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김은남 관람객은 실물 기계·마네킹·사진 등을 통해 광부의 삶을 관찰할 수 있다.

국도를 타고 태백으로 접어드니 길가에 붙은 ‘모기 없는 태백, 열대야 없는 태백’이라는 현수막 문구가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태백 출신인 동행에게 물었다. “정말이야?” 사실이란다. 모기는커녕 한여름이라도 새벽녘이면 목까지 이불을 끌어당겨야 할 정도로 서늘한 게 태백의 여름이란다. 해발 750m 고원도시란 그런 건가? 왠지 원더랜드에 접어든 듯한 기분이다.

이 신기하고 이상한 동네에 태백 석탄박물관이 있다. 태백산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왼쪽에 자리 잡은 이 박물관은, 짐작하시다시피 한때 우리나라 최대 광산도시였던 태백의 영욕을 집약해놓은 곳이다. 혹시 옛날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 아니냐고? 직접 들러보시면 안다. 기자의 관람 경험과 현장에서 만난 관람객의 반응을 종합하자면 석탄박물관은 어른과 아이를 동시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족시키는 흔치 않은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지하 1000m까지 고속 질주?

먼저 아이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동적인 분위기다. 최첨단 디지털 기기로 도배한 요즘 박물관들과 달리 아날로그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는 게 이 박물관의 특징이다.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흔들 하는 바닥에서부터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이 쏟아진다. 고생대에 흔들리던 지축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끔 만든 장치다. 제1전시실(지질관)에서 기기묘묘한 암석을 보고, 제2전시실(석탄의 생성·발견관)로 이동할 때면 통로에 진열된 분화구 모형에 주목하자. 김이 모락모락, 보글보글, 부글부글 끓다가 마침내 퍽 하고 분출하는 미니 화산을 볼 수 있다. 별 생각 없이 지나쳤다가는 이렇게 아기자기한 구경거리들을 놓칠 수 있다.

ⓒ시사IN 김은남 관람객은 실물 기계·마네킹·사진 등을 통해 광부의 삶을 관찰할 수 있다.

석탄을 채굴하고 이용하는 방식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설명하는 제3전시실에 이어 광산을 둘러싼 사고와 각종 안전 장비·수칙들을 전시한 제4전시실도 아이들에게는 인기다. 안전모와 산소호흡기로 중무장한 아저씨 마네킹(갱내에 사고가 났을 때 출동하던 광산 특수구호대를 재현한 모형이다)에 환호한 것도 잠시. 가스 사고, 낙반·붕락 사고(천장이나 벽의 암석이 떨어지거나 무너지는 사고), 화재 사고 따위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던 광부들의 삶을 사진과 자료로 접하면서 아이들 표정도 진지해진다.

동적 체험을 완성시키는 것은 관람 코스 맨 마지막에 있는 체험갱도관(제8전시실)이다. 건물 지하에 있는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갱도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고 기도하는 소녀상이 입구에 달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제대로 된 ‘공포 체험’을 선사한다. 흔들, 쿵. 사방에 붉은빛이 번쩍번쩍하는 가운데 고도를 가리키는 계기판이 지하 200→400→600→1000m를 향해 고속 질주한다. 실제로는 지상 3층에서 지하 1층까지 이동했을 뿐이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다리는 이미 후들후들 풀려 있다.

ⓒ시사IN 김은남 관람객은 실물 기계·마네킹·사진 등을 통해 광부의 삶을 관찰할 수 있다.

그렇게 도착한 지하 갱도는 한여름에도 오싹할 만큼 서늘하다. 갱도에서 작업하던 광부들이 실물 크기로 재현돼 있는데, 특히 갱도 체험 막바지에 등장하는 붕락 사고 체험장에 이르면 오싹함은 정점에 달한다. 천장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갱목이 갑자기 우지끈 부러지며 머리 위로 쏟아진다. “꺄악, 꺅.” 여기저기서 비명소리도 쏟아진다.

이런 생생한 체험을 하며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역사에 남은 몇몇 대형 탄광 사고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갱도 중에서도 작업 환경이 최악이었다는 ‘막장’. 그곳에서 일하던 광부들은 매캐한 공기, 사람 잡는 습기뿐 아니라 매 순간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다는 걸, 또 그들을 일터로 내보낸 아낙들은 혹여 공기에 밥을 풀 때라도 ‘죽을 사’자의 저주에 걸릴세라 결코 네 주걱을 담지 않았음을 이곳에서 비로소 알게 된다. 검은 그을음에 뒤덮인 몸을 씻고 퇴갱(갱도에서 퇴근하는 것)을 준비하는 그들의 모습은 또 왜 그리도 아련한지. 전시관 곳곳에 붙어 있는 탄광촌 전성기 사진에서도 눈을 떼기가 어렵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는 이 박물관을 돌아본 뒤 “울고 나오는 영화관은 많지만 울고 나오는 박물관을 다른 데서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썼다.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체험을, 어른들에게는 아릿한 슬픔을 안겨주는 곳, 태백 석탄박물관이다. 

ⓒ태백석탄박물관 제공 지하 갱도에 들어서면 막장에서 석탄을 캐고 식사를 하던 광부들의 모습이 실물 크기로 재현되어 있다.
ⓒ태백석탄박물관 제공 지하 갱도에 들어서면 막장에서 석탄을 캐고 식사를 하던 광부들의 모습이 실물 크기로 재현되어 있다.
ⓒ태백석탄박물관 제공 관람객은 실물 기계·마네킹·사진 등을 통해 광부의 삶을 관찰할 수 있다.
ⓒ시사IN 김은남 태백 석탄박물관은 아날로그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쳐 아이들이 좋아한다.
ⓒ시사IN 김은남
체험 갱도(위)에 들어서면 곧바로 ‘공포 체험’을 할 수 있다. 붕락 사고 체험 때 오싹함은 정점에 달한다.

관람 정보

주소:강원도 태백시 천제단길 195(태백산도립공원 입구) 관람 시간:오전 9시~오후 6시(입장은 오후 5시까지) 휴관일:연중 무휴 관람료:어른 2000원, 청소년·군인 1500원, 어린이(7~12세) 700원, 노인(65세 이상) 및 영유아·장애인 무료(태백산도립공원 입장권으로 관람 가능) 전화:033-550-2743 홈페이지:www.coalmuseum.or.kr 놓치지 마시라:천장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갱목이 우지끈 부러지며 머리 위로 쏟아지는 갱도 체험을 만끽하시라.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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