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가슴이 무너지던 날
  • 허은선 기자
  • 호수 235
  • 승인 2012.03.1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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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7일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구럼비 바위 인근이 발파되었다. 발파가 시작된 사흘간 강정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간대별로 기록했다.
3월7일 오전 9시, 제주 강정마을은 또 하나의 섬이었다. 사방에서 출입이 통제됐다. 제주공항에서 강정마을까지 거리는 약 40㎞. 리무진 버스는 굳이 3㎞를 더 달려 제주월드컵경기장 정류장에 멈췄다. 강정마을 어귀에 서 있던 경찰이 팔을 휘저으며 반원을 그렸기 때문이다. 결국 택시를 타고 강정마을까지 3㎞를 되돌아갔다.

9시40분, 강정교 위에 있던 마을 주민 수십 명이 집에 돌아가게 해달라며 아우성을 쳤다. 주민 한 명은 손잡이에 몸을 의지한 채 다리 외곽을 아슬아슬하게 걷다가 경찰에 제지당했다. 강정교 근처 리조트에 머물던 관광객들도 발이 묶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리 위에 있던 해군기지 반대 활동가 이종화씨는 “오늘 아침 이미 10명 이상 연행됐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3월7일 영국 출신 환경운동가 앤지 젤터 씨(오른쪽 사진 왼쪽)가 카약을 타고 구럼비 바위에 올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깃발을 들고 있다.

오전 11시20분, 펑 하는 소리에 포구가 술렁였다. “발파야?” “바위는 아닌 것 같은데?” 잠시 후 구럼비 해안 바위 인근에서 1차 발파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해군과 기지건설 시공사인 대림산업은 이어 오후 4시, 4시20분, 4시50분, 5시5분, 5시20분 바위 인근 폭파를 계획대로 완료했다. 이날 폭파에 사용된 화약의 양은 560㎏. 마을 주민들이 육로를 막자 해상으로 운반한 화약이었다. 해상운반이 불법이라는 논란이 일자 서귀포경찰서는 “총포·도검·화약류단속법을 근거로 해상을 이용한 운반을 명령했다”라고 밝혔다.

오후 6시, 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 민주통합당 정동영 상임고문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섰다. 해군기지사업단장과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이정희 대표는 “(사업단장이) 화약을 오전에 이미 장전해서 그대로 두면 그게 더 위험하다고 발파를 강행했다”라는 단장의 말을 전했다. 

한명숙 대표 연설에 야유 터지기도

오후 7시,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도 도착했다. 한 대표는 “이 정권이 국민의 목소리를 왜 안 듣는지 가슴이 먹먹하다. 총선에서 심판하자”라고 말했다. 박수 소리와 “너희도 그랬어”라는 야유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한 대표는 마을의례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야권연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서둘러 공항으로 떠났다. 한 대표가 당일 저녁 서울로 돌아가자 주민 일부는 “사진 찍으러 왔나” “차라리 오지 말지”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3월8일, 새벽 5시35분. 마을에 사이렌이 울렸다. 사이렌이 울리기로 예정됐던 5시 무렵부터 마을을 서성이던 주민들이 일제히 강정교로 향했다. 혹시 모를 대치 상황에 대비해 내복 몇 겹을 입고 장갑을 낀 30대 청년, 전날 밤 비행기를 타고 급하게 제주도에 왔다는 20대 여대생 등이 함께 걷거나 뛰고 있었다. 그러나 약 5분 뒤 도착한 기지 공사장 정문은 이미 막혀 있었다. 가로로 정차된 경찰버스 한 대 양쪽에 경찰이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건장한 남성 몇 명이 ‘영차영차’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몸을 부딪치더니 강정교 진입에 성공했다.

해안 인근 발파가 다시 시작된 낮 12시25분, 서경석 목사 일행을 태운 관광버스 6대는 강정마을을 향하고 있었다. 해군기지 찬성 집회를 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고엽제전우회·해병대구국결사대 회원 등이었다. 20대 대학원생과 휴가를 내고 온 30대 직장인도 있었다. 인터넷 안보 카페를 운영하는 여성도 있었다. 이들은 오전 8시10분부터 비행기 3대로 제주공항에 도착해 한라수목원에서 도시락을 먹고 강정마을로 이동했다.

낮 12시45분, 강정교에서 약 80m 떨어진 체육공원에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찬성 집회가 열렸다. “군 기지라는 오해 때문에 시간 낭비를 해왔다”라는 찬성 쪽 목소리와 “절차적 민주주의가 사라졌다” “민항은 제주도민을 현혹하기 위한 사기극일 뿐이다”라는 반대 쪽 목소리가 한데 섞여 울렸다.

옆에 있던 고권일 해군기지 반대 강정주민대책위원장에게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해군기지 공사장 외벽에 그려진 조감도를 가리켰다. ‘아름다운 제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문구 아래 크루즈선과 관광객 그림이 있었다. “독도함·잠수함·고속초계함 등 군함 20여 척이 저런 항구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까. 오히려 군사작전이 유출(돼 안보가 저해)될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 김영민 전략정책관은 “공군비행장에 민항기가 드나들듯 해군기지에도 민항선이 드나들 수 있다. 다른 해군기지도 밖에서 쳐다보면 다 보인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3월 7일 해안가에서 발파가 시작되었다

오후 3시30분, 경찰에 가로막혀 마을로 진입하지 못한 보수 세력은 “해군기지를 적극 추진하라”고 외치고 해산했다. 찬성 집회에 참가한 한 청년은 “애국가가 나올 때만은 조용히 해야 하지 않나”라며 강정교에 있던 주민들을 비난했다. 반대 집회 쪽에 서 있던 한 시민이 “저들이야말로 외부 세력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날 구럼비 부근 발파는 총 4회 이뤄졌다.

3개월 동안 매일 4~5차례 발파 예정

3월9일 오전 10시. 강정마을 사거리에 있는 두 슈퍼마켓에 전화를 걸었다. 2차선 도로를 두고 마주한 채 찬반으로 의견이 갈려 유명한 곳이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코사마트 주인은 “오늘도 같아요. 똑같아요. 전쟁이에요”라고 말했다.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나들가게 주인은 “어제는 찬성 집회가 있었는데 오늘부터 또 반대 쪽 이야기만 언론에 나가요. 반대 쪽 주민 보면 안타까워요. 이미 시작한 공사를 주저할수록 고통이 심해져요. 우리 다 농사짓던 사람들인데…”라고 말했다. 해군기지사업단은 공보담당관을 비롯해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렵게 연결된 사업단장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시사IN 조남진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이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이날 하루 언론은 야권의 한 비례대표 예비 후보의 ‘해적기지’ 발언 논란과 강용석씨의 강정마을 방문 소식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조선일보>는 ‘제주 기지 반대, 맹꽁이·구럼비 바위 다음엔 또 뭔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반대 세력이 느닷없이 들고 나온 구럼비 바위는 제주 해안 곳곳에 흔하디흔한 지형’이라고 썼다. 천주교 문규현 신부와 오영덕 제주환경운동연합 대표 등 20여 명은 구럼비 해안으로 진입하다가 펜스에 구멍을 낸 혐의(재물손괴)로 체포됐다. 발파작업으로 인해 구럼비 해안이 흙탕물로 변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날 오후 7시40분까지 이뤄진 발파는 총 4차례였다. 제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영화평론가 양윤모씨의 단식은 31일째를 맞았다.

해군은 앞으로 3개월 동안 매일 4~5차례씩 발파작업을 강행할 방침이다. 해군기지 시공사는 삼성물산과 대림산업이다. 발파를 위해 사용될 화약의 양은 총 43t이다. 

제주도는 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강행에 맞서 3월20일 청문회를 실시할 계획이다. 15만t급 크루즈선 입출항 문제 등 기술 검증을 두고 공방이 예상된다. 해군이 청문회에 응하지 않으면 ‘공유수면(공공의 목적에 사용되는 국가 소유 수면) 매립공사 정지 행정명령’을 내릴 방침이다. 그러나 도지사의 명령은 국방부 장관이 취소하면 즉시 효력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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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교 앞은 주민과 경찰의 대치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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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활동가들이 바위에 접근하자 해군이 카약을 전복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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