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눈이 어두워 엄두가 나지는 않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 택시 기사이다. 민생을 살핀다며 종종 택시 기사를 하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같은 호사가 방식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악다구니를 쓰며 울고 웃는 진정한 생계형 택시 기사를 해보고 싶다. 교통법규와 순경이라는 국가 공권력에 짓눌려가며 놀랄 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매일 만나 부딪치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릴 것 같아서다.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내가 만난 택시 기사 가운데는 정말 ‘어메이징한’ 분이 많았다. 특히 선거철에는 정치판에서 주워듣는 것보다 택시에서 얻는 힌트가 더 많을 지경이었다. 그중에서도 정치부 기자 시절 나를 언제나 실망시키지 않은 분들은 광주의 택시 기사였다. 이분들의 정세 분석은 정확하고 심지어 고급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광주 경선 때 만났던 택시 기사의 얘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결과? 보나마나여. 이인제는 끝났어. 노무현이는 인생에 스토리가 있잖여.”


ⓒ한성원 그림

산전수전 공중전 육박전 비키니전 등 온갖 풍상을 겪기로는 이집트 카이로의 택시 기사도 광주 택시 기사 못지않다. 그래서인지 카이로의 택시 기사 역시 입담 좋기로 유명하다. 그들은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아빠진 택시를 몰고 매연으로 자욱한 거리를 누비며 ‘나가수’ 출연자처럼 소리를 지른다. 무덤에 누운 사드 백작도 놀라 벌떡 일어날 정도로 엽기적인 방법으로 돈을 뜯으려는 교통경찰과 씨름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깔깔 웃는다. 거드름 피우는 정치분석가가 울고 갈 해학을 풀어놓는다. 이집트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며 영화감독이기도 한 할레드 알하미시가 쓴 〈택시〉(열린책들 펴냄, 2011년)는 바로 이 카이로 택시 기사들 얘기이다. 이 책을 한참 읽다보면 이것이 결코 아프리카의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곳에는 과거와 현재의 우리 모습이 겹쳐 있고, 우리가 현재를 잘못 다스리면 반드시 맞게 될 미래가 펼쳐져 있다.

이 책에는 이집트의 악명 높은 검열제도 아래서 줄타기에 성공해 겨우 살아남은 이야기 58편이 실렸다. 물론 이 책에는 정치적 해학과 기지가 넘치는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차 할부금과 애들 과외비를 대느라 운전대 쥐고 순직하게 생긴 가장의 얘기도 많다. 여성을 악마 취급하는 꼴통 이슬람 원리주의자, 소녀들에게 끊임없이 성희롱 발언을 해대는 변태, 자살 테러범을 동경하는 염세주의자 등등. 한국과 마찬가지로 세상 어느 곳에나 있기 마련인 ‘지질이’들의 얘기도 섞였다. 하지만 작가의 눈을 통해 보면 이들의 모습마저도 그리 혐오스럽지는 않다. 작가의 마음이 따듯해서가 아닐까. 


무바라크 집권 시절 음울했던 카이로

이 책에는 작가가 2005년 4월부터 2006년 3월 사이에 택시 기사들과 나눈 얘기가 실렸다. 지난해 아랍세계에 번진 시민혁명의 불길에 휘말려 이집트를 30년 가깝게 통치해온 독재자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났는데, 그가 그렇게 맥없이 몰락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던 시절이다. 그 때문에 책 속의 사회 분위기는 유신 말기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음울하다. 택시 기사들은 소리 지른다. “차라리 소나 말이 부러울 지경이에요.” “이곳은 정글도 아니에요, 그냥 지옥이지.” “전 세계에서 이집트 국민이 가장 굴욕을 당하는 곳이 어딘지 아세요? 바로 여기, 우리나라에서지요.”


〈택시〉할레드 알하미시 지음열린책들 펴냄
한 사나이가 사막을 걸어가다 알라딘의 마술 램프를 주웠다. 램프를 문지르니 정말로 지니가 튀어나왔다. 지니가 소원을 말하라기에 100만 파운드를 달라고 했더니 50만 파운드만 내미는 것이 아닌가.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램프 지분의 50%를 정부가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해준 기사는 정부가 자신들의 소득을 도둑질해간다며 안전띠 의무화를 실례로 들었다. 길이 너무 막혀 시속 30㎞ 이상 달리기 힘든 카이로에서 정부는 어느 날 갑자기 안전띠 착용을 의무화하고 위반하면 호되게 벌금을 물리기 시작했다.

안전띠 값이 치솟고 소수가 판매를 독점했다. 교통경찰은 눈에 불을 켜고 돈을 뜯기 바빴다. 순식간에 카이로 택시 기사 25만명 수입의 절반이 날아갔다. “안전띠는 모두 불량입니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그냥 풀려요. 정부도 경찰도 장식이란 걸 알죠. 우리는 거짓을 살아요. 정부가 하는 일이라곤 우리가 거짓을 믿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밖에 없죠.”

작가가 택시를 타고 카이로 대학을 지나면서 대학 나온 티를 내자 오래전부터 궁금한 일이 있었다며 기사가 묻는다. ‘우리가 미국 정부한테 너희가 보유한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다 없애지 않으면 국교를 끊고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하면 안 될까요?’ 아니면 ‘너희가 테러리스트를 지원해왔으니 경제제재 조처를 하겠다고, 라이스(당시 미국 국무장관)가 만날 약한 나라들에게 써먹는 수법대로 돌려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서 그는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미국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리고 아랍의 언론도 그걸 다 받아적는 걸 보면 머리가 홱 돌아버릴 것 같다. 진짜 심각하다’고 하소연한다. 대학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고 자랑했던 작가는 택시에서 내릴 때까지 그 기사의 질문에 변변한 답을 못했다. 


사흘 밤낮 운전대 잡는 기사들

작가는 어느 날 택시를 타고 가다가 길이 막히지도 않는데 주변 풍경이 정지했음을 깨달았다. 옆을 보니 택시 기사가 정신없이 자고 있는 게 아닌가. 흔들어 깨우자 기사는 백배사죄하면서 다시 출발했으나 오래지 않아 차가 한쪽으로 쏠리더니 다시 곯아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는 자동차 할부금을 맞추기 위해 사흘째 잠도 안 자고 운전하는 중이었다. 밥도 차에서 먹고, 물도 차에서 마셨다. 작가가 집에 들어가 잠시라도 눈을 붙이라고 권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그는 집에 가면 아내와 자식이 쫄쫄 굶고 있을 것이라며 절대로 운전대를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작가는 불안한 마음으로 차에서 내리면서 그가 무사하기만을 신께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택시 기사가 운전대를 잡고 죽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드문 일이 아니다. 매년 적지 않은 택시 기사들이 앉은 자리에서 응급실로 실려간다. 특히 오랜 꿈이었던 개인택시를 막 장만한 기사들이 위험하다고 한다. 그들은 일하는 대로 돈이 벌리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르고 과로하다 변을 당한다. 우리나라든 이집트든 대부분 가난한 택시 기사들은 집이나 차 할부금을 갚으려고, 자식 과외비를 대려고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자신을 혹사하다 시들어간다.

택시 기사들은 매일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기 때문에 보도에 민감하다. 이집트의 택시 기사들은 5공 시절의 ‘땡전뉴스’처럼 틀기만 하면 무바라크 대통령 동정을 쏟아내는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작가와 인터뷰한 택시 기사의 말이 걸작이다. “대통령이 무슨 개통식을 하든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하나 마나 한 뉴스는 개소리 속보라고 알려줬으면 해요. 대통령은 기사 쓴 사람을 승진시켜야 하니까 개소리 속보를 봐야 하지만 우리는 다른 걸 보면 되잖아요.” 그는 우리가 자기보다 백배는 더 똑똑하고 세상을 잘 안다는 걸 정보부 장관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는 얘기를 했는데, 이는 요즘 공중파 방송사의 높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아닌가(애국가와 시청률을 다투는 종편이야 무시하고 넘어간다고 쳐도). 작가에 따르면 평범한 이들이야말로 배우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정말 좋은 교사이다.

카이로까지야 어렵다 해도 조만간 광주에라도 한번 다녀와야겠다. 한나라당, 아니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교체 투수 없이 15회를 던져야 하는데 괜찮을까요, 안철수씨는 정치를 한다는 겁니까 만다는 겁니까, 문재인씨에게는 스토리가 있는 건가요, ‘나꼼수’ 비키니 소동을 어떻게 보세요? 그동안 만난 어떤 정치인보다 훨씬 예리했던 광주의 택시 기사들에게 묻고 싶은 게 많다.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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