 단 주유소)였던 셈이다. 정덕수 사장은 지난 4월 SK 간판을 떼고 정부가 대안 주유소로 미는 알뜰주유소로 바꿔 달았다. 


제2차 기름값 전쟁 시작

용마주유소가 있는 광진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주유소 간 기름값 경쟁이 치열하다. 업계에서는 ‘죽음의 광진구’로 통한다. 6∼7년 전 ‘1차 쩐의 전쟁’에 불을 댕긴 건 ㄴ주유소라고 주변 주유소들은 입을 모은다. 한 주유소 사장은 “그 주유소가 박리다매 정책을 쓰면서 모든 주유소가 그 가격에 맞추려다보니 전반적으로 가격이 내려갔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처럼 ℓ당 2∼5원 싸움이 치열한 광진구에 알뜰주유소가 들어서면서 ‘2차 쩐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2차전은 주유업계뿐 아니라 정유업계도 주목한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알뜰주유소가 죽음의 경쟁에서 살아남을지 여부뿐 아니라 실제로 소비자 가격을 내리는 효과가 있을지 가늠할 리트머스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알뜰주유소가 주변 주유소 가격을 끌어내리는 효과가 있을까? 서울 지역 622개(7월17일 기준) 주유소 가격을 지리정보시스템(GIS)으로 분석해보았다. 분석은 GIS 전문 업체 오픈메이트가 맡았다. 가격은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게재된 7월17일치를 기준으로 삼았다.

오피넷에 따르면 서울시내 전체 주유소는 622곳. 이 가운데 17곳은 정유 4사 소속이 아닌, 자가 상표를 단 ‘무(無)폴 주유소’이다. 알뜰주유소는 7곳, 나머지는 폴 주유소이다. 폴 주유소 가운데 정유사 직영점은 29곳이었다. 셀프 주유소는 60곳이다. 기름값이 오르면서 셀프 주유소가 상대적으로 늘었다.

서울의 알뜰주유소는 7곳. 이 가운데 농협하나로 주유소와 도로공사 소속 만남의 광장 주유소를 빼면 5곳이다. 성북구에 2곳(원천주유소·중앙주유소), 광진구 1곳(용마주유소), 금천구 1곳(형제주유소), 구로구 1곳(알뜰풀페이)이다. 


ⓒ시사IN 조남진한국주유소협회 회원들이 7월24일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알뜰주유소 확산 정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5개 알뜰주유소를 중심으로 주변의 가격 인하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반경 1㎞, 3㎞, 5㎞ 기준으로 평균값을 살펴보았다. 주변 주유소의 가격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지 GIS 분석으로 알아본 셈이다. 알뜰주유소 주변 반경 기준 평균치와 서울시 전체 평균치를 비교하면 그 효과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반경을 기준으로 했을 때 역시 가장 싼 곳은 죽음의 광진구에 속한 용마주유소 반경이었다. 7월17일 기준 용마주유소 휘발유 값은 ℓ당 1850원, 경유는 1660원이었다. 반경 1㎞ 이내 주유소는 2곳. 이들 휘발유 평균값은 ℓ당 1857원으로 서울시 전체 평균의 93% 수준이었다. 경유는 1689원으로 92% 수준이었다. 인접한 대원주유소 사장은 “알뜰주유소 가격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 이윤을 적게 남기더라도 알뜰주유소 가격과 맞춘다”라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원천주유소(휘발유 1839원, 경유 1659원) 반경 1㎞에는 주유소 8곳이 있다. 8개 주유소 휘발유 평균값은 ℓ당 1888원으로 서울시 평균의 95%, 경유는 1725원으로 서울시 평균의 94%였다. 역시 인하 효과가 있었다. 구로구 온수동에 위치한 알뜰풀페이(휘발유 1837원, 경유 1649원) 반경 1㎞에 주유소는 3곳. 평균 휘발유 값은 ℓ당 1900원으로 서울시 평균 95%, 경유는 1715원으로 93% 수준이었다. 금천구 시흥1동의 형제주유소(휘발유 1898원, 경유 1749원) 반경 1㎞ 이내 주유소는 3곳. 휘발유 값 평균은 ℓ당 1906원, 경유는 1760원으로 모두 서울시 평균 96% 수준이었다. 이들 4개 알뜰주유소 반경 1㎞ 이내 주유소 가격은 서울시 평균에 비해 4∼8% 포인트 저렴했다. 

반면 알뜰주유소 가운데 성북구 보문동에 위치한 중앙주유소(휘발유 1853원, 경유 1688원) 주변은 예외였다. 반경 1㎞ 이내 주유소 6곳 평균 휘발유 값이 ℓ당 2081원으로 서울시 평균의 105%, 경유는 1911원으로 서울 평균의 104%였다. 알뜰주유소가 기름을 싸게 팔더라도 주변 주유소 가격 인하 효과를 내지 못했다. 


알뜰주유소는 지난해 지식경제부가 기름값을 잡겠다며 내놓은 대안 주유소이다. 정유사-대리점-주유소 유통구조를 허물어, 석유공사-주유소로 직접 연결하는 방식이다. 유통마진을 줄여 기름값을 인하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를테면 보금자리 주택으로 집값 인하 효과를 누렸듯이 알뜰주유소 ‘알박기’로 주변 주유소 기름값도 떨어뜨리겠다는 식이다. 지난해 12월29일 경기도 용인에 1호 알뜰주유소가 생긴 이후 현재 알뜰주유소는 598곳에 이른다. 자영 162곳,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도로공사 소속 80곳, 농협 브랜드 356곳 등이다. 서울에는 7월 말 현재 알뜰주유소 7개가 운영되고 있다.

반경 3km 이상은 가격 인하 미미

알뜰주유소 반경을 3㎞와 5㎞로 확장하면 가격 인하 효과는 떨어졌다. 3㎞ 반경을 기준으로 광진구 용마주유소 주변에는 29개 주유소가 있다. 평균 휘발유 값은 ℓ당 1901원으로 서울시 평균의 96%, 경유 값은 1722원으로 서울시 평균의 94% 수준이다. 3㎞ 반경 안에 31개 주유소가 있는 성북구 장위동 원천주유소 주변도 평균 휘발유 값이 ℓ당 1914원으로 서울시 평균의 96% 수준이었다. 경유는 1754원으로 95% 수준이었다. 11개 주유소가 반경 3㎞ 안에 있는 알뜰풀페이 주변은 휘발유 평균값이 ℓ당 1924원으로 서울시 평균 97%, 경유는 1762원으로 96% 수준이었다. 반경 3㎞ 안에 20개 주유소가 있는 금천구 형제주유소 주변은 휘발유 평균값이 ℓ당 1944원, 경유 평균값이 1793원으로 각각 서울시 평균의 98% 수준이어서 인하 폭이 미미한 편으로 드러났다. 이들 4개 알뜰주유소를 중심으로 봤을 때 반경 3㎞ 구간에서는 1㎞ 구간에 비해 기름 값 인하폭이 2∼5% 포인트로 떨어졌다. 반경 5㎞로 넓히면 가격 인하 효과는 1∼4% 포인트 수준으로 더 떨어졌다.

3㎞ 반경 안에 33개 주유소가 있는 성북구 중앙주유소 주변은 1㎞ 반경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휘발유 값 평균이 ℓ당 2047원, 경유는 1887원으로 각각 서울시 평균보다 높았다(103% 수준).

7월17일 기준 정유 4사 폴 주유소 서울 평균 휘발유 값은 ℓ당 1990원, 경유는 1837원이었다. 무폴 주유소, 알뜰주유소, 셀프 주유소별로 분석해보면, 휘발유 값은 예상대로 알뜰주유소가 평균 1867원으로 가장 쌌다. 다음은 자가 상표를 단 무폴 주유소가 1874원, 셀프 주유소가 1888원 순서였다. 셀프 주유소 기름값은 직영 여부에 따라 달랐다. 보통 정유사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 셀프 주유소는 일반 셀프 주유소에 비해 값이 비쌌다. 직영 셀프 주유소 9곳은 휘발유 값 평균이 ℓ당 1917원, 경유는 1766원이었다. 직영이 아닌 셀프 주유소는 휘발유 값 평균이 ℓ당 1888원, 경유는 1731원으로 이보다 저렴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직영점 가격을 싸게 하면 주변 자사 폴 주유소가 반발하기 때문에 그보다는 조금 비쌀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경유는 무폴 주유소가 평균 1689원으로 알뜰주유소 평균 1699원보다 더 쌌다. 셀프 주유소(1731원), 직영 셀프 주유소(1766원) 순서였다.

반경 1㎞ 기준으로 셀프 주유소와 무폴 주유소 주변 가격도 따져보았다. 정유사 직영 셀프 주유소를 제외한 51개 셀프 주유소 가운데 반경 1㎞ 이내 가격이 서울시 평균에 비해 5% 이상 싼 주유소는 12곳이었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 SK방아다리(휘발유 1836원, 경유1668원) 셀프 주유소 반경 1㎞ 이내 평균 휘발유 값은 ℓ당 1826원으로 서울시 평균의 92%, 경유는 1658원으로 90% 수준이어서 인하 효과가 뚜렷했다. 


 

“대리전 시켜놓고 정부 지원은 없어”

무폴 주유소 17개 가운데 반경 1㎞ 이내 기름값이 서울시 평균에 비해 5% 이상 저렴한 곳은 모두 3곳이었다. 무폴 주유소 가운데도 동대문구 휘경동에 위치한 열린주유소(휘발유 1858원, 경유 1678원) 주변 휘발유 값 평균은 ℓ당 1855원으로 서울시 평균 93% 수준이었다. 경유 또한 서울시 평균의 92%(1684원)로 7∼8% 저렴했다. 무폴 주유소나 셀프 주유소도 반경 3㎞를 넘어가면 효과가 크지 않았다.

GIS 분석을 맡은 오픈메이트 김동근 이사는 “1㎞ 이내 반경을 기준으로 알뜰주유소·무폴 주유소·셀프 주유소를 따지면 알뜰주유소가 가장 많은 가격 인하 효과를 냈다. 다음이 셀프 주유소였다. 다만 반경 3㎞를 벗어나면 가격 인하 효과는 미미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인하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해 현장에서는 회의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당장 광진구 용마주유소 정덕수 사장은 석유공사 사장 앞으로 탄원서를 보낼 작정이다. 문구도 다 써두었다. 정 사장은 탄원서에 석유공사가 가격 차등제로 경쟁이 치열한 곳은 더 싸게 공급해달라고 적었다. 20여 년간 군인으로 복무하다 전역해 주유업계에 뛰어든 정 사장은 “정부가 기름값을 잡기 위해 주유소 간 대리전을 시키는 꼴인데, 그러면 실탄을 지급해주고 전쟁에 내보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폴 주유소의 경우 본사와 대리점에서 ‘일단 알뜰주유소보다 싸게 팔라’며 환급금 형태로 가격 보조(실탄)를 해주는 것으로 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실제로 7월24일을 기준으로 광진구에서 알뜰주유소보다 더 싸게 파는 폴 주유소는 5곳이나 되었다. 폴 주유소에는 텀 프라이싱(Term Pricing)이라 부르는 사후정산 관행이 남아 있다. 주유소가 기름을 산 뒤 일주일이나 한 달 뒤 가격을 정산해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정유업계 관계자는 이런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고 잘라 말했다.

7월24일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 주유소 사장 연합체인 한국주유소협회 이영화 부회장은 정부의 알뜰주유소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을 단행했다. 이들은 “제5 정유사를 만들어 정유사 간 경쟁을 시키거나 유류세를 낮춰 기름값을 잡아야지 주유소 경쟁으로 눈속임을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알뜰주유소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8월27일 일제히 전국 주유소 문을 닫겠다는 결의도 했다. 하지만 지식경제부는 공영 주차장에 알뜰주유소를 여는 등 연말까지 이를 1000개로 늘릴 계획이다. 조만간 ‘죽음의 광진구’에도 또 하나의 알뜰주유소가 문을 연다. ‘쩐의 전쟁’은 계속된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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