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이었다. 남도 끝자락, 순천에서 2남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집은 가난했지만 어려서 ‘솔찬히’ 야무지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인물 자랑 말라는 그 순천에서, 똑똑한 놈들만 들어간다는 비평준화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대학 입학 때에는 취직이 잘되는 전공을 선택했다. 서울로 떠나는 차 안에서 후배는 배웅 나온 부모의 거친 손을 보았다. 부모의 한숨을 거둬내겠다고 촌놈은 다짐했다.

하지만 후배는 세상 공부에 빠져버렸다. 취업 스펙을 쌓는 대신 ‘데모질’을 했다. 동기들은 ‘기억의 습작’을 들으며 연애를 할 때 속사랑만 하다 접기도 했다. 학생회장도 했다. 저 거창한 ‘386’도 아니면서, 도리를 다하고 싶다며 후배는 5학년 운동을 했다. 장교로 지원했다가 계급장을 달기도 전에 군대에서 붙잡혔다. 혼자 총대를 메 감방에 갔고, 다시 일반 사병으로 ‘곱복무’를 해야 했다. 


ⓒ시사IN 양한모

제대하고 그는 취직도 했지만 진보 정치의 밭을 일궈보겠다며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10년, 지금은 동네국수라는 마을 기업을 차렸다.

요즘 유행하는 잣대로 분류하면 후배는 ‘경기동부’이고 ‘당권파’라 할 수 있다. “경기 동부 맞잖아”라고 묻자, “전남 동부죠”라고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웃음기는 금방 사라지고 목소리에는 힘이 쭉 빠졌다. 10년간 동네에서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후배는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 정말 뭐가 진실인지 나도 궁금하다.” 지역 임시 사무국장이 그가 맡은 가장 높은 자리였던 후배에게 진보당의 출구 전략을 물었더니 “파국은 막아야 한다. 당원들 의사에 따라 지도부도 사퇴하고 근본적으로 다 뜯어고쳐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순히 인물 교체로 끝낼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혁신을 주문했다. 굳이 따지자면 당권파라 불리는 ‘기적의 풀’이나 ‘국민 위의 당원’ 따위를 발언한 윗사람과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수익이 나면 독거노인을 돕는 마을기업의 든든한 후원자는 순천에 사는 부모이다. 매실액을 직접 담가 서울까지 보내준다. 조만간 동네국수에 들러 남도향이 물씬 풍기는 매실액으로 만든, 3500원짜리 비빔국수 한 그릇 먹어야겠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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