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이 치러진 아이오와, 플로리다, 뉴햄프셔, 그리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밋 롬니 후보는 선거 광고 두 가지를 내보냈다. “강대국 미국의 낙관주의로 돌아갈 시간입니다(It’s Time to Return American Optimism)”라는 제목의 첫 번째 광고는 “이번 선거를 (오바마 정권하에서) 잃어버린 미국적 가치를 되찾기 위한 계기로 삼자”라는 롬니의 목소리를 담았다. 반대로 다른 광고는 롬니를 가족적인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로 묘사했다.

모두 후보의 득표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만, 광고가 목표로 삼는 대상은 달랐다. 첫 번째 광고는 당에 헌신적인 공화당원으로 하여금 경선 당일 꼭 투표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두 번째는 아직 지지하는 후보를 정하지 못한 공화당 내 부동층을 겨냥해 롬니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목적이었다.

〈뉴욕 타임스〉는 이 두 가지 광고를 사례로 들며 “새로운 기술을 통해 전보다 쉽게 얻을 수 있게 된 유권자 정보가 선거운동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공중파 텔레비전 광고로 눈길을 끌거나 운동장에서 대중을 동원하는 시대는 가고, 이제는 유권자의 성향을 꼭 집어 공략하는 맞춤형 서비스 시대가 온 것이다. 전문용어로 마이크로타기팅(microtargeting)이라 부르는 ‘유권자 맞춤형 선거 전략’은 올해 미국의 대선 정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인 밋 롬니의 광고. ‘강대국 미국의 낙관주의로 돌아갈 시간입니다’라는 글귀가 보인다.

40년 전에는 뉴욕에 사는 20대 여성이나 캔자스의 40대 남성이나 동일한 공중파 텔레비전 광고에 노출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심지어 한집에 사는 가족이라도 각기 다른 광고에 노출될 정도로 유권자에 대한 다양하고 세밀한 분석이 가능해졌다.

예컨대 미국 선거에서 대표적인 격전지로 꼽히는 플로리다 주 팜비치 카운티에 사는 가상의 유권자가 두 명 있다고 치자. 첫 번째 유권자 제니퍼는 32세, 미혼 흑인 여성이고 종교는 없다. 교육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고, 현재 팜비치에서 교육 관련 컨설턴트로 일한다. 제니퍼는 〈뉴욕 타임스〉를 구독 중이며, 지난 두 차례 선거에서 모두 투표에 참여했다. 두 번째 유권자인 존은 45세, 결혼한 백인 남성이고 기독교인이다.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현재 팜비치에 있는 월마트 매장에서 일한다. 미국총기협회(NRA) 회원이고 구독하는 신문은 없으며, 지난 10년간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개인정보 사들여 ‘유권자 지도’ 작성

인종, 종교, 나이, 구독하는 잡지나 신문, 각종 멤버십, 과거 투표 여부 등 여러 가지 정보를 바탕으로 타기팅 회사들은 제니퍼와 존이 민주당을 선호할 확률과 공화당을 선호할 확률, 이번 선거에서 투표장에 갈 확률을 계산한다. 심지어 어떤 이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통계적인 확률로 추측해낼 수 있다. 제니퍼가 낙태 문제를 가장 중요한 이슈로 생각한다면, 존은 선거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슈 가운데 총기 규제 문제에 가장 민감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정보를 모으고 분석한 뒤, 각 선거 캠프가 맞춤형 전략을 짜는 것이다.

마이크로타기팅은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 덕분에 떠오를 수 있었다. 온라인 쇼핑 시장의 급속한 성장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터넷을 통해 유권자 정보를 모으는 일이 쉬워졌다. 이런 정보를 모아 선거 캠프에 판매하거나 맞춤형 전략을 짜주는 회사가 미국에 많아졌다. 마이크로타기팅 회사들이 가진 정보는 나이부터 성별, 거주 지역, 학력, 직업, 결혼 여부, 종교 등 유권자의 기본 인적 사항뿐 아니라 과거 투표 여부, 정치 후원금 기부내역 등 정치적인 활동까지 포함한다.


ⓒReuter=Newsis마이크로타기팅 전략은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에도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타기팅 회사들은 유권자들이 어떤 제품을 소비하는지, 여가활동으로는 무얼 하는지 따위 정보를 소비자 정보를 판매하는 회사들로부터 사들인다. 인포유에스에이(InfoUSA)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사들인 개인정보를 토대로 GIS(지리정보 시스템)를 통해 주마다 선거구 ‘유권자 지도’를 만들면 후보 캠프는 지도를 보며 홍보 전략을 정한다. 곧 텔레비전 광고, 라디오 광고, 우편 유인물, 직접 방문 가운데 어떤 홍보 수단을 사용할 것인지, 메시지는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따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미국 선거에서 본격적인 타기팅 전략이 시작된 건 2000년 대통령 선거부터다.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조지 부시 후보 측의 전략가 칼 로브는 급속히 늘어나는 인터넷 사용량에 주목했다. 로브를 비롯한 부시 캠프의 참모들은 각 주와 카운티, 타운 단위로 지역을 세분화한 뒤 인종·연령·직업군 별로 세세한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부시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플로리다 주의 선거 전략도 일종의 마이크로타기팅이었다. 당시 부시 캠프는 교회 예배에 주기적으로 참석하는 비공화당원과 히스패닉 학부모들을 당선에 제일 중요한 유권자 집단으로 여겼다. 이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이슈인 독실한 신앙심과 교육개혁 정책(No Child Left Behind:낙오 학생 방지)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또 미국 전역에 걸친 230여 개의 지역 미디어 시장을 일일이 분석한 뒤, 해당 지역 부동층 유권자들의 표를 얻는 데 드는 비용이 싼 곳을 효율적으로 공략했다.

민주당도 2006년부터 마이크로타기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008년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에도 타기팅 전략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오바마 캠프는 우선 투표율이 저조한 젊은 흑인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것이 승리를 위한 열쇠라고 판단했다. 젊은 흑인 유권자들이 즐겨 보는 MTV와 BET (흑인 연예 TV) 채널에 집중적으로 선거 광고를 내보냈다.

선별적 광고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2008년 대선에서 젊은 흑인 유권자(18~ 24세) 가운데 절반 이상인 52.3%가 투표에 참여했고, 이는 오바마 후보의 득표율을 크게 높였다고 민주당 전략가들은 분석한다. 52.3%는 1972년 선거 이후 해당 인종·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투표율이었다. 이제 마이크로타기팅은 대선, 하원과 상원, 주지사 등의 연방 선거뿐 아니라 주의회 선거를 비롯한 지방 선거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이념 양극화’ 부추긴다는 비판

그렇다면 타기팅 전략의 확산이 민주주의와 유권자들에게도 긍정적이기만 한 걸까? 에이탄 허시 예일 대학 교수(정치학)는 급격히 증가하는 유권자 정보와 이를 이용한 타기팅 전략이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에 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후보자들이 유권자들의 성향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갖게 되면, 자신에게 투표할 만한 유권자에게만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유권자는 자연스레 편향된 정보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고, 후보자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당할 위험이 있다.

또 투표를 할 가능성이 낮은 유권자를 가려낸 뒤 아예 캠페인 대상에서 제외해버리는 것도 문제다. ‘공을 들이면 넘어올 것 같은’ 유권자 집단에 유세나 홍보를 집중하는 사이, 정치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열성 야당(또는 여당) 성향으로 분류된 유권자들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 과정에서 배제된 채 각 후보의 공약이 뭔지 들어볼 기회조차 잃게 되는 셈이다.

미국 정치 전반에 걸친 문제점으로 대두된 것이 이념의 양극화 현상이다. 이 또한 마이크로타기팅 전략의 확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간다.

기자명 유혜영 (자유기고가, 하버드 대학 정치경제학 박사과정)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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