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역사학자로 통한다.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민간위원으로 참여해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 전신) 강제헌납’ 사건 조사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부일장학회 강탈’을 박정희 정권의 ‘언론 장악’이라고 말한다(부일장학회는 5·16장학회 그리고 1982년 정수장학회로 이름이 바뀐다. 5·16장학회는 1962년 박정희 정권이 김지태 사장 소유의 〈부산일보〉 주식 100%, 한국문화방송(현 MBC) 주식 100%, 부산문화방송 주식 65.5%와 부일장학회의 기본 재산 토지 10만여 평을 강탈해 설립한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부산문화방송과 〈부산일보〉가 4·19혁명에 큰 몫을 했다. 3·15 부정선거가 일어나고 마산시민들이 부정선거에 항거했다. 부산문화방송이 이 3·15의거를 생중계했다. 일본의 NHK가 이 보도를 이어받아 전 세계로 송신했다. 한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혁명을 생중계한 셈이다”. 당시 김지태 사장은 경찰이 중계를 방해할까봐, 〈부산일보〉 사장실에서 방송을 하도록 했다. 

 

〈부산일보 50년사〉에 수록된 김주열의 시신 사진. 〈부산일보〉가 보도한 이 사진 한 장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부산일보〉는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 사진을 특종 보도했다. 김지태 사장은 이를 전국 언론사에 제공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과 관련한 사진이 〈뉴욕 타임스〉 1면에 실린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한 교수는 “당시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으로 내려와 있던 박정희는 대구사범 동기동창인 황용주(〈부산일보〉 주필)와 친구 사이로 이런 상황을 자세히 지켜볼 수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김지태 사장의 재산 중 언론사에 비해 규모가 큰 조선견직, 대한생사, 삼화고무는 놔두고 언론 3사 주식과 부일장학회 등을 강탈했는데, 이는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의도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한홍구 교수는 “정수장학회가 왜 〈부산일보〉를 갖고 있는가. 한마디로 원인 무효다”라고 말한다. ‘나와는 상관없다’는 박근혜 후보의 말에 한 교수는 이렇게 반문한다. “예컨대 노무현 정권에서 방일영 장학회와 〈조선일보〉 주식을 강압적으로 뺏었다고 하자.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게다가 〈부산일보〉에서는 윤전기를 세우네 마네 하고, 편집국장이 밖에 나와 싸우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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