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군은 삼면이 바다이다. 해안선 길이 자그마치 531㎞에 달한다. 리아스식 해안이 연출한 절경이 빼어나 국내 유일의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최근에는 ‘길 열풍’을 타고 생태 탐방로 ‘솔향기 길’까지 만들어졌다.

솔향기 길은 해안길이다. 들쭉날쭉한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조성된 코스는 현재까지 모두 4개이다. 태안반도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이원면에서 원북면까지 총 42.5㎞ 구간이 만들어졌다. 이 중 으뜸은 만대항~꾸지나무골 해수욕장 구간의 제1 코스이다. 10.2㎞에 이르는 이 구간은 태생부터가 남다르다.

처음에는 ‘기름 방제용’ 길로 닦아

원래 이 길은 지난 2007년 기름 유출 사고 때 자원봉사자들이 방제 작업을 도우려고 만들었다. 당시 이원면민회장을 맡고 있던 차윤천씨(60)는 기름 방제 작업을 하기 위해 몰려온 자원봉사자들이 가파른 언덕을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오르내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직접 길을 닦고 줄을 매달아놓았다. 그 과정에서 어느 순간 탁 트인 바다가 나타났고 그는 무릎을 탁 치며 ‘이거다’ 싶었다. 


태안 솔향기길은 초입이 가팔라 만만치 않아 보이지만, 이내 경사가 완만한 숲길이 나타난다.

그때부터 만든 것이 해안 산책로. 그는 10㎞가 넘는 길을 삽·곡괭이·톱 등을 이용해, 이듬해 5월까지 정비했다. 이후 태안군이 차씨의 아이디어를 이어받아 예산을 투입하고 지난해 10월까지 4개 코스로 나눠 길을 조성한 뒤 편의시설을 설치했다.

1코스의 시작은 만대항이다. 지역에서는 ‘가다 가다 만대’라고 불릴 정도로 외진 곳이다. 산책로로 조성되었지만 굳어진 해안선을 따라 걸어야 하기 때문에 구간마다 몇 개의 작은 언덕을 등산하는 기분이다. 소요 시간은 약 3시간.

첫 시작은 비좁은 바윗길에 늘어진 줄을 잡고 올라서는 일이다. 초입부터 ‘만만치 않겠구나’ 하고 지레 겁을 먹을 수 있으나, 곧바로 이어진 숲길의 경사가 완만해 부담은 없다. 바윗길을 힘차게 올라서서 숲길을 걷다보면 생태계의 보고인 가로림만(灣)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편 해안의 황금산·삼형제바위 등과 어우러진 풍경이 일품이다.


초반 코스가 힘든 탓에 숨이 저절로 거칠어진다. 작은 수매수동(해동)을 지나 큰 수매수동에 이르러서는 땀이 옷을 흥건히 적시지만, 곧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해풍이 온몸을 감싼다. 걷는 동안 소나무 사이로 모습을 보이는 망망대해는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든다. 간간이 새소리와 파도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일요일에도 평일 한낮처럼 한가하고 느긋하며 잔잔하다.

유일하게 남은 ‘여섬’을 바라보는 재미

붉은 앙뗑이(가파른 곳)를 지나 가마봉전망대로 향하는 구간은 지역 특유의 독특한 지명이 재미있다. 당봉전망대에 오르면 드넓은 가로림만이 눈에 가득 찬다. 태안반도의 촌락 유형인 산촌(散村)도 눈에 띈다. 자연 훼손이 덜한 까닭에 솔향기와 흙내음이 코끝을 자극한다. 수시로 모습을 드러내는 기암괴석과 작은 해변이 만든 풍경에 눈이 호강한다. 걷기가 힘겨워 무릎에 저절로 손이 올라가고 이를 악물게 될 즈음 악너머약수터에 다다른다.


ⓒ태안군청 제공태안 솔향기길은 들쭉날쭉한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42.5㎞나 이어진다. 현재 4개 코스가 개발되었다.

코스의 절반 정도를 걸었을까? 작은 섬이 고즈넉이 물 위에 떠 있다. 이원방조제 간척지로 섬이 다 없어지고 유일하게 남은 여(餘)섬이다. 한국전쟁 당시 파놓았다는 작전 통로와 참호, 녹슨 철조망 등 아픈 역사의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나와서 하늘로 승천했다는 용난굴을 지나 작은어리골, 큰어리골 등을 거쳐 코스의 종점인 꾸지나무골 해수욕장에 도착한다.

돌아오는 길. 농번기를 맞아 바삐 움직이는 이앙기 소리가 뉘엿뉘엿 지는 해를 아랑곳하지 않고 시골 마을에 짜랑짜랑 울려 퍼진다.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태안군→603번 국도 원북·이원 방향→만대 주변

주변 볼거리 원북면 신두리해수욕장, 신두리 두웅습지, 사목·꾸지나무골 해수욕장, 이원방조제 희망벽화, 볏가리마을 등. 6월에는 별주부마을 어살문화축제가 열린다.

먹을거리
살살 녹는 ‘봄 꽃게’ 속살

태안군은 어종이 풍부한 바다를 끼고 있어서 계절마다 식욕을 돋우는 수산물이 상 위에 자주 오른다. 재미있는 점은 작은 읍·면별로 대표 수산물이 다르다는 점이다. 솔향기길이 조성된 원북면과 이원면 지역은 박속낙지탕과 굴이 유명하다. 박속낙지탕은 다리가 가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세발낙지와 박속을 넣고 끓인 다음, 밀국(칼국수)을 넣어 먹는 계절 별미다.


이원면 지역은 오래전부터 ‘바다의 우유’로 불리는 자연산 굴이 유명한 곳이다. 굴 표면에 돌기가 유난히 많은 것이 특징인데, 양념이 잘 배어 김장용과 어리굴젓용으로 꽤 인기가 많다. 봄철에는 꽃게(사진)·주꾸미·간자미·대하·새조개·물메기 등이 제철 수산물이다. 특히 꽃게는 ‘봄 꽃게’란 수식이 붙을 정도로 살이 통통하고 알이 꽉 차 입에서 살살 녹는다.

주꾸미도 봄에 끓이고, 데치고, 구워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제철 수산물인데, 취향에 따라 회로 먹기도 하고 삶아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주꾸미를 넣고 끓인 연포탕과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석쇠에 볶아낸 요리는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기자명 정대희 (〈태안신문〉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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