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의 제헌헌법에는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을 규정한 조항이 있었다. 박정희 시대에 삭제된 이 조항은 외국의 헌법에서 베낀 게 아니라 국회에서 장시간 치열한 토론 끝에 성립된 것이었다. 지금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제헌헌법 제18조 제2항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해서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놀랄 만큼 진취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익균점권이라는 개념의 선진성은, 가령 최근 이 사회에서 얘기되고 있는 ‘이익공유제’와 비교해보면 금방 드러난다. ‘이익공유제’의 목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이것은 재벌에 의한 폭군적 지배구조를 완화하고, 경제적 균형을 어느 정도 바로잡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익공유제가 성립하자면 무엇보다 재벌의 동의가 있거나 적어도 재벌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 이 사회에는 이 나라의 실질적인 ‘주인’은 재벌이며, 일반 시민은 ‘하인’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광범하게 깔려 있는 것이다. 


‘자유협동주의’ 이상으로 삼았던 전진한

주목해야 할 것은 제헌헌법의 이익균점권은 이익공유제와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익균점권의 논리에는 자본가의 눈치를 보는 왜소한 자세가 들어 있지 않다. 이익균점권의 핵심 논리는 노동자에게는 자본가와 함께 기업 활동의 열매를 나누어 가질 ‘당연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실로 문명적인 자본-노동관이다. 실제로 제헌국회에서 이익균점권을 주창했던 전진한(錢鎭漢)에 따르면, “노동을 상품시하여 자본에 예속시키는 것은 고루한 사상”이다. 그의 생각으로는, 노동자는 ‘노력’을 출자했다는 의미에서 자본가와 다름없는 자본가이며, 따라서 이윤을 균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논리는 오늘의 상황에서 과격한 급진사상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전진한은 반공 우익 성향의 대한노총을 건설하고, 대한민국 초대 사회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그러나 전진한은 간단히 좌우 어느 쪽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상가는 아니었다. 그는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반대한 것에 못지않게 자본가에 의한 일방적 사회지배를 극히 우려했다. 그 결과, 결국 독재자 이승만과 결별하고, 노농당(勞農黨)이라는 독자적 정당을 만들어 “대중의 창의와 자유를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사회 건설에 헌신했다. 개인적 자유가 보장됨과 동시에 상호연대의 협동체 속에서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자유협동주의’가 그의 이상이었다.

따라서 그는 150년 전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 절망적인 상황에 떨어졌다가 다종다양한 자율적 협업체와 협동조합을 형성함으로써 마침내 세계 일류국가로 등장한 덴마크의 예를 들어서 시민들 자신의 자립·자치·협동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진한의 자유협동사회란 사람마다 알맞은 자기 자리를 얻어서 거기서 자신의 타고난 소질과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는 사회(各得其所 各盡其性), 즉 “음악에 있어서 악사가 각자 법열 속에서 자유로이 자신의 악기의 성능과 자기의 개성을 발휘하여 전체와 협동함으로써 하나의 심포니를 형성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사회였다.

전진한은 여러모로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극빈 가정 출신으로, 여관의 심부름꾼으로 소년기를 보내고, 나중에 명문 대학을 나온 뒤에는 입신출세가 아니라 민족 독립과 자립을 위한 협동조합 운동에 헌신하다가 투옥되어 옥살이를 했고, 풀려나와서는 오랫동안 산중에서 참선을 하다가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 후 정치가로 활동했지만 죽을 때까지 참선수행을 계속했다.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에게는 “정치는 부업이고, 참선이 본업이었다.”(〈노동법 제정과 전진한의 역할〉(이흥재 지음) 참조)

지금 우리는 갈수록 심화되는 경제적·정치적·사회적 불안과 앞이 보이지 않는 혼돈 속에서 침로를 잃고 헤매고 있다. 온갖 정황으로 보아 이제 자본주의 체제로는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상황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장기적 안목을 갖춘 예지의 정치,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상·철학임은 말할 것도 없다. 전진한의 정치사상과 그의 치열한 실천은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암시해주는 소중한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기자명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