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보다가 아름다운 대사를 붙잡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을 때가 있다. 책이라면 밑줄을 그어두겠지만, 스치는 순간들은 허망하기만 하다. 극작가 최창근씨(42·사진)는 연극을 활자화해 ‘증명’하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쓰고, 공연된 연극 중 세 편(〈봄날은 간다〉 〈서산에 해 지면은 달 떠온단다〉 〈13월의 길목〉)을 골라, 흐르는 순간을 〈봄날은 간다〉라는 책 한 권에 가두었다.
책을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불황을 수식어처럼 달고 다니는 출판계에서 시집도, 소설책도 아닌 희곡집이라니. “희곡이 문학의 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어요. 문학으로서의 기능이 축소되는 게 안타까웠어요. 열악한 현실을 피하지 말고 부딪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렵다고 도망가면 발전이 없잖아요. 그게 ‘희망’이죠.”
시인이 되고 싶었던 최씨가 극작가의 길로 들어선 건 우연인 듯 필연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공연예술 아카데미에서 연극을 공부하던 선배를 만나 청강하기 시작하면서 극작에 발을 담갔다. “시를 쓰는 것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외로운 일이었지만, 연극은 공동 작업으로 이뤄진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무엇보다 연습이 끝나고 함께 먹는 밥, 그게 정말 컸어요. 밥을 나눠 먹는다는 것이 ‘정서의 연대’를 뜻한다잖아요.” 최씨는 아카데미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최인훈 희곡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7월9일 2차 희망버스에 올랐다고 했다. 관찰과 기록이 업인 작가로서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야깃거리는 일상에 널렸어요. 무엇보다 작가는 시대와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돼요. 무엇이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누구보다 예민해야 하고요. 그래야 살아 움직이는 인물을 창조할 수 있으니까요. 나이가 들어도 지금과 같은 ‘뜨거운 마음’을 잃지 않는 게 목표예요.” 렌토(Lento·느리게)로 말하는 그는 유독 뜨거운 마음을 힘주어 발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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