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독해지니 말도 독해진 2011년이었다. 2011년을 달군 ‘말·말·말’을 꼽아보았다. 만화가 김경수씨가 직접 꼽은 올해의 ‘시사터치’ 5컷과 소개글도 함께 싣는다.

“엘리자베스 2세는 57년간 영국을 통치하고 있지만 아무도 그녀를 비난하지 않는다.”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2월25일 연설에서 자신의 42년 집권을 정당화하며 한 말. 버킹엄 궁에서 유유자적하던 여든다섯 살 할머니, 졸지에 세계 최장수 독재자 되셨다. 카다피는 리비아 내전에서 10월20일 사살되었다. “일본 대지진은 우상숭배와 물질주의, 무신론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다.” 3월11일 일본 대지진 이후,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기독교 매체 〈뉴스미션〉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해. 조 목사야 그렇다 치고, 이 발언이 한국 개신교계에서 별 파장 없이 넘어갔다는 데 더 좌절.

“어떻게 설득했기에 상황이 이래요?” KBS 수신료 문제가 쟁점이던 6월28일 민주당 의원들이 문방위를 점거하자, 전재희 국회 문방위원장(한나라당)이 KBS 기자에게 “설득 다 했다면서?”라며 이렇게 말했다고. KBS, 설득만 한 거야, 그 이상도 한 거야?

제173호 태안 앞바다를 시작으로 번진 죽음의 검은 띠가 4대강을 휘감아 돌며 구제역까지 흘러와 끔찍한 살처분으로 시작된 신묘년. 수백, 수천 마리의 돼지가 구덩이 속에 겹겹이 생매장되는 동영상은 우리 스스로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제187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대기를 통해 유입되는 방사능 때문에 한반도 전체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웬걸, 떨어지는 빗물에 방사능만 섞여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테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개방성과 더 많은 인간애다.” 노르웨이에서 77명이 죽은 폭탄·총기난사 테러가 일어난 이틀 후인 7월24일, 테러 희생자 추도식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가 한 추도 연설 중 한 대목. 국격은 이렇게 올리는 겁니다.

“사실상 오세훈 시장이 승리한 게임.”

8월24일 25.7% 투표율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된 직후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한 말. 이후 오 시장은 시장직을 던졌고, 안철수 현상이 등장해 박근혜 대세론을 날려버렸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했고, 서울시장 선거일 디도스 공격 파동으로 홍 대표도 사퇴했다. 사실상 승리의 후폭풍이 이 정도니, 진짜 패배했으면 대통령도 위험했겠네.

“이만한 일로 강용석 의원이 제명된다면 우리들 중 이 자리에 남아 있을 국회의원이 얼마나 될까요?” 성희롱 발언을 한 강용석 의원 제명안이 8월31일 국회에 올라오자,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이 한 말. 김 의원이 “너희 가운데 죄가 없는 사람이 돌을 던지라” 하니, 국회의원 134명이 말없이 제명을 거두었더라. 살아남은 강 의원은 이후 박원순·안철수 저격수를 자처하나 대체로 아군에 총질하는 중.

“병 걸리셨어요?” 안철수 돌풍이 ‘박근혜 대세론’까지 위협하던 9월7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안철수 현상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이같이 대꾸해. 18대 국회 들어 처음 보여주는 신경질적인 태도여서 화제. 박근혜 대세론 붕괴의 상징과도 같은 한마디.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9월30일 청와대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 이후 두 달 동안 측근 비리가 연이어 터졌고, 친형 이상득 의원도 보좌관 금품 수수 혐의가 나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집권당 소속 인물이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공격하는 초유의 사건도 터졌다. 제204호 갑자기 날아온 한 무리의 우익은 한반도 여론의 핵폭발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독도를 확고히 지켰다고 믿었건만 전술을 달리한 몇몇 일본인이 접근하는 순간 모두가 우왕좌왕했다.

“퇴임 대통령에게 따뜻하게 박수쳐주는 문화가 되면 좋겠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문제가 불거진 10월10일,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이 트위터에 남긴 말. 이 정도면 기억상실도 재주, 적반하장도 능력.

제213호 짐승들의 끔찍한 살처분과 원전 폭발, 계속되는 비리 권력의 거짓말, 이에 질세라 쏟아지는 정치권의 막말. 상황이 이럴진대 TV 개그가 독해지는 건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 같다. ‘시사터치’도 점점 독해지는 느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혼은 끝났다.”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나타나서 했던 지지 연설의 한 대목.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는 오바마 대통령도 공감을 표하고 〈타임〉지가 올해의 인물에 선정하는 등, 2011년의 가장 기억할 만한 움직임으로 손꼽힌다.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 12월1일 개국한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이 박근혜 전 대표의 등장 장면에 깐 자막.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간판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한 달 동안 4개 종편이 생산한 무수한 콘텐츠 중 유일하게 기억나는 한 줄.

제220호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는 위태로운 지존의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 세종대왕을 그렸다. 그렇다면 이 지존은 어떤가? 뿌리 깊게 썩은 비리의 세습 정권. ‘촛불 밀본’으로부터 처참한 인격모독까지 당하며 자리를 지키는 위태로운 우리의 ‘가카’.

“김정일 사망, 온 세계가 동시에 알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사실이 알려진 이틀 후인 12월21일, 북한의 공식 발표까지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이명박 대통령이 “4개국과 연락했고 정상들을 통해 들어보니 다들 똑같은 시점에 알게 됐더라”며 변명. 하지만 이 대통령은 중국 후진타오 주석과는 통화하지 못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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