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은 8개월 후에 치러지는 대선의 가늠자인 데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1년의 성격을 좌우할 선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사IN〉은 이번 총선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몇 가지 주제를 잡아, 이와 관련한 지역구의 흐름을 차례로 소개한다. 첫 번째 주제는 ‘기죽은 친이’와 ‘물오른 친노’. ‘MB맨’과 ‘노무현의 사람’이 직접 맞붙을 공산이 있는 지역구도 따로 소개한다.

“도대체 청와대가 도움이 되어야 말이지! 언론사 간부까지 했단 양반이 왜 그런 닭짓을 했대?”

대뜸 욕부터 튀어나왔다. 요즘 지역구 사정이 어떤지를 물으려던 기자의 전화에 새누리당의 한 친이계 예비후보가 보인 반응이다. 그가 지목한 ‘닭짓 언론인’은 2월10일 사퇴 의사를 밝힌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이날 언론에는 “2008년 전당대회 때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에게 300만원 줬다가 돌려받은 것으로 지목된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씨가 검찰에서 돈 돌려받은 사실을 김효재 당시 캠프 상황실장에게 보고했다고 실토했다”라는 내용이 일제히 보도됐다. 당초 자기가 썼다고 했던 진술을 번복한 이유에 대해 고씨는 “정작 책임 있는 분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했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친이계 인사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지금이 어느 땐데 아랫사람을 찍어눌러서 입을 막으려고 했느냐” “아직도 청와대가 힘이 있는 줄 착각하는 모양이다”라는 비난들이다.

 

친이계 후보들은 고민이 깊다. 당에서는 공천을 꺼리는 분위기고, 본선에서는 강력한 ‘반MB 정서’가 버티고 있다. 무엇보다 내부 단합이 무너졌다. 친노 후보들은 2010년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 약진을 꿈꾼다. 한 손에는 ‘노무현의 못다 이룬 꿈’을, 다른 한 손에는 ‘국정 경험’을 들고 서 있다.

 


역대 선거에서 여당 후보들은 대체로 ‘여권 프리미엄’을 적극 활용했고, 그 효과를 적잖이 봤다. 야권이 ‘집권당 심판’을 단골 메뉴로 올렸다면, 여당 후보들은 ‘정책 추진력’이나 ‘예산 지원’ 등을 앞세웠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치러진 18대 총선은 당시 한나라당 후보들이 여당 프리미엄을 한껏 누린 대표 사례다. 특히 여당 중의 여당으로 불린 친이명박계 후보들은 이른바 ‘형님 공천’ 등에 힘입어 예선을 가뿐히 통과했을 뿐 아니라, 본선에서도 뉴타운 정책 등 이명박 정부 주요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등에 업고 대거 당선됐다.


친이계 인사들 총선 ‘3중고’

그런데 4년 만에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그동안 청와대와 정부, 국회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해온 친이계 인사들이 19대 총선을 앞두고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당장 당내 공천에서부터 거대한 장벽에 부딪혔다. 4년 전 친이계로부터 이른바 ‘공천 학살’을 당했다고 여기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사실상 공천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돈·김종인·김세연 등 당 안팎 출신 비대위원들은 노골적으로 ‘친이 용퇴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MB 정부의 대표적 실정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할 경우 민심의 반감을 살 우려가 크다”라는 식이다.

친이계가 부딪힌 두 번째 장벽은 본선 경쟁력이다. 유권자들 사이에 워낙 반MB 정서가 강해서 친이 상징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오히려 ‘심판의 대상’에 오르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친이계 후보 사이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번 정부와의 관련성을 오히려 감추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중앙선관위 예비후보 등록현황에 나타난 이력을 보면 2월1일 현재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련성을 언급한 예비후보는 딱 2명이다. 청와대에서 일한 고위 인사들조차 ‘전 청와대 ○○○’식으로 경력을 표기하지, ‘이명박 정부 청와대’라는 식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어떤 이는 아예 청와대나 이명박 캠프 경력 등을 빼기도 했다. 야권 인사들이 어떻게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예선·본선을 거치기도 전에 친이계에 닥친 더 큰 시련은 ‘계파 붕괴’이다. 친이계는 집권 후 이상득(SD) 라인, 이재오계, 정두언과 소장파 등 소계파로 나뉘어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내부 결속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급기야 MB 탄생의 일등공신으로 불린 정태근 의원 등이 탈당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정작 계파 차원의 위기가 닥쳤을 때 단합해서 대응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새누리당의 한 전략가는 “옛날 같았으면 친박 비대위가 공격해올 경우 똘똘 뭉쳐 반격하고, 협상 창구를 만들어 일정 지분을 확보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들끼리 회의도 못하는 분위기다”라고 혀를 찼다.

여기에 정권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비리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친이계는 더더욱 몸 둘 곳을 못 찾고 있다. 한때 ‘폐족’이라고까지 불린 친노 인사들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항변하며 미래를 기약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요즘 친이계 처지를 두고 ‘폐족도 못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19대 총선을 앞두고 친이계는 ‘각자 도생’의 길을 가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2월8일 “불출마를 포함한 거취 문제를 전적으로 당에 맡기겠다”라고 공을 넘겼다. 정몽준 전 대표는 서울 동작을에서 7선에 도전하겠다고 했고, 이재오 전 특임장관도 서울 은평을에서 5선 도전에 나섰다. 나경원 전 의원은 서울시장 패배 후 공식 활동을 자제하다 1월26일 “당이 어려울 때 나서지 않는 것이 더 비겁하다”라며 서울 중구 재출마를 선언했다. 

박형준 전 사회특보는 부산 수영구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현역인 친박계 유재중 의원과의 내부 경쟁을 거쳐야 하고, 이동관 전 언론특보는 서울 종로에 출마할 의사를 밝혔지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

대선 때 선진국민연대를 이끌었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과 김대식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각각 대구 중구·남구와 부산 사상구에 출사표를 냈다. MB 정부의 ‘왕차관’으로 불린 박 전 차관은 무소속 후보로 나서, 역시 무소속으로 등록한 이재용 전 참여정부 환경부 장관 등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SLS그룹이나 자원외교 관련설에 이어 그의 주군 격인 이상득 의원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서 그 불똥이 튀느냐 여부가 첫 번째 관건이다. 김대식 전 처장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라는 거물을 만났는데, 이에 앞서 권철현 전 주일대사와 예선부터 치러야 한다.

원희룡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서울 양천갑에서는 이재오계인 김해진 전 특임차관과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박선규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내부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당초 정옥임 의원까지 3파전이었으나 비례대표 배제 방침에 따라 정 의원은 제외됐다.

진성호·권택기·강승규·조해진 등 안국포럼과 이명박 캠프 출신 현역들은 대부분 자기 지역구 재도전에 나섰고, 캠프 전략기획팀장을 지낸 이태규 전 KT 전무는 새누리당 김영선 의원이 버티고 있는 경기 고양 일산서구에, 경윤호 전 캠프 조직지원팀장은 민주통합당 조경태 의원이 현역인 부산 사하을에 도전장을 냈다.


친이계 “현장에선 국정 경험이 먹힌다”

‘쇠고기 파동’ 당시 주무 장관이었던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무소속으로 전북 전주 완산을에 등록했고,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무소속으로 경남 사천에 출사표를 냈다.

이들 친이 인사들은 ‘MB맨’이라는 낙인에 대해 대부분 마뜩지 않아한다. 그러면서도 “현장에 가면 역시 국정 경험을 한 후보가 힘 있다는 평을 듣는다”라며 애써 우세를 강조했다.

이처럼 기가 죽은 ‘MB맨’들에 비해 ‘노무현 사람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른다. 반MB 정서와 노무현 재평가 바람에 힘입어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불기 시작한 ‘제2의 노풍’이 19대 총선을 앞두고 점점 더 세지는 분위기다.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예비후보들의 경력을 살펴보면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을 지낸 인사만 50여 명을 헤아린다. 이들은 한 손에는 노 전 대통령이 못다 이룬 꿈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국정 운영 경험을 올려놓고 대대적인 세몰이를 꾀하고 있다. ‘친노 명함’을 들고 나선 이들의 출사표에는 ‘심판’과 ‘복수’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지난 1월15일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거머쥔 한명숙 대표의 취임 일성 역시 “이명박 정권을 과거에 묻고 심판할 것이다”였다.

가장 눈에 띄는 ‘전선’은 부산이다. 공천이 곧 당선이었던 새누리당의 텃밭에 친노 인사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은 공통으로 ‘바람이 다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부산 사상구에 나서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최근 대선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문성근 최고위원은 16대 총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허태열 후보에게 패했던 북·강서을에 베팅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북·강서을에서 패배하면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결성된, 상징성이 큰 지역이다. 친박계인 허태열 후보는 문 최고위원에 맞서 4선을 노리고 있다.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국내언론비서관을 지낸 최인호 부산시당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 춘추관장을 지낸 김형준 예비후보와 사하갑에서 경쟁 중이다. 참여정부 시민사회비서관을 지낸 김인회 인하대 교수는 연제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입’이었던 김희정 전 청와대 대변인과 대결에 나섰다. 참여정부의 전재수 전 청와대 제2부속실장 역시 북·강서갑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경남에서는 송인배 참여정부 시민사회수석실 사회조정2비서관이 양산에 다시 한번 배수진을 친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이 있는 김해을에는 ‘마지막 비서관’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이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새누리당 현역 의원들의 불안감도 상당하다. 박민식 의원(부산 북·강서갑)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이용한 정치 마케팅이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무성 의원(부산 남구을) 역시 “노무현 대통령을 팔아 야바위 정치를 한다”라며 날을 세웠다.


이인제 의원 지역구도 주목

이인제 자유선진당 의원의 지역구인 충남 논산·계룡·금산 선거구도 관심 지역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고,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정치적 동반자라 불리는 김종민 전 충남도 정무부지사가 표밭을 갈고 있어서다. 김 전 부지사는 노 대통령이 퇴임 뒤 만든 시민지식정보 사이트 ‘민주주의 2.0’의 개발과 운영 총괄을 맡기도 했다. 이인제 의원에게는 대선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든 ‘정적(政敵)’ 노무현의 악몽이 되살아날 법하다.

수도권에서도 친노 후보들이 곳곳에서 친이 후보에게 ‘결투’를 신청한 모양새다. 참여정부 천호선 홍보수석,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이 은평을·중랑을에서 각각 이재오·진성호 의원에게 도전장을 냈다.

친이계 중진이자 4선인 이윤성 새누리당 의원의 지역구인 인천 남동갑에서는 박남춘 전 참여정부 인사수석이 출사표를 던졌고, 전해철 전 참여정부 민정수석은 경기 안산 상록갑에서 설욕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 수석은 지난 18대 총선에도 출마했으나, 이화수 새누리당 의원에게 5000여 표 차이로 패배한 바 있다.

4년 만에 처지가 뒤바뀐 ‘MB맨’과 ‘노무현의 사람들’ 가운데 누가, 얼마나 살아남느냐가 4·11 총선의 첫 번째 관전 포인트다.

 

기자명 이숙이·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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