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커다란 고래 뱃속 같은 미로를 헤매며 스쾃 알터나시옹 탐험을 계속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건물의 바깥에서 봤을 땐 폐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용했는데 말이다. 방문자 중에는 세련미 넘치는 파리지앵 아가씨부터 얼굴에 링을 주렁주렁 바느질하여 매단 피어싱족, 온몸에 해골과 십자군 문양을 요란하게 문신한 로마병정 머리 펑크족, 오랜 노숙의 냄새를 풍기며 당당하게(!) 전시회를 관람하는 노숙인 아저씨도 있었다.

 이런 살풍경(?)한 와중에 어린아이를 무동 태우고 또 한손으로는 큰아이의 손을 잡고 공연 연습을 구경하는 가족 팀들은 또 뭐란 말인가. 국적도 행색도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이니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를 요지경 세상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판타스틱하고 어쩌면 ‘무질서한 질서’가 난무하는 곳, 이것이 스쾃이란 말인가.

 점심때가 되어 공동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에는 여러 식재료가 많았는데 이것들은 인근 노점 시장이나 빵집에서 온 것들이었다. 시장이 끝나갈 때 상처가 나서 팔지는 못하지만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것을 수거한단다. 특히 빵은 아르티장(장인)의 것으로, 굽다가 약간 타거나 만든 지 조금 오래된 것들이다. 하지만 빵 맛은 최고였다. 식사 준비는 당번제로 하는데 벽에는 날짜별 식사 당번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오늘의 점심 식사는 매우 조촐한 채식 뷔페! 밥을 먹다가 문득 이 ‘결핍의 공동체 밥상’이 혹시 스쾃 공동체의 정신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만약 스쾃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을 들라면 나는 단연코 공동식당이라고 말할 것이다.

 오후에는 ‘수요 열린회의’에 참석했다. 말 그대로 알터나시옹 내부 사람뿐 아니라 외부 사람들도 참여했는데, 열린회의의 특징은 참여한 누구든지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안자의 말을 경청하고 방법을 찾는 솔직한 과정은 스쾃 운영의 백미로 여겨졌다. 나와 아내 김강도 그 회의를 통해 우리의 작품을 소개했고, 작업실을 할애받았으며, 전시회를 열 수 있었다.

ⓒ이우일 그림

 무단 거주, 가장 오래된 소유 형태

 김강은 어느 날 갑자기 알터나시옹의 공연 무대에 섰다. 브라질 작가가 손으로 만든 옷에 아시아 소수민족이 썼음직한 모자로 치장했다. 밴드는 즉석에서 구성했는데 일렉트릭 기타는 30년 경력의 고참 스콰터 엘코가 맡았고, 드럼은 지나던 관객을 붙잡아(즉석 섭외) 앉혔다. 키보드와 베이스 기타는 마침 연습 중이던 재즈 팀을 꼬셨다.

 오~아~시~스~ 오~아~시~스~ 목마르다 꿀꺽꿀꺽꿀꺽~~. 옛날 고등학교 때 날라리로 소문난 김강은 들국화의 광팬이었다. 하지만 난 그에게 노래는 절대 권하지 않는다. 그는 지독한 음치다.

 김강이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자작곡 ‘오아시스’를 고래고래 울부짖는다. 옆에서 기타를 마구 뜯거나 두드리던 엘코는 자꾸 재즈 팀에 항의한다. 원래 김강과 상의했던 공연 콘셉트는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연주하는 거였는데, 재즈 팀이 자꾸만 김강의 목소리에 맞춰 연주했기 때문이다. 결국 엘코는 옥신각신하다가 무대를 뛰쳐나가 버렸고 암튼 김강의 노래는 계속됐다. 목마르다 꿀꺽꿀꺽꿀꺽~.

 예술 스쾃 알터나시옹은 2005년에 철거당했다. 알터나시옹에 있던 사람들은 파리 시가 마련해준 합법 공간에 입주하거나 새로운 스을 만들러 뿔뿔이 흩어졌다. “지구상 7명 중 1명은 무단 거주자이고 스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지 소유의 형태”이다. 지구 처지에서 볼 때 “우리는 모두 훔친 땅을 받은 사람들”이다. 스쾃은 덧없는 인생처럼 유동적이고 비소유적이다. 그래서 무한하다는 느낌을 준다.

기자명 김윤환(미술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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