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파르완 주 차리카르는 한국군 오쉬노 부대가 주둔하는 곳이다. 이 지역은 아프간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졌다.

8월14일 오전, 이곳 파르완 주지사 관저에서 압둘 바시르 살랑기 주지사(48)가 주관하는 회의가 열렸다. 일요일 아침이지만 주지사뿐 아니라 그의 주요 보좌관이 모두 참석했다. 이날 이들이 모인 이유는 최근 주지사 자신이 공격 대상이 될 정도로 급속히 나빠지는 파르완 주의 치안 상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4월 주정부 청사에서 벌어진 주민 무력시위 때문에 살랑기 주지사는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성난 군중 사이에서 날아온 총을 맞고 경호원이 사망했을 정도로 매우 위급한 순간이었지만 그는 운 좋게 도망칠 수 있었다.


탈레반이 살랑기 주지사 죽이려는 까닭

지난 6월21일에도 그가 탄 자동차 행렬이 자살 폭탄 공격을 받았다. 그의 운전기사와 그를 보호하던 아프간 경찰 2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그때도 살랑기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 파르완 주는 공격의 배후로 탈레반을 지목했는데, 그 뒤로도 그는 지속해서 탈레반의 타깃이 되었다. 그래서 8월14일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AP Photo8월14일 아프가니스탄 파르완 주 주지사 관저에서 테러와 총격전이 벌어져 22명이 숨지고 29명이 다쳤다.


이날 살랑기 주지사는 보좌관들과 갑론을박을 벌이던 중 바깥에서 나는 엄청난 굉음을 두 번 들었다. 무장 괴한이 도요타 코롤라 자동차를 이용해 주청사 정문으로 돌진하며 자살 폭탄 공격을 시도한 것이다. 폭탄이 터지고 정문이 부서지자 총을 든 괴한 6명이 주청사로 뛰어 들어왔다. 살랑기 주지사와 그의 경호원은 즉시 뒷문을 통해 다른 빌딩으로 뛰어갔다.

당시 현장에는 아프간 경찰도 있었다. 괴한들과 아프간 경찰은 관저에서 3시간에 걸쳐 총격전을 벌였다. 그 결과 최소 22명이 숨지고 29명이 다쳤다. 이들 사상자는 대부분 정부 관계자들로, 그날 회의에 모인 군경과 살랑기 주지사의 보좌관이었다. 경호원과 다른 빌딩으로 피해 지하 모처에 몸을 숨긴 살랑기 주지사는 이번에도 천운에 힘입어 부상도 입지 않은 채 목숨을 구했다. 괴한들은 모두 총격으로 사망했다. 이번이 그를 노린 세 번째 암살 기도 사건이다.

사건 뒤 살랑기 주지사는 탈레반이 자신을 공격하려 했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그는 “이번 사건은 탈레반 소행이다. 그들이 나를 공격하려 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탈레반은 왜 살랑기 주지사를 죽이려는 것일까.

살랑기는 1980년대 옛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할 당시 소련과 맞서 싸우던 무자헤딘 출신이다. 타지크족인 그는 소련이 물러간 뒤 북부동맹이자 아프간의 전설적인 영웅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측근으로 활약했다. 미국이 아프간에 들어온 뒤에는 카불 경찰국장과 와르다크 주 경찰청장을 지낸 데 이어 2009년 6월 파르완 주지사에 임명되었다. 올해로 임기 2년을 맞이하는 그는 한국군이 주둔한 차리카르 기지 오쉬노 부대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지방재건팀(PRT) 사업 파트너이다. 그 덕에 그는 한국에 일주일간 초청된 일도 있다.

그는 화려한 과거 이력보다 부정부패로 더 유명하다. 카불 경찰국장 시절부터 그랬다. 당시 살랑기가 살던 맨션은 카불 시내 부유한 주택가에 있었다. 그리스식 대리석 기둥까지 갖춘 집으로 월세만 1만1000달러(약 1180만원)짜리 호화 주택이었다. 경찰국장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는 집이었다. 한 아프간 언론인은 “아프간이 얼마나 부정부패가 심한지를 알고 싶으면 그를 보면 된다. 살랑기는 카르자이와의 친분을 등에 업고 파르완 주에서 벌어진 이권 사업에 손을 안 댄 곳이 없다”라고 말했다. 아프간 독립인권위원회는 그가 카불 신푸르 지역에 장군들의 집을 짓겠다며 가난한 서민 집 300채를 불도저로 밀어내고 이들을 몰아낸 것을 고발하기도 했다.

파르완 시민의 평판도 좋지 않다. “살랑기 주지사의 업적은 무엇인가?”라는 필자의 질문에 주민 아하메드 씨는 단번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주민이 어떻게 사는지에 관심이 없다. 언제나 미군들과 뽐내며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면서 사진이나 찍고 그들에게 돈과 물자를 얻어낸다. 그렇게 얻어낸 돈으로 자기 호주머니를 채운다. 우리가 얼마나 먹고살기 힘든지 그는 알지 못한다.”

지난 4월18일에 벌어졌던 주민 무력시위도 이런 불만이 합쳐지면서 불거졌다는 평이다. 이날 모인 주민 200∼250명은 미군이 지역에서 명망 있는 이슬람 성직자 쇼비르를 체포한 데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미군이 쇼비르를 체포한 명목은 그가 파키스탄에서 배워온 폭발물 제조법을 주민에게 가르쳤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불똥이 엉뚱하게 살랑기 주지사에게 튀었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친미 인사 살랑기 주지사에게 평소 쌓였던 주민의 불만이 이 일을 계기로 터져나온 것이다.


ⓒAP Photo바시르 살랑기 파르완 주지사.
요행으로 목숨을 구한 살랑기 주지사는 사건 이후 더욱 친미 행보를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파르완 주 경찰 관계자는 “사실 살랑기 주지사는 연합군과 탈레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정치 게임을 했다. 외국군과 친목을 다지며 뒤로는 측근을 시켜 탈레반과도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날 시위를 계기로 위협을 느끼면서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것은 역시 미군이라 느낀 듯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민심은 더 멀어져갔다. 한 주민은 “외국 군과 그가 있는 모습만 보아도 살의를 느낀다. 그는 이제 파르완 주민들에게 공공의 적이다”라고 말했다.

한국군 기지, 열세 번이나 공격받아

탈레반의 경우 이 같은 파르완 주의 민심을 등에 업고 살랑기를 살해하려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파르완 주에서 활동하는 지역 기자 라힘 씨는 “탈레반 처지에서는 살랑기 주지사를 자신들이 제거함으로써 주민의 환심을 살 수 있다. 그를 제거한 뒤 새 탈레반 주지사를 세우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현재 탈레반은 조금씩 친미 인사를 제거 중인데, 살랑기는 탈레반 타깃 1순위이다”라고 말했다.

올해 초에는 파르완 주 경찰청장 몰라나 사이킬리가 도로에 매설해놓은 폭탄에 희생된 일도 있었다. 대표 친미 인사였던 그는 한국군이 차리카르에 주둔을 시작할 때 우리 군 치안을 적극 돕겠다고 큰소리친 인물이다. 하지만 한국군의 안전은커녕 자기 목숨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사이킬리가 사망한 뒤 살랑기는 더욱 위협을 느꼈다고 그의 최측근은 말했다. 살랑기 주지사 자신도 “파르완 주의 치안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그런가 하면 살랑기 주지사가 자살 폭탄 공격을 받은 8월14일 밤(한국 시각 15일 새벽), 주청사에서 불과 4㎞ 정도 떨어진 한국군 기지에 로켓 여섯 발이 떨어진 사실이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 중 네 발은 기지 안에 떨어졌다. 이로써 한국군 기지가 열세 번째 공격을 받은 셈이지만 우리 정부는 이를 발표조차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정부 관계자는 “공격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이번부터는 언론에 공표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이로써 우리 국민은 아프간에 있는 한국군 기지에 로켓이 떨어지는지 어떤지 알 길도 없어졌다. 현지에는 한국 언론사가 없기 때문이다. 누가 왜 쏘는지도 모르는 로켓 공격을 받는 한국군이 언제까지 이 로켓들을 비켜가는 요행을 누릴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동안 엄청난 ‘서바이벌’ 기술로 살아남은 살랑기 주지사가 또 다른 탈레반의 공격에도 살아남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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