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대통령’으로 불려온 사르코지가 임기 말 태도를 바꿔 부자들에게 짐을 지우는 정책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따져보면 부유층 감싸기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프랑스의 세금제도를 보면 부유세(ISF)라는 것이 있다. 고소득자들이 재산 규모에 따라 세금을 내는 제도인 부유세는 프랑스를 비롯해 노르웨이, 스위스 등에서 시행 중이다. 프랑스 부자 사이에서는 이 제도에 대한 불만 목소리가 높았다.

부자들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사르코지는 2007년 대선 공약으로 이처럼 불평의 대상이 되어왔던 세제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는 세금이 연 소득 50%를 넘지 않도록 하는 제도인 세금상한제를 실시했다. 이 제도가 적용되면서 부자들에게는 세금이 환급되었지만 실제 빈곤층은 오히려 세금을 더 내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를 반영하듯 프랑스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수치에 따르면 2008년과 2009년 사이 프랑스 빈곤층은 13%에서 13.5%로 증가했고, 2010년 부유층의 재산 규모는 9.5% 상승했다.

그런데 사르코지 정부가 경제위기 이후 역주행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동안 선심 쓰듯 감면했던 세금을 다시 더 거두겠다고 나섰다. 표면적인 이유는 재정적자 때문이다.


ⓒReuter=Newsis사르코지 대통령(왼쪽)은 억만장자에게 비행기를 빌려 휴가차 이집트를 방문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부가가치세 인상, 소비자에 부담 전가

2011년 3월 프랑스 국무총리 프랑수아 피용은 세금상한제를 폐지하는 대신 부유세 해당 납세자 30만명에 대해서는 세금 의무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개혁은 결과적으로 부자에게 여전히 유리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파리의 경제학 교수인 토마스 피케티에 따르면, 세금상한제가 폐지되면서 늘어난 세수 총액은 30만명에 해당하는 부유세 납부자 세금 면제로 발생하는 손실과 맞먹는다.

사르코지는 대선 3개월을 앞두고 더욱 공격적이면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르코지의 ‘좌향좌’는 금융거래세, 일명 토빈세 도입 주장으로 정점에 이르고 있다. 프랑스 좌파 진영은 그간 금융 거래 과정에서 막대한 소득을 올리는 금융기관과 고소득자에게 토빈세를 도입해 물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우파 쪽은 이것이 현실성이 없다며 무시해왔다.

지금, 그는 유럽에서 제일 먼저 토빈세를 도입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지난 1월10일 프랑수아 바루앙 재무장관은 “프랑스가 2012년에 토빈세를 첫 도입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라고 의회에서 밝혔다.

반면 그동안 토빈세 도입을 요구해온 사회당 측은 오히려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유는 유럽연합과의 합의 없는 법안이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사르코지의 최근 행보를 보면 ‘부의 세계에 대항하는 영웅’으로서 캐릭터를 그려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정책이 일관되지 않고 모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르코지는 얼마 전 부가가치세(TVA)를 1.6%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이 부담하는 사회보장세를 줄여주는 대신 이를 충당하기 위해 부가가치세를 인상한다는 방침이다. 이 발표가 나온 뒤 야당인 사회당 측은 사르코지 정부가 기업이 져야 할 부담을 일반 시민에게 전가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부의 세계에 맞서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부자 껴안기에 더 급급한 사르코지의 이 같은 이중적인 태도는 오는 4월에 있을 대선을 계산한 행보라는 것이 중론이다.

기자명 파리·최현아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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