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은 어째서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라’고 했을까. 제주도에 가서 아름다운 해변이나 곶자왈 숲속 올레길을 걸으면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나지 않던데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싶기도 하다. 오랫동안 해온 일을 작파하고 제주도에 내려가 한적하게 사는 후배는 모처럼 서울에 올라오면 누가 목이라도 조르는 듯 비명을 질러댄다. “숨을 반도 못 쉬겠어.”

요절한 사진작가 김영갑씨는 젊은 시절 제주도에 놀러 갔다가 그곳 풍광에 반해 죽을 때까지 눌러앉았다. 그는 루게릭병에 걸려 카메라를 드는 힘이 다할 때까지 바당(바다)과 오름을 필름에 담았다. 그런데 산에서 만난 노인은 그에게 옛사람과 비슷한 말을 하며 꾸짖었다고 한다. “아무렴 산 좋지. 그래도 젊은 놈이 뿌리 내릴 만한 곳은 아냐. 썩 내려가서 부대끼다가 나중에나 올라오너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나 홀로 쇼를 하다가 물러난 뒤 보궐선거 열기가 뜨겁다. 안철수 원장에 이어 등장한 박원순 변호사가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제1야당 후보인 박영선 의원을 밀어냄으로써 선거는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오랜만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혹은 술집에서 어느 후보가 시장이 되어야 한다고 핏대를 올리는 사람들을 본다. 그런데 이쯤에서 여러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시장을 선택하는 기준은 뭘까. 사람들은 어떤 서울시에서 살고 싶은 것일까. 과연 서울에서 살고 싶기는 한 걸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감옥에서 출소할 날만 기다리는 기분으로 세월만 보낸다면 누구를 시장으로 뽑은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한성원 그림

‘지구시민용 변화 사용 설명서’란 부제가 붙은 〈월드 체인징〉(바다출판사, 2011년)과 〈도시의 승리〉(해냄, 2011년)는 서울에 대한, 아니 대도시에 대한 복잡한 생각의 갈피를 정리해주는 책이다(공교롭게 〈월드 체인징〉 추천사를 박원순 후보가 썼으나 그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선정하지는 않았다).

〈월드 체인징〉은 화석연료에 기댄 서구식 발전 모델은 이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전 세계 저널리스트·디자이너·미래주의자·기술자들이 월드체인징닷컴에 실은 글을 모았다(2009년 초판이 나온 뒤 2년 만인 올해 1월 개정판이 나왔다). 이 책 도시 편은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메가시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말해준다.

이 책에 따르면 도시의 문제가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심각한 것, 맞다. 교통체증, 주택 부족, 기반시설 노후, 폭발적인 인구 증가, 무력한 지방정부, 가난, 전염병 등등. 하지만 이 책은 뜻밖에도 친환경적이 되고 싶다면 도시에서 살라고 권한다. 오염과 소음, 범죄에 염증이 나 도시 탈출을 꿈꾸는 것이 20세기의 직관이었고, 그 결과 대도시 주변 교외의 주거지역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나 그것이야말로 환경에 재앙이 됐다고 이 책은 말한다.

대도시 주거 밀집 지역 벽에 얼룩진 검댕은 전원주택 벽의 아름다운 채색과 비교해 반환경의 상징인 듯 비치지만 이는 착시일 뿐이다. 인구 밀집 지역일수록 에너지 효율이 높다. 뉴욕 시의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미국의 어떤 주보다도 적다. 반면 교외에서는 우유 한 병을 사려고 해도 자동차 시동을 걸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미국 남부 도시는 뉴욕에 비해 가구당 휘발유 소비량이 75% 이상 많다. 사람들은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어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야생은 사람을 싫어한다.


〈월드 체인징〉알렉스 스테픈 지음바다출판사 펴냄
그런 점에서 보면 캐나다 밴쿠버야말로 도시 설계 사례 가운데서도 보석 같은 존재이다. 근사한 풍광, 역동적인 경제, 풍부하고 활기찬 문화를 갖춘 밴쿠버는 지난 20년 동안 인구가 절반 이상 늘었다. 밴쿠버 시민은 성장을 내부로 돌려 도시 확산을 거의 막았다. 시민의 62%가 빽빽한 인구 밀집 지역에, 11%는 고층 건물 동네에 산다. 북미 서부 해안에서 가장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삶과 대기의 질을 높였다. 

밴쿠버 도로에 자동차 줄어드는 까닭

밴쿠버의 건축가들은 도로를 설계할 때 보행자, 자전거, 대중교통, 자동차의 순서로 생각한다. 지난 20년 동안 수만명이 도심으로 이사해 왔지만 도로의 자동차 수는 줄었다. 보행자를 염두에 두고 설계하면 보행자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밴쿠버 시내에는 전체를 아우르도록 공원이 조성되어 보행자나 자전거도 저만의 고속도로를 가졌다. 출퇴근이든 쇼핑이든 웬만하면 모두 두 발로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밴쿠버이다. 화룡점정으로 모든 새로 짓는 건물은 미국 녹색건축협의회의 에너지 환경 설계 리더십(LEED) 인증 제도에서 실버 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차는 적고 사람은 많게, 구획 여러 개를 한꺼번에 개발하려고 크게 발상하며, 기존 동네의 공터나 구식 건물을 친환경 건물로 교체하는 작은 발상을 존중한다는 것이 밴쿠버 시민이 공유한 기본 원칙이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진정한 인도는 몇몇 도시가 아니라 70만 개의 마을 속에 세워져야 한다. 국가의 성장은 도시가 아닌 마을에 달렸다.” 하지만 〈도시의 승리〉에 따르면 위대한 간디도 틀렸다. 그리고 사람은 낳으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말은 옳다. 이 책은 미국 내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뛰어난 젊은 학자로 촉망받는 하버드 대학 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가 썼다. 그는 인도의 눈부신 경제성장의 동력은 거의 전적으로 도시가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도시 인구 비중이 10% 늘어날 때마다 그 나라의 1인당 생산성은 30% 향상된다. 


〈도시의 승리〉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해냄 펴냄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도시는 오랫동안 한 가지 똑똑한 아이디어가 다른 똑똑한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지적 연쇄 폭발을 일으켜왔다고 말한다. 피렌체의 르네상스와 영국의 버밍엄과 맨체스터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 그런 폭발이었다. 20세기 말 뉴욕에서 금융업이 성장한 것 역시 대도시가 불을 지핀 집단 지성의 빅뱅이다. 도시야말로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인구 100만명 이상 모여 사는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거주하는 미국인은 다른 지역에 비해 평균 50% 이상 생산성이 높다. 노동자의 교육 수준, 지적 능력(IQ)이 모두 특출나다. 도시의 밀집한 인구만이 부자건 가난뱅이건 모두가 즐기는 문화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물질 기반을 분담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인재를 유치하고 교육에 힘쓰는 도시는 번성하고, 빌딩과 인프라에 돈을 쏟아붓는 도시는 망하고 만다. 원거리 통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끼리 직접 부딪칠 때 일어나는 불꽃같은 영감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강은 될수록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는 게 대세이듯이 대도시에 대한 생각도 점차 정돈되어 가는 듯하다. 두 책이 동시에 말하듯 도시를 지옥처럼 여길 것은 없다. 친환경 삶을 살겠다고 전원주택지를 조성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기존 도시 공간에 더 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친환경 건물을 지어야 한다. 그런 구역은 얼마든지 보행자 중심으로 설계할 수 있다. 서울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게 사실은 박원순 후보나 나경원 후보의 신상털기를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어쨌건 두 책이 제시하는 기준에서 보면 대형 토목공사에 집착한 오세훈 시장은 그만두길 잘했다. 서울에는 말이나 보내자는 말이 나올 뻔하지 않았는가.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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