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휘몰아치는 ‘멘붕(멘탈 붕괴)’의 언덕에 엎어져서 생각한다. 너그들은 누구냐? ‘멘붕 유발자들’의 무용담으로 뒤덮인 뉴스를 보자니, 그저 디저트 판 달걀찜이 날 부른다. 푸딩이라 부르는 캐러멜 커스터드 혹은 베이크드 커스터드다(이름도 제각각이다). 다 까진 무릎에 소독약을 바르듯이 다 까지고 뒤집힌 속엔 디저트 달걀찜이 최고다. 부드러워 씹을 것도 없다. 영화 〈촌마게 푸딩〉의 어린이도 그랬다.

영화 〈촌마게 푸딩〉은 180년 전 일본 에도 시대 사무라이 이야기다. ‘촌마게’는 우리말로 치면 조선시대 ‘상투’다. 헤어스타일이다. 그런데 우리 ‘상투’야 그냥 머리를 길러 다 모아서 질끈 동여 묶어 정수리에 곧추 세워놓았다면, 일본 에도 시대 남자들 헤어스타일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정교한 면도질을 덧붙였다. 일단 앞이마 라인을 이루는 머리도 훌렁 밀어 좀 더 넓힌 뒤, 정수리 가운데 머리는 아파치처럼 길러 올백으로 넘기고 그 바로 양쪽에 두 줄로 경부고속도로를 내서 홀라당 밀었다. 그렇게 가운데 남긴 머리와 역시 남겨둔 양옆 머리는 길러서 뒤로 묶었다. 그게 약 200년 전 일본 에도 시대 남자들 공식 헤어스타일이다. 중국 청나라 남자들도 정수리까지 반질반질하게 머리를 싹 밀고 뒷부분만 빵모자라도 쓴 양 길러 묶었던 걸 생각하면, 그 시대 남자들의 로망은 대머리였나? 아무튼 이 사무라이가 얼떨결에 현대에 오게 됐고, 우연히 만난 싱글맘과 그 집 아들내미 꼬마가 사는 집에 빌붙어 살게 되자 그 은혜를 갚겠다고 집안일을 하다 천부적인 제과제빵사, 파티셰 재능을 발견한다. 뭐 그런 이야기다. 

ⓒ조은미조은미씨가 직접 만든 푸딩.

부드러워 환자식으로도 좋아

이런 게 바로 ‘전화위복’이다. 그런데 이 집 꼬마가 이 (인스턴트) 푸딩을 기가 막히게 좋아한다. 그래서 꼬마가 아플 때 그가 직접 푸딩을 만들어줬더니, 식음을 전폐하며 앓아누웠던 꼬마가 벌떡 일어나 푸딩을 먹더니, 언제 아팠냐는 듯이 귀청 떨어지게 외친다. “맛있다.” 원래 이 푸딩이 부드러워서 환자식으로 딱이다.

이 커스터드 푸딩 재료는 마트에서도 판다. 인스턴트다. 만들기 어렵지 않다. 들어가는 재료도 매우 단순하다. 만들기야 달걀찜 만드는 정도의 난이도니까, 달걀을 깰 줄만 알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들이는 시간도 짧다. 다만 그릇에서 커스터드를 깨끗하게 떨어내는 게 고난도라면 고난도랄까? 그래도 별거 없다. 캐러멜 시럽이 딱 달라붙은 그릇 바닥을 더운 물에 담그거나 살짝 가스불에 데운 뒤(너무 데우면 다 녹아서 망한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처럼 날카로운 과도로 그릇 안쪽을 빙그르르 돌려서 커스터드가 그릇과 떨어지게 만든 뒤, 준비한 접시에 단박에 엎으면 된다. 거기다 접시에 옮기는 이 장면이 ‘서프라이즈’다. 노르스름 하얀색인 줄만 알았는데, 접시에 담고 보면 윗부분만 동그랗게 갈색이다. 갈색 모자 썼다. 이어서 캐러멜 시럽이 주르륵 접시 위로 흐른다. 그럴싸하다. 신기하고 예쁘다. 뭔가 좀 있어 보이고, 뭔가 좀 공 들어간 듯이 보인다.

맛은? 보들보들하고 달달한 바닐라맛 달걀찜이랄까? 달콤한 순두부랄까? 티스푼으로 떠먹는데 말캉말캉 잘도 넘어간다. 달달한 맛을 느낄 새도 없다. 콩알만 한 티스푼으로 퍼먹어도 순식간이다. 눈 깜짝할 새다. ‘누구야? 내 거 다 먹은 게?’ 할 정도다. 거기다 여름에 먹기 좋다. 시원하다. 맛도 인스턴트 푸딩에 댈 바가 아니다.

영화 〈촌마게 푸딩〉(위)에서는 앓아누웠던 꼬마도 푸딩을 먹으면 벌떡 일어난다.

이런저런 ‘자극’에 지쳤다. 심신이 와글와글, 미친 개떼 한 무리가 한바탕 훑고 지나간 기분이다. 그때 내가 왜 그랬지? 그 인간들과 함께하기로 하다니? 과거를 패대기치고 싶다. 보들보들한 게 먹고 싶다. 위장이라도 ‘힐링’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괴로운 분께 영화 〈촌마게 푸딩〉과 이 말캉말캉 보들보들한 푸딩 세 접시를 권한다. 먹다보면 좀 물리겠지만, 미친개한테 물리는 것보단 백만 배 낫다.

그리고 말 나왔으니 달려보는데, 세상사가 그렇다. ‘신들의 만찬’인 줄 알고 좋아라 꽃단장까지 하고 갔는데, 알고 보니 ‘등신들의 만찬’이라거나, ‘넝쿨째 굴러온 당신’인 줄 알았는데 ‘넝마째 굴러온 등신’이라거나 하는 일이 어디 한둘인가? 그래도 아는 게 소화제다.

그래서, 유시민 전 대표께 한 열 접시 퀵서비스로 부쳐드리고 싶다.

쉽게 맛있게  푸딩 만들기 재료 (4인분) 설탕 125g, 물 50㎖, 우유 250㎖, 바닐라빈 ½개(없으면 바닐라 에센스 두세 방울), 설탕 62g, 달걀 125g (중간 크기 달걀 2½개)

필요한 도구 지름 8㎝, 높이 6㎝ 정도 크기로 오븐에 들어가도 되는 작은 그릇 4개 이상, (1회용 작은 호일 용기로 대체 가능), 중간 볼, 큰 볼, 거품기

만드는 법 1. 냄비에 설탕 125g을 넣고 찬물 50㎖를 부은 뒤 가열해 캐러멜 시럽을 만든다. 나무 주걱으로 설탕이 녹을 때까지 젓다가 설탕이 다 녹으면 젓지 말고 가만히 끓는 것을 지켜본다. 설탕 시럽이 캐러멜 색깔(갈색)이 되고 달콤한 냄새가 풀풀 나면 얼른 불을 끄고, 찬물을 담아둔 큰 볼에 냄비째 3초 정도 살짝 넣어서 더 끓지 않게 식힌다. 2. 미리 준비해둔 작은 그릇들에 ①을 2㎜ 정도 따른 뒤 살살 그릇을 돌려 캐러멜로 그릇 바닥을 다 메운다. 이 그릇들을 냉장고에 넣어둔다.

3. 커다란 볼에 얼음 섞인 찬물을 3분의 1 정도 부어 얼음물을 준비해둔다. 4. 중간 크기 스테인리스 볼에 달걀과 설탕을 넣고 거품기로 저어준다. 5. 냄비에 우유를 따른다. 6. 기다란 나무줄기 같은 바닐라빈 2분의 1개를 과도로 길게 반을 갈라 그 속에 새까맣게 점점이 박힌 바닐라 씨들을 슥슥 긁어내 우유에 넣는다. 바닐라빈 껍질도 함께 넣는다(바닐라빈이 없으면 달걀에 우유 부을 때 바닐라 에센스를 두어 방울 넣어준다). 7. ⑥을 살짝 끓인다. 우유 가장자리에 보글보글 거품이 막 오르기 시작하면 얼른 불을 끄고 ④에 이 우유를 부은 뒤 거품기로 젓는다. 아차 하는 순간 우유가 부르르 끓어올라 마구 넘치는 수가 있으니 조심한다. 8. ⑦을 랩으로 감싼 다음, 그대로 얼음물 위에 30분 정도 놓아두고 식힌다. 9. 바닐라빈을 건져내고, 폭이 좁고 따르기 좋은 계량컵 같은 데에 체를 얹고 커스터드를 따라놓는다. 10. ②를 냉장고에서 꺼내 여기에 ⑨를 윗부분 5㎜ 정도 남긴 높이까지 따른다. 11. 바닥이 좀 깊은 오븐용 트레이에 찬물을 2㎝ 높이가량 붓고 거기에 ⑩을 살짝 아랫 부분만 잠기게 올려놓는다. 미리 150℃로 예열해둔 오븐에 넣고 25분가량 굽는다. 오븐에 따라 다르니까 익었는지 체크해야 한다(커스터드 담은 그릇을 살짝 흔들어 다 익은 달걀찜처럼 윗부분이 오들오들 흔들릴 정도면 꺼낸다. 젓가락으로 찔러봤을 땐, 커스터드 크림이 주르륵 흐른다거나 하지 않으면 된다). 12. ⑪을 냉장고에 2시간 정도 넣어둔 뒤 꺼내어 그릇 바닥을 따뜻한 물에 담그거나 약한 가스불 위로 살짝 지나가는 식으로 캐러멜 시럽을 살짝 녹인 뒤, 커스터드 가장자리를 과도로 싹 돌려 얼른 접시에 둘러엎는다.

기자명 조은미 (자유기고가·런던 ‘르 코르동 블루’ 파티스리 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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