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이 주장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크게 두 가지다. ‘능력에 따라 사람을 쓴다’는 것과 ‘인사에 있어서만은 신중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수석 인사와 장관 인선에서 이 두 가지 원칙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국민이 확인한 것은 ‘문제 있는 인물을 쓴다’는 것과 ‘측근을 중용한다’는 것이었다.

 

청와대는 해명했다. “검증할 사람은 너무 많은 반면 검증할 인력과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리고 부연했다. “임명한 사람들 말고는 쓸 만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물론 이 구차한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초대 내각 인선에 왜 실패한 것일까?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를 종적, 횡적으로 분석해보았다. 종적 분석은 그동안 이 대통령이 집행한 아홉 차례 인사에 대해 시계열 분석을 시도했다. 2000년 이후 이 대통령 본인이 집행한 인사는 서울시장 후보 캠프, 서울시장 직무인수위원, 서울시청 간부, 안국포럼, 한나라당 경선 선대위, 대선준비팀, 대선 본선 선대위, 대통령직 인수위, 청와대 수석 및 장관 인사 이렇게 총 아홉 번이다.

횡적 분석은 이명박 대통령을 둘러싼 파워엘리트 그룹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살폈다.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으로 특징지어진 이 대통령의 파워엘리트 그룹은 더 잘게 대략 10대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포항, 고려대 교수, 싱크탱크, 안국포럼, 중앙대, 법무법인 홍윤, 재무부, 익산 남성고, 삼성, 동아일보 출신이 파워엘리트 소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인사에는 세 가지 '이율배반' 존재

시계열 분석을 통해 살펴본 이 대통령의 인사 특징은 세 가지 ‘이율배반’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창업기냐 수성기냐에 따라 세 가지 형태의 다른 인사 스타일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이런 차이는 △서울시장 후보 캠프와 직무인수위원에서 서울시청 간부진을 임명할 때 △대선 준비팀에서 대선 선대위로 확장할 때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청와대 수석 및 장관을 인선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차이는 ‘창업기에는 능력에 따라 사람을 쓰지만, 수성기에는 경력에 따라 자리를 준다’는 것이다. 선거 캠프를 운용할 때만해도 이 대통령은 지방대 출신을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청와대 비서관 인선에서는 지방대 출신이 고작 4명이었다. 수성기에 자리를 줄 때는 이 대통령이 메인스트림 선호가 두드러진다. 이때 경기고·서울대 유학파가 강세를 나타낸다.

 

두 번째 차이는 ‘창업기에는 두루 사람을 쓰지만 수성기에는 측근을 중용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 선대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선거운동을 도왔던 사람도 많이 참여했다. 그러나 수성기에 가면 이들을 위한 배려는 사라진다. ‘고소영’으로 일컬어지는 코드 인사를 하게 된다.

 

이런 경향은 이미 서울시장 취임 때도 확인된 사실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직무인수위원회의 핵심 보직인 간사와 대변인을 고려대 출신인 조광권 전 시 교통국장과 강승규 전 경향신문 기자에게 맡기고, 인수위에 파견된 서울시청 간부 선임으로 고려대 출신인 이성 시정기획관을 임명해 고려대 출신을 우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조광권 전 서울시 교통국장은 버스업체로부터 220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10월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인물인데도 인수위원회 간사로 임명했다는 점이다. 언론의 문제제기에도 조 전 국장을 중용했던 이 대통령은 이때 문제인물을 중용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교훈을 얻을 기회를 놓쳤다.

서울시장 시절에도 고대 우대, 문제 있는 인물 임명으로 물의

서울시장 직무 인수위원 명단에는 박미석 사회정책수석과 이춘호 전 여성부 장관 후보자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 일부 언론에서 “어렵게 고른 여성 수석, 여성 장관”이라고 묘사되었지만 사실 이들은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전부터 인연을 맺었다. 박 수석은 당시 정치 재기를 노리고 있던 이 대통령에게 특강을 맡기면서 친분을 쌓은 터였다.

세 번째 차이는 ‘창업기에는 실무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며 일임하지만, 수성기에는 실무자를 교체해 견제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재오 최고위원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했다. 그러나 대선준비팀과 대선 선대위에서는 정두언 의원이 실무를 총괄하게 했다. 이후 인수위에서는 박영준 비서관이 실무를 총괄하게 해서 특정 정치인이 2인자로 부상하는 것을 견제했다.

 

횡적 분석을 통해서는 10개 소그룹을 꼽을 수 있다. 이 소그룹이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파워엘리트로 떠오르고 있고, 앞으로도 요직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포항, 고려대 교수, 싱크탱크, 안국포럼, 중앙대, 법무법인 홍윤, 재무부, 익산 남성고, 삼성, 동아일보 출신이 구심이 되어 세력을 점차 확장하는 모양새다.

 

이명박 시대, 10여 개 파워 엘리트 소그룹 부상

포항 출신 대표자는 초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거론되는 최시중 전 선대위 고문이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친구이기도 한 최 고문은 국정원장 후보로도 거론되었다. 이외에 한나라당 이병석 의원, 이춘식 전 서울시정무부시장, 후보 시절 경호를 책임졌던 김두진 전 경감 등이 포항 출신이다. 최 전 고문과 이 의원은 앞으로 이재오 의원 등 당내 세력을 견제하며 이 대통령의 통치를 돕는 일을 할 것으로 점쳐진다.

포항 지연과 함께 고려대 학연도 이명박 시대 파워엘리트의 중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고려대 출신 중에서도 교수 출신이 중용되고 있는 양상이다. 곽승준 교수가 국정기획수석에, 김병국 교수가 외교안보수석에 기용되었다. 이외에 남성욱·현인택 교수 역시 현 정부에서 중용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꼽힌다.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은 교육과학부 장관에 내정되다시피 했다가 마지막 순간에 탈락했다. 한승주 전 총장서리도 입각이 예상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려대 교수를 남편으로 둔 여성도 약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남편은 고려대 최영상 교수이고,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의 남편은 고려대 이두희 교수다. 이런 이유로 정치권에서는 “고려대를 졸업하지 못하면 고려대를 나온 남편이라도 얻어야 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김승유 하나은행장,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윤진식 전 산자부 장관 등 고려대 경영대 출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려대와 함께 주목할 대학은 중앙대다. ‘(요직을 독점한다는) 욕은 고대가 먹고 재미는 중대가 본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중앙대 출신이 약진했다. 이명박(MB)계의 좌장 구실을 하고 있는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박범훈 취임준비위원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변도윤 여성부 장관 후보까지 중앙대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중앙대 윤석원 교수는 차기 농수산식품부 장관 후보로 꼽힌다.

네 번째 주목할 집단은 싱크탱크 출신이다. 유우익 대통령 실장이 이끌었던 국제전략연구원(GSI) 출신인 곽승준 고려대 교수와 남주홍 교수(전 통일부 장관 후보)가 약진한 가운데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가 이끌었던 바른정책연구원 출신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백용호·강만수·제타룡씨 등이 원장을 거쳐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출신 역시 주목받고 있다. 실제 정책과 연구를 주로 한 이 세 연구원 출신이 한몫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데올로기 투쟁을 했던 뉴라이트 그룹은 공천에서 대부분 배제되어 대조적인 모습이다.

하이서울팀 등 참모들이 청와대와 국회에서 급부상

다음으로 주목할 팀은 안국포럼 출신으로 구성된 ‘하이서울팀’이다. 이들은 청와대(박영준 추부길 김희중 배용수)와 정부(신재민), 그리고 국회(백성운 정태근 조해진 강승규 김영우 윤상진 김해수 송태영 권택기 등 공천 신청)로 흩어져 이명박 시대의 주역이 되고 있다. 이 외에 이춘식 김대식 배은희 등 측근이 비례대표로 국회 진출을 노리고 있는데, 이들이 향후 ‘MB계’를 형성하며 여의도 정치에서 어떤 구실을 할지도 관심사다.

BBK 벤처사기 사건을 방어했던 클린정치위원회의 베이스캠프가 꾸려진 법무법인 홍윤 출신도 노무현 정부 시대 ‘화우’나 ‘지평’처럼 조명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준선 대표 변호사(용인 기흥)와 오세경 변호사(부산 동래)가 출마를 준비하고 있고, 원세훈 고문은 행정안전부 장관에 기용되었다. 김길성 고문도 인수위 정책연구위원에 임명된 바 있다.

재무부 출신이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사령탑 구실을 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박재완 정무수석,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 윤진식 전 산자부 장관 등 재무부 출신이 후보 시절부터 줄곧 경제정책을 조율해왔다. 당선자 비서실장을 역임한 임태희 의원도 재무부 출신이다. 재무부 출신이 중용되었다는 사실은 이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호남인맥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특정 고등학교 출신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바로 익산 남성고인데, 최측근인 김백준 총무비서관을 비롯해 선대위 고문이었던 김덕룡(남성중) 의원, 초대 금융위원장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백용호 교수가 이곳 출신이다. 세 명 모두 이명박 정부에서 입지가 확실하기 때문에 MB시대의 호남 인맥은 이들과의 연결고리를 통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특검 이후 삼성 출신 중용 가능성

삼성 출신이 이명박 정부에서도 장관을 배출할 지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남궁석(김대중 정부), 진대제(노무현 정부)에 이어 또 삼성 출신 장관이 나올지 기대를 모았지만 일단은 LG경제연구원장 출신인 이윤호씨가 지식경제부 장관에 기용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아무래도 ‘삼성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삼성경제연구소장을 남편으로 둔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가 낙마하면서 ‘삼성 인맥’은 더 귀해졌다. 하지만 황영기·지승림 등 선대위에서 일했던 삼성 출신이 이명박 정부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이 오랜 기간 몸담았던 현대그룹 출신 중에는 선대위 등에서 일한 사람이 드물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인맥은 바로 이명박 정부에 대해 가장 ‘프렌들리’한 언론으로 꼽히는 동아일보다. 이동관 대변인을 비롯해 정치부장 출신인 최시중 고문 등 동아일보 출신이 언론 정책의 중핵을 담당한다. 대선 과정에서 최규철(전 동아일보 논설주간), 김종완(전 동아일보 편집부국장), 임연철(동아일보 논설위원)씨와 김시관(〈주간동아〉) 기자 등이 캠프에 참여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종적, 횡적 분석의 결론은 간단하다. 점점 기득권 중심에, 측근 위주로 인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과 같은 인사가 반복된다면 ‘코드 인사’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들었던 노무현 정부처럼 이명박 정부 역시 ‘인사’로 인한 비난을 비켜가기 어려울 듯하다. 이 대통령이 ‘능력 위주로, 신중하게 고른다’던 초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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