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시사IN〉에 쓴 권력형 부조리 고발 기사와 관련해 총 11건의 소송을 당했다. 언론중재위 2건, 민사소송 4건, 형사소송 5건이다.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서울시장 후보 등 3~4명이 원고가 되어 소송을 남발했다. 강릉 지역의 권력형 토착비리 의혹 고발 기사와 나경원 후보의 초호화 피부클리닉 출입 단독 보도 등에 대한 반격이다.

탐사 고발 보도를 주로 담당해온 이력 탓에 한때 동료 기자들이 ‘정특종’이란 별명 뒤에 ‘소송 전문기자’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을 붙여줄 만큼 언론 소송에 이골이 났고 ‘맷집’도 생겼다. 하지만 지난해는 유별났다. 기자 생활 22년을 통틀어 기사와 관련해 당한 소송이 40여 개이니 무려 4분의 1이 한 해에 몰린 셈이다. 갈수록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 MB 정권의 현주소를 반영한 현상이겠지만 기자도 인간이기에 소송은 늘 고달프다.

ⓒ시사IN 양한모

권력자나 권력기관에서 건 40여 개의 기사 관련 소송은 대부분 승소했거나 소송 제기자들이 중간에 슬그머니 취하해 유야무야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소송 대응 과정은 기사를 취재하고 쓰는 과정보다 훨씬 더 진을 뺀다. 권력자들은 소송을 언론의 비판 보도에 재갈을 물리려는 수단 외에도 간혹 제보자를 찾아내 응징하는 데 쓰려 한다. 기자는 ‘취재원 보호’라는 직업의 철칙을 지키면서 소송에 이겨야 한다. 또 하나 괴로운 것은 재정 여력이 별로 없는 가난한 〈시사IN〉 같은 언론사로서는 소송 비용을 대는 일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는 사실이다. 고문 변호사들은 ‘공익 소송’에 준해 실비 차원의 저렴한 수임료만 받고 지원하지만 지난해처럼 소송 건수가 늘면 수월찮은 액수다. 그래서 차라리 군사정권 시절처럼 안기부나 보안사 지하실에 끌고 가 고문하는 게 덜 부담스럽겠다는 푸념도 나온다.

언론의 깊이 있는 탐사 고발 보도는 우리 사회를 변화·발전시켜온 동력이자 값진 자산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갈수록 고달프다. 상식이 뒤집어지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사회에서 탐사 고발 보도 대상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나도 소송 스트레스가 지겹다. 하지만 숙명처럼 소송을 달고 다니는 직업 인생이 내 팔자라면 그 숙명을 즐기련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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