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천강·평창강·동강의 물을 그러모아 충주호를 거쳐 치달리던 남한강이 강원도 남서부를 흐르는 섬강과 만나는 곳.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남한강대교 밑 여울 근처에서는 아침부터 낚시꾼 5~6명이 모여 있었다. 단풍으로 곱게 물든 산이 낚시꾼 발밑에 드러누웠다. 상류인 남한강 쪽이나 그 반대편 섬강 쪽 모두 그린 듯 풍광이 아름답다.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던 날 견지낚시를 배우려고 이곳에 왔다. 숙달된 조교는 김우진씨(51). 그는 젊어서부터 낚시를 좋아해 대낚시부터 남태평양의 대물낚시까지 손대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1990년 초 견지낚시를 알고 나서부터는 일절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고 ‘정착’했다. 가장 짧은 대로 큰 고기를 건다는 게 치명적인 매력이었고, 우리 고유의 역사·문화와 얽혀 있어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었다.

견지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낚시이다. 견지란 외짝 얼레란 뜻이다. 연을 날릴 때 실을 감는 바로 그 얼레다. 얼레는 얼레인데 한쪽에만 손잡이가 있다. 아마 얼레 줄 끝에 낚싯바늘을 달아 고기를 낚다가 한쪽 손잡이는 없애고 대낚시처럼 낭창낭창 휘어지게 만들다보니 오늘날의 모습이 됐을 것이다. 크기나 모양이 파리채를 닮은 견지낚싯대는 낚시 전문점이나 한강 일대 공방에서 판다. 몇 천원대에서 수십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2000~3000원대 가격의 조악한 물건은 피하고 적어도 2만원대 이상의 견고한 물건을 고르는 게 좋다. ‘꾼’들 사이에서는 탱크 안테나로 만들었다는 탱크대, 도서 지방을 연결하는 인터넷 선의 심으로 만들었다는 광케이블대, 그리고 진품 고래수염대를 누구누구가 가졌더라는 얘기가 전설처럼 회자된다.


ⓒ시사IN 백승기수장대를 물속에 꽂아놓고 깻묵을 흘려가며 물고기를 유혹해 낚아 올린다

우리 조상이 언제부터 견지낚시를 하기 시작했는지는 설이 분분하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그린 ‘소요정’이란 그림이 견지낚시꾼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이다. 이 그림에서는 삿갓을 쓴 강태공 두 명이 오늘날과 거의 똑같은 모양의 채비를 들고 배 견지낚시를 즐기고 있다. 정선은 이 그림을 1600년대 말쯤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견지낚시의 종류는 본래 겨울 한강에서 얼음구멍을 뚫고 즐겼던 삼봉낚시, 장어 낚시, 쏘가리 낚시 등 20여 가지나 됐으나 지금은 아쉽게도 배견지와 여울에서 즐기는 흘림낚시 두 가지만 남았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 그림에도 견지낚시 모습 나와

이번에 김우진씨에게서 전수받은 것이 여울 흘림낚시이다. 흘림낚시로는 피라미·꺽지·누치 등을 낚는데 이곳은 물살이 제법 빨라 덩치가 큰 누치만 올라왔다. 여울이 끝나고 소가 시작되는 곳이 포인트인데 물살이 얼마나 거세던지 초보자는 걷기는커녕 서 있기도 버거웠다.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안전장비를 갖추는 게 필수이다. 웨이더라고 부르는, 가슴까지 올라오는 잠수복 소재의 옷을 입어야 한다. 물에 젖어 저체온증에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 옷 덕분에 요즘은 눈이 하얗게 내리는 초겨울에도 견지낚시를 즐길 수 있다. 넘어져 웨이더에 물이 차면 몸을 가누기 어렵기 때문에, 웨이더는 꼭 구명조끼와 함께 착용해야 한다.

옷을 갖춰 입은 뒤 여울이 끝나는 지점에 끝이 날카로운 수장대를 박아 고정하고 거기에 설망과 미끼통을 매단다. 수장대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짚는 지팡이 대용으로도 맞춤하다. 깻묵이나 떡밥을 풀어 어군을 조성한 뒤 미끼를 달고 추를 묶어 물 흐름대로 7~8m 흘려보낸 뒤 자리를 잡고 연이어 수직으로 낚싯대를 위로 챘다 놓았다 하며 물고기를 유혹한다.

미끼는 구더기이다. 살아 꼬물대는 놈을 진더기, 실리콘으로 만들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놈을 가더기라 부른다. 50년 전만 해도 서울 시내 아무 곳에나 소똥이 있었고, 바짝 마른 겉을 살짝 들추면 구더기 한 줌을 얻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구더기는 바늘 하나에 서너 마리를 한꺼번에 끼운다.


ⓒ시사IN 백승기김우진씨가 5자급(50㎝ 이상) 누치를 낚아 올렸다(오른쪽). 그는 7자(70㎝ 이상)짜리를 12마리나 낚은 베테랑이다.

“다른 낚시와 달리 견지는 예비 입질이 없습니다. 갑자기 잡아채니 조심하세요.” 김우진씨의 지도를 받으며 열심히 채는데 물고기가 도무지 걸려들 생각을 않는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데도 견지낚시터에서 만나 ‘절친’이 됐다는 배장만씨(62)와 목충균씨(44)가 옆에서 연방 5자짜리(50㎝)를 건지는 걸 보니 부럽기 짝이 없다. 김우진씨가 손맛이나 보라며 누치가 걸려든 자기 낚싯대를 건넸다. 하마터면 채비를 떨어뜨릴 뻔할 정도로 입질이 거칠었다. “싸우지 말고 누치가 당기면 줄을 풀어주라”고 김우진씨가 소리쳤다. 줄을 풀었다 당겼다 5분 정도 승강이를 벌이자 드디어 누치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낚시에 집중하는데 갑자기 낚싯대가 부러질 듯 휘었다. 낚싯줄을 풀었다가 서서히 감기를 몇 차례. 순순히 끌려나오는 듯했던 누치가 물 가까이 끌려와서는 갑자기 방향을 바꾸며 골탕을 먹였다. 50㎝가 넘는 물고기가 자기 홈그라운드인 물속에서 당기는 힘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김우진씨가 “서서히 끌어 올리면서 공기를 먹이라”고 말한다. 김씨에 따르면 아가미로 숨을 쉬는 물고기는 공기를 세 번쯤 마시면 맥을 못 춘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몇 번 물 밖으로 끌려나온 뒤엔 누치가 힘을 못 썼다. 김우진씨가 기구를 사용해 바늘을 뺀 뒤 누치를 풀어줬다. 차가운 물속에 사는 물고기는 뜨거운 사람 손에 닿으면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 되도록 손을 안 대고 풀어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낚시가 손에 익으니 심심치 않게 손맛을 즐길 수 있었다. 


손맛만 즐기고 놓아주는 자연친화형 낚시

누치는 재밌는 놈이다. 미련하고 무모해 낚시에 잘 걸려드는데도 멸종될 염려가 없다. 냄새가 나고 맛이 없어서다. 누치 위주의 견지낚시도 자연스럽게 손맛만 즐기고 놓아주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생명을 해하는 것이 께름칙한 이들도 마음 편히 즐길 수 있게 됐다. 체력 단련에도 그만이다.

무엇보다 견지낚시는 자연친화적이다. 개발과는 상극이다.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한강종합개발을 밀어붙이기 전만 해도 한강에는 견지낚싯배가 700척 가까이 떠다녔다. 댐과 보의 건설로 수많은 여울이 사라지면서 견지낚시 역시 멸종 위기에 처했다. 김우진씨는 4대강 개발은 남한강에서만 벌써 여울이 다섯 군데나 사라졌다며 분개한다. 견지낚시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강의 미래도 어두워졌다고 그는 말한다.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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