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연기 생활 20년 만에 영화에서 처음 주연을 맡은 배우 김윤석(위)은, 〈추격자〉를 통해 설경구 송강호 최민식 같은 최강 남우 반열에 합류했다.
인터뷰를 청하기가 민망했다. 오죽 시달렸을까 싶었다. 햇살 좋은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한 김윤석(41)은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겁니다”라며 사람 좋게 웃었다. 그의 말대로 이 배우, 그리고 이 영화를 피해 가기는 어려웠다. 2월14일 개봉한 〈추격자〉는, ‘설과 밸런타인 데이 대목’을 통틀어 평단의 상찬과 관객의 호응이 일치하는 보기 드문 풍경을 연출하면서 쾌속 순항 중이다.
 
영화의 성공에 공을 세운 주역이 많아 보였다. 첫 장편으로 신고식을 제대로 치른 나홍진 감독, 꾹꾹 눌러담는 듯한 연쇄살인범 연기를 선보인 하정우, 스산하면서도 착착 엉겨붙는 공간을 연출해낸 스태프. 그 가운데서도 〈추격자〉를 한몸에 걸머진 듯한 에너지를 내뿜는 배우 김윤석의 호연을 빼놓을 수 없다. 〈추격자〉는 그의 첫 주연작이다.

관객의 반응은 영화의 잔영이 계속 떠오른다는 것이다. 유영철 사건을 소재로 했다고 할 때부터 어떻게 노선을 잡으려나 궁금했는데, 평가가 후하다.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처럼 구성원을 지켜주지 못하는 무능한 사회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욱 생생해졌다. 자기가 부리는 언니들로부터 ‘쓰레기’ 대접을 받는 부패한 전직 경찰 출신의 보도방 사장 엄중호가 연쇄살인범의 뒤를 쫓는 유일한 추격자이다. 그래서 영화는 ‘인간 말종’과 ‘거의 말종’의 대결, 혹은 개싸움으로 곤죽이 되곤 한다. 그 드라마틱한 전환의 과정을, 배우 김윤석은 온몸으로 치러낸다. 오르막 골목길을 뛰다가 지쳐 헛구역질을 하는, ‘내 장사 밑천을 어느 놈이 빼돌려 팔아먹었다’며 눈이 벌개져 돌아다니는 보도방 사장 엄중호가 영화를 떠받치는 것이다. 그는 38시간 연속 촬영이라는 살인적인 일정 속에서도 현장을 지키는 등 맏형 노릇을 톡톡히 했다.

개봉 일주일 만에 팬 카페 회원 3000명

그를 널리 알린 것은 영화 〈타짜〉의 비정한 도박꾼 ‘아귀’ 역이었다. 고작 다섯 장면에 등장하나, 그의 존재감은 주연 못지않았다. 타짜들의 손모가지를 노리는 그는 타짜인 주인공과 두루 조우해 그들을 긴장시켰다. 화장실에서 제 손목을 자르려는 곤(조승우)에게는 “너, 그 손 못 자른다. 놔두라. 때 되면 넘들이 다 알아서 짤라줄 거인디”라고 뇌까린다. 보스의 복수를 다짐하는 양아치들에게는 “죽은 곽철용이가 니들 아부지라도 되냐, 복수를 하게. 그놈 배때기를 쑤시든 사시미를 뜨든 고깃값을 번다, 뭐 이렇게 자본주의적으로 생각해야지”라면서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그는 바늘 끝 하나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악인 ‘아귀’ 역으로 단박 스타 반열에 들었다. 그 기세에 관한 그의 증언이다. “예전에 내 팬 카페 회원이 50명쯤 되었다. 〈타짜〉 개봉 후 순식간에 2000명이 넘더라. 허.”

그에게 첫 유명세를 치르게 한 영화 〈타짜〉. ‘아귀’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번에는 더욱 기세등등하다. 〈추격자〉 개봉 일주일 만에 그 카페의 회원 수가 3000명을 돌파했다. 그는 바야흐로 최정상급 주연배우의 반열에 올라서는 중이다. 1988년 부산 동의대 재학 시절 처음 연기를 시작했으니 꼭 20년 만이다. 송강호가 그의 절친한 지기이다. 살을 부대끼며 한방에서 살기도 했고, 중간에 부산으로 내려가 한 라이브 카페의 ‘바지 사장’으로 일하던 때 그에게 다시 올라오라고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계속 연극 무대를 지켰고, 브라운관을 수놓았고, 영화를 다채롭게 했다. 극단76, 연우무대, 학전 등을 거치며 기국서·오태석·김민기 등 공연계의 전설과 호흡을 맞췄다.

천상 연극쟁이였던 그가 스크린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이었다. 뮤지컬 〈의형제〉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캐스팅 제안을 해온 것. 최 감독이 〈타짜〉에서 ‘아귀’ 역을 맡긴 것은 의외였다. “최 감독은 캐스팅으로 자기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에게서 아귀를 소화할 수 있는 어떤 면을 본 것이라고 생각할밖에.”

최동훈 감독은 그를 일러 ‘밸런스 감각이 뛰어난 배우’라고 평했다.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약하게, 기운이 옅으면 이쪽에서 강하게 나가 그 장면을 완성할 줄 안다는 것이다. 흔히 ‘열연’이라는 상찬은, 홀로 튀거나 상대방을 잡아먹으면서 자기가 돋보이려는 욕심 많은 연기의 완곡어법인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김윤석은 자기의 연기보다 그 장면과 작품을 우선에 두는 연기 스타일을 갖고 있다. 김윤석은 “연극 무대에서의 경험이 그런 패턴을 낳았을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개인의 성정이 뒷받침되지 않고서야 연기의 밸런스라는 것이 가능할 리 없다. 그 세계에서 튀지 않으면 더디 가기가 십상이다. 그래서 20년이나 걸렸는지 모른다.

대신 그의 욕심은 어떤 장면도 허투루하지 않는 데서 발현된다. 그는 방송, 게다가 흔히 관성화한 연기의 대명사로 각인된 아침 드라마에서도 자기만의 연기를 선보였다. 저 사람이 카리스마가 짱짱한 악인 연기를 해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후줄근한 담담 연기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그런 걸 눈여겨봐주었다면 저는 고맙죠”라며 기꺼워했다.

2월14일 개봉한 〈추격자〉는 일주일 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해 순항 중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제목부터 기가 찼다. 〈있을 때 잘해〉. 연기하기가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아니다. 묘한 재미가 있다. 한번 해보자 싶었다.” 예를 들어 드라마에서는 식탁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많은데 흔히 연기자들은 카메라 불이 들어오면 대사 치는 데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가장 가볍고 얇은 반찬, 즉 콩이나 멸치 등을 집어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냥 밥 먹고 반찬 집어먹고 물을 마셨다. 할 것 다 하고 대사를 쳤다. 물도 마시다 트림하고, 마저 들이켜는 식으로 천연덕스럽게 굴었다. 흔히 보던 연기와 호흡이 다르니 스태프가 아우성이었다.

〈추격자〉는 개봉 일주일 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고, 입소문 덕에 오히려 탄력이 붙었다. “다음 주에는 인터넷도 안 보고 잠수 타야 해요. 〈추격자〉가 뭐가 그렇게 대단해? 이런 건 좀 아니다, 이런 말들이 나올 거거든요”라며 그는 웃었다. 질투와 시기의 순간에 대한 예감은 얼마나 행복한 걱정인가.

기자명 노순동 기자 다른기사 보기 lazys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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