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밤잠을 설친다. 잠들 무렵이면 어김없이 윗집 아저씨(본 적은 없지만 청년일 것 같지는 않다)가 노래를 부른다. 늦게 퇴근해 몸을 씻으며 기분이 좋은지, 늘 밤 12시쯤이면 샤워기를 틀어놓고 가성도 아닌 생목으로 빽빽 소리를 지르신다. 그의 앨범(?) 목록은 MBC의 〈나는 가수다〉가 방영되는 일요일 저녁을 거치고 나면 한층 업데이트된다. 처음에는 김범수의 〈보고 싶다〉나 김건모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 같은 조용한 노래에서 시작하더니, 어느새 윤도현의 〈나 항상 그대를〉을 지나 결국 임재범이 〈빈잔〉을 부른 날 다음부터는 인트로에 깔린 ‘오오오오오’ 중저음까지 우리 집 천장을 뚫고 등장해주셨다. 


ⓒ시사IN 양한모

“노래도 못 부르시는데 좀 참아주시면 안 되겠어요?”라고 매몰찬 문구를 적은 메모지라도 현관 문짝에 붙일까, 여러 번 욱했다가 참았다. 그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도 텔레비전을 보고 나면 자꾸 노래를 부르고 싶어진다. 지난해 KBS 〈남자의 자격〉 합창단 편이 한창 방영될 때는 “넬라 판타씨~아”를 입에 달고 다녔고, Mnet의 〈슈퍼스타 K〉가 인기를 끌 때는 장재인의 매력적인 코맹맹이 노랫소리를 따라하려 남몰래 코도 살짝 잡아봤다. 최근에는 박정현의 바이브레이션 “이제 그랬으면 조오오켄네에에에~”를 재연하고 싶어 몇 번이고 손을 허공에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완전 노래 삼매경이다.

나와 윗집 아저씨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최근 뉴스 보도들에 따르면, 백화점 문화센터의 노래 교실에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몰린단다. 이번 주 차형석 기자가 쓴 기사를 봐도 노래방 인기 차트를 〈나가수〉 출연곡이 휩쓴다고 하니, 잘 부른 노래를 들으면 따라하고 싶은 사람 마음은 다 똑같은가 보다.

요새는 어딜 가도 텔레비전의 오디션 프로그램 이야기뿐이라며 지긋지긋해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노래 프로그램들이 그 옛날 동이족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즐겼다던 한민족의 ‘가무’ 본능을 시청자들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불러 일깨웠음은 틀림없다. 뭐, 나쁠 것 있나? 다만 댄스 경연 프로그램은 안 나왔으면 좋겠다. 춤[舞] 본능이 제대로 깨어난 윗집 아저씨가 쿵쿵대기 시작하면, 그땐 진짜 메모를 붙일 거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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