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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건축가, ‘땅콩집’에 돌직구를 던지다

단독주택 짓기 열풍에 쓴소리를 가한 건축평론가 이용재씨가 젊은 건축가와 손잡고 집 장사꾼을 몰아내는 ‘인문학적 집짓기’ 실험을 시작했다.

고제규 기자 unjusa@sisain.co.kr 2012년 07월 11일 수요일 제2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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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밖에 없었다. 집은 광주에 있고, 건축가는 부산에서, 건축평론가는 대전에서, 기자는 서울에서 출발했다. 기자는 초행길이었다. 광주역에서 택시를 탔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어 찾아갈 셈이었다. 나이 든 토박이 운전사가 모는 택시에는 내비게이션이 따로 없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으로 일단 가자고 했다. 새로 조성된 신창지구 주택단지. 한창 공사 중인 집도 여러 채였다. 눈 밝은 사진기자가 대번에 “저거네”라며  찾아냈다. 윤재민 건축가(41)가 설계한 주택은 그렇게 한눈에 확 들어왔다.

아파트 값 하락세와 함께 단독주택 짓기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아파트=재산 증식 수단’이라는 인식이 바뀌고, 불편해도 아이들에게 골목 문화를 추억으로 남겨주고 싶은 3040 아빠들의 열망이 더해지면서 ‘탈(脫)아파트’ 움직임이 거세다. 전셋값으로 한 택지에 두 집이 함께 사는 집을 짓는 일명 땅콩집 붐은 단독주택에 대한 선망을 손에 잡히는 현실로 만들었다. 


   
윤재민씨가 설계한 광주 주택



‘땅콩집 아파트촌’에 돌직구 던지다


하지만 특정 건축사무소로 일이 몰리면서 똑같은 모양의 땅콩집이 복제돼 결국 ‘땅콩집  아파트촌’이 되고 만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을 쓴, 거리의 건축평론가 이용재씨가 땅콩집 열풍에 ‘돌직구’를 던진 장본인이다. “그게 따져보면 집장사하고 뭐가 달라. 똑같은 집을 양산하는 또 다른 집장사지.” 먹물 냄새는 쏙 빼고 입말을 본뜬 독특한 글쓰기로 유명한 이용재씨 말에는 육두문자가 자주 섞인다. 튀어나오는 육두문자를 계속 듣다보면 추임새 같다. 건축 평론으로만 먹고살려고 택시운전까지 하게 됐다는 그이답게 땅콩집에 대해 걸쭉한 육자배기 평을 쏟아냈다. 땅콩집이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이씨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단독주택을 지으려면 으레 찾기 마련인 허가방(미리 마련된 도면 10장 내외로 허가를 받게 하는 건축사무소) 도면으로 집을 짓는 집장사꾼을 몰아내고 젊은 건축가와 함께하는 ‘인문학적 집짓기’ 실험이다. 그와 뜻을 함께한 건축가는 ‘살구나무집’으로 유명한 조남호, 한옥 호텔 ‘라궁’을 설계한 조정구, ‘달팽이 집’과 ‘파노라마 하우스’로 유명한 문훈, 여성 건축가 정현아·정수진 씨 등이다. 그가 우군으로 손잡은 건축가 10여 명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젊은 건축가라는 점, 둘째, 잘나가는 서울대·홍익대 출신보다는 지방대 등 비주류 건축학과 출신이라는 점, 셋째, 이용재식 표현을 빌리면 모두 ‘싸가지가 있다’는 점이다.

먹물식 표현을 싫어하는 그가 굳이 ‘인문학적’이라는 수식어를 단 이유를 먼저 물었다. “우리네 한옥은 터잡기가 95%여. 터만 잘 잡으면 게임 끝! 인문학적 집짓기란 자연에 얹혀 자연 속에 있는 집, 도시에 얹혀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집, 사람 중심의 집이지.” 말은 그래도 월급쟁이 처지에서 단독주택을 지으려면 돈이 문제다. 이 프로젝트는 3.3㎡(평)당 600만원으로 건축주에 꼭 맞는 맞춤집을 지어주겠다는 것이다. 집 장사꾼이 짓는 집이 3.3㎡당 400만~500만원 선인 것을 감안하면 비싸지 않으냐는 질문에, 이씨는 “600만원에는 설계비·감리비가 모두 포함된다. 건축주가 직접 자신에게 맞는 건축가를 선택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건축가가 개입하는 설계비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다양하다. 물론 건축가 없이도 집을 지을 수는 있다. 단, 집 짓다 화병이 생기기 일쑤다. 시공업자와 다툼의 연속인 데다 비용 부풀리기 등으로 집짓기가 재앙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건축주와 시공업자 사이에 끼여 프로페셔널하게 일을 해결하는 게 어찌 보면 건축가의 몫이다. 


   
ⓒ시사IN 백승기
인문학적 집짓기 프로젝트에 의기투합한 윤재민 건축가(왼쪽)와 이용재 건축평론가(오른쪽).


이씨가 실험하는 인문학적 집짓기 프로젝트에는 조건이 있다. 건축주는 어떤 집을 바라는지 콘텐츠만 제공하고 디자인에는 간여할 수 없다는, 어찌 보면 이상한 조건이다. 이씨는 “디자인은 저작권이다. 건축가에게 맡겨야 한다. 그렇다고 건축가가 작품을 만든답시고 시공비를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문학적 집은 실제 어떤 집일까? ‘젊고 비주류이면서 싸가지 있는’ 건축가 가운데 한 명이라는 윤재민 건축가가 광주에 지은 주택을 이씨는 본보기로 삼았다.

건축가 윤재민씨는 프랑스 유학파이다. 고등학교만 한국에서 나오고 바로 미술 유학을 갔다가 건축으로 전공을 틀어, 파리 라빌레트 국립 건축대학을 나왔다. 2008년 귀국한 이후 서울에서 활동할까 고심하다가 부모가 사는 지방(부산)에 내려가 ‘닭의 머리’가 되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따랐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닭 머리는 고사하고 닭털이 될 뻔했다. 그도 처음 맞닥뜨린 게 ‘건축가=허가방’으로 통하는 인식이었다. 500만원 하는 설계비로 집을 설계해달라는 요구는 기본이었다. 상담 끝에 설계도를 그려주면 돈도 안 내고 도면을 가져가는 건축주도 허다했다.

윤재민 건축가가 설계한 광주 주택도 허가방 주택이 될 뻔했다. 건축주는 광주 토박이 김주택씨(48)이다. 김씨는 건축 디자인을 알지 못한다. 토지를 샀다. 시공업자와 건축가를 만났다. 모두 손사래를 쳤다. 대지가 문제였다. 약 344㎡(104평)인데 직사각형 모양이라서 제대로 집을 짓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건축주 김씨는 “만나는 업자마다 옹삭시럽다(어렵다)고, 뭐 이런 땅을 샀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이 윤재민 건축가다. 지방(광주) 건축주와 지방(부산) 시공업자, 지방(부산)에서 활동하는 건축가가 의기투합한 셈이다. 아내 송은희씨(40)는 딱 두 가지만 요구했다. ‘아파트처럼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지어달라’ ‘마당을 만들어달라’. 


   
ⓒ시사IN 백승기
윤재민 건축가가 설계한 주택은 주변 건축과 비교하면 더 도드라진다.


윤씨가 설계한 광주 주택에서 외관상 눈에 띄는 건 공중에 붕 뜬 두 딸의 방이다. 세로 대지의 제약을 극복하고 마당을 살리기 위해 캔틸레버(한쪽 끝만 고정되어 있고 다른 쪽은 받쳐지지 않은 보)로 설계했다. 주택의 백미는 외관상 보이는 캔틸레버가 아니다. 광주 주택을 인문학적 집으로 정의할 수 있는 건 터를 100% 활용할 수 있게 한, 캔틸레버를 떠받치고 있는 하얀 벽 때문이다.

“가장 좋은 건축은 벽을 최소로 줄이는 건축이다”라고 말하는 윤씨이지만 유독 캔틸레버를 받치는 구조물은 기둥이 아닌 벽으로 세웠다. 이 벽 때문에 1층을 최소한의 벽으로만 세워 나머지는 창으로 활용하면서 밖의 경관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했다. 밖에서 보면 1층 거실이 훤히 다 보일 수밖에 없어 사생활 보호가 어려운데, 이 벽이 가림막 구실을 했다. 또 기둥이 아닌 벽을 만들면서 공간을 나누었고, 대문에서 꺾어 들어와야 안채에 이르는 한옥의 특징도 담아냈다. 


‘5경’을 100% 살리는 건축 방식

주변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기조는 주택 전체에 퍼져 있다. 모든 창은 벽을 뚫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벽 자체를 없앤 트임 방식으로 냈다. ‘5경’을 100% 살리기 위해서다. 건축가 윤씨는 “부지 바로 옆에 연꽃 호수가 있는데 세로 부지 건축의 제약을 이겨내고 환경, 근경, 원경, 다경, 취경을 전부 활용한 설계이다”라고 말했다. 1월부터 이 집에 살고 있는 건축주 김씨도 만족해한다. “지을 때는 몰랐는디 짓고 보니 우리 집에는 소나무 한그루밖에 안 심었는디, 침실에서 보면 수백 그루 소나무가 집안으로 들어와요. 연꽃 호수도 징허니 이뻐요.”

공중에 붕 뜬 두 자녀 방의 창문도 자세히 보면 연꽃 연못 쪽으로 18도가량 틀어져 있다. 집 앞의 연못을 방안으로 끌어들이기(취경) 위해서다. 손님 치르기를 좋아하는 건축주를 위해 1층(거실)과 2층(침실)을 구분했고 마당에는 작은 수영장까지 마련했다. 


   
ⓒ시사IN 백승기
벽 트임으로 창호를 내 연꽃 연못을 안방으로 끌어들였다


건축주 김씨에 따르면 연면적 198㎡(60평)에 건축비는 평당 450만원이 들었다. 부지 104평은 평당 160만원에 샀다. 이것저것 부대비용까지 합쳐서 5억3000만원이 들었다. 살던 아파트를 팔았고 대출을 일부 받았다. 김씨는 “아파트에 살 때는 혼자 놀기 일쑤였는디 아홉 살 둘째 딸이 골목대장이 되어부렀소. 학교서 오면 가방 던져놓기 무섭게 집을 나가요”라고 말했다. 아내 송씨는 얼마 전 동네 아이들을 불러 마당 수영장에서 물놀이한 모습을 담은 휴대전화 사진을 보여주었다. 

인문학적 집짓기란 이처럼 공간이 주는 제약을 넘어 건축주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요구마저 주택에 충분히 반영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예산(돈)이 아니냐는 물음에 윤씨는 “건축가는 ‘공간 닥터’이다. 의사가 수술하다가 암 덩어리를 보고 수술비 없다고 그냥 덮지는 않는다. 건축주의 진정성만 느껴진다면 건축가는 자신을 던진다”라고 말했다. 듣고 있던 이용재씨가 한마디 보탰다. “내가 말했잖아. 싸가지 있다고.”


   
ⓒ시사IN 백승기
1층 거실(위)에서도 연꽃 연못이 건축주의 집안 연못이 되는 효과를 거두었다. 마당에 놓인 수영장은 딸뿐만이 아니라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다.

   
ⓒ시사IN 백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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