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한나라당이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사이버 테러를 가한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검찰은 박희태 국회의장 전 수행비서 김 아무개씨(31)와 최구식 전 한나라당 의원 비서 공 아무개씨(28)의 범행으로 결론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배후를 밝히는 건 신의 영역이다”라며 윗선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사가 끝났지만 선관위 사이버 테러 사건은 미로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풀어야 할 의문이 하나둘이 아니다.

ⓒ시사IN 조우혜지난해 12월2일 경찰은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디도스 공격을 가한 혐의로 국회의원실에서 근무 중인 공 아무개씨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과연 비서관들만의 범행인가?

경찰과 검찰은 비서관들의 범행일 뿐 그 어떤 사전 준비도, 공모도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선거 전날인 지난해 10월25일 저녁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비서 공씨가 고향(경남 진주) 선배인 박희태 국회의장 전 비서 김씨에게 “때려버릴까요?”라며 디도스(DDOS: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을 상의했다. 그러고는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고향 후배에게 전화로 선관위와 박원순 후보 홈페이지를 공격하도록 했다. 룸살롱에서 술을 먹다가 선거 판세가 불리하자 우발적으로 선관위에 사이버 테러를 가했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에서 공씨는 “젊은 층 투표율이 선거에 영향을 많이 줄 것으로 보고 투표소를 못 찾게 하면 투표율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주범으로 지목한 공씨는 최구식 의원의 운전을 해주거나 잔무를 처리하던 말단 직원이다. 보궐선거에서 투표소가 많이 바뀌었다는 점을 인지하고 투표율을 낮춰 나경원 후보 당선에 기여한다고 해도 공씨가 얻게 될 이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김씨도 마찬가지다. 10월25일 술자리에 김씨·공씨 등 알려진 사람 외에 제3의 인물이 있었다는 소문은 수사 초기부터 흘러나왔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윗선?

디도스 공격에 대한 꼬리가 밟혔지만 윗선에 대한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청와대 김효재 정무수석은 경찰이 공씨를 체포하자 이 사실을 최구식 의원에게 바로 알려주었다. 김 수석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조현오 경찰청장과 두 차례 통화해 ‘외압’ 의혹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효재 정무수석을 아예 조사도 하지 않았다. 한 수사 관계자는 “디도스 공격을 실행했던 강씨가 대포폰(차명 전화) 20~30대를 가지고 다녔지만 여기에 대한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청와대나 국회의장 주변은 말할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디도스 공격을 실행한 불법 도박 사이트 직원 황 아무개씨는 검찰에서 “공씨가 디도스 공격 지시를 내리면서 ‘이름 세 글자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이 뒤에 있다. 문제가 생기면 (그 사람이) 다 책임진다’고 독려했다”라고 진술했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경찰과 검찰, 언론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정권 실세 서너 명으로 압축된다.


1000만원 때문에 디도스 공격을?

디도스 공격에 참여한 김씨·공씨·강씨 등은 예전에 돈거래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을 앞두고 1억원을 주고받았다. 강남에서 불법 게임업체를 운영하는 윤 아무개씨는 “불법 도박 사이트를 선관위 수준으로 디도스 공격하려면 1억원 정도가 공정가다. 국가기관은 공격할 리도 없지만 위험수당이 몇 배는 붙어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검찰은 1000만원에 대해서만 대가성을 인정했다. 게임업체 대표 강씨가 공씨로부터 1000만원을 받고 공격을 실행했다는 것이다. 기획자인 공 비서관은 160만원가량의 월급을 받았다. 생활 형편도 넉넉지 않았다. 공씨는 강씨 회사에 취직하려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한 검찰 관계자는 “공씨가 이 돈의 일부는 고향에 있는 부모님의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서 마련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강씨는 2억원이 넘는 벤츠600 승용차를 타는 재력가다. 수사에 참여했던 한 담당자는 “강씨는 서울 삼성동에서 월세 300만원을 내고 살았다. 외국을 밥 먹듯 드나들고 하루에 20억~30억원을 인출할 정도로 재력이 있었다. 수억원대 마약을 사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1000만원이 강씨를 움직였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 과연 디도스 공격뿐인가?

경찰은 선거 당일 약 1500대의 좀비 PC가 초당 최대 2기가바이트의 대량 트래픽을 유발했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2기가 트래픽은 대학 수강신청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구나 디도스 공격 당시 선관위 홈페이지에서는 LG엔시스에서 설치한 방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한 보안업체 관계자는 “200대나 1500대의 좀비 PC로 국가기관인 선관위 사이트를 마비시킨다는 건 소가 웃을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다른 보안 전문가는 “한나라당 쪽에서 디도스 공격으로 홈페이지의 특정 창만을 멈추게 할 수 있는지 여러 차례 실험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선관위와 비슷한 조건에서 실패했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선관위 내부에서 서버를 조작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선관위는 이 같은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사건이 불거지자 경찰과 언론은 이를 ‘디도스 사건’으로 명명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테러를 자행한 범인을 긴급체포했다. 차명 컴퓨터와 차명 전화를 이 잡듯 뒤진 성과다. 그런데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경찰 수뇌부는 김씨와 공씨·강씨 등의 1억원 거래 내역을 누락시켰다. 검찰은 수사를 시작하자마자 돈거래를 공개했다. 한나라당은 디도스 검증위원회를 꾸리며 부산을 떨었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선관위 홈페이지 환경을 만들어 실제 공격을 시연할 예정이었지만 이마저 무산됐다. 한나라당이 먼저 특검을 운운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이를 통과시킬 의지가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지금은 특검법안 문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디도스 특검법에서 한나라당 요구대로 한나라당과 청와대라는 문구를 삭제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최초로 문제 제기한 〈나는 꼼수다〉 김어준씨는 “수사기관이 몸통은 찾지 않고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고만 한다. 댓글 알바들의 활동을 보면 사고처리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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