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그동안 ‘복지국가 운동’을 주도해온 세력들이 야권 재편에 나선다. 5월12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본부’(복지국본) 출범식을 열고 대중 활동 및 이를 기반으로 하는 야권 통합 압력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복지국본의 야권 통합 방안은 현재 야권 내에서 진행 중인 논의들에 비해 상당히 ‘과격한’ 편이다. 이른바 ‘복지국가 단일 정당론’. 이는 통상적으로 거론되어온 거대 야당(민주당)이 다른 소수 야당들을 사실상 흡수하거나, 민주당과 진보 정당 간 선거연합을 모색하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보편주의 복지국가’라는 깃발을 기존 정당들의 외부에 꽂아놓고 ‘헤쳐 모여’를 요구하겠다는 내용이다. 자기 조직을 ‘해체’하고 ‘복지국가 단일 정당’에 모이라는 것. 민주당도 ‘헤쳐 모여’의 대상이다. 복지국가라는 가치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이 참여할 수 있는 ‘거대 야당’이 복지국본의 꿈이다.


ⓒ시사IN 백승기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오는 10월에는 민주당까지 견인해서 복지국가 단일 정당 창당 준비위를 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민주당에서는 김근태 전 의원, 정동영·천정배 의원의 쇄신연대 등이 ‘대통합론’(야 5당이 한 정당으로 결집하자는 통합론)을 주장해왔다. 시민사회에서는 ‘백만 민란’ ‘내가 꿈꾸는 나라’ 등이 비슷한 견해. 그러나 협상의 주요 대상인 양대 진보 정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은 민주당과의 통합에 부정적이다. 정치적 독자성 자체가 진보 정당의 중요한 가치다. 선뜻 거대 야당과의 통합을 수락할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양대 진보 정당의 현 지도부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이 재통합한 뒤 민주당과는 선거연합을 구성하는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나 이 계획 역시 잘 진척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복지국본 통합론의 차별성은 ‘복지국가에만 동의’한다면 ‘과거를 묻지 않고’ 뭉치자는 거다. 좋게 말하면 ‘통이 큰’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념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복지국본의 이 같은 관점은 조직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공동본부장이 17명인데, 김용익(한국미래발전연구원장)·노혜경(전 노사모 회장)·신기남(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참여정부 인사, 유종일(KDI 교수) 같은 시장주의자, 주대환(사민주의연대 대표)·이남신(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소장)·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 등 진보 운동권 인사가 함께 포진하고 있다.

과연 거대 야당의 헤게모니, 선거 때까지 얼마 안 남은 시간, 각 정당 내부의 기득권 세력 등 악조건을 극복하고 ‘복지국가 단일 정당’이 건설될 수 있을까. 복지국본의 출범을 주도한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 대표에게 향후 계획을 물어보았다.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본부’(복지국본)를 출범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일을 하나.

대중운동 조직으로서 크게 두 가지 임무를 맡는다. 하나는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우리의 목표를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것. 지금의 시장만능주의 국가에서 온갖 불안과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삶이 아니라, 복지국가라는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 또 이를 실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전파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이렇게 조직된 시민의 힘으로 정계 재편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정계 재편이라면 이미 야 5당을 중심으로 여러 다양한 움직임이 있다.

정계와 시민사회 차원에서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하나는 민주당과 진보 정당을 포함하는 야 5당이 단일 정당으로 가자는 ‘대통합’ 노선이다. 다른 하나는, 양대 진보 정당을 중심으로 ‘진보 대통합’을 이룬 뒤,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구성하는 노선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여곡절이 많은 것으로 안다.

‘복지국본’의 출범은 복지국가 운동 진영이 그토록 복잡한 공간으로 뛰어들겠다는 의사 표시로 들린다.
맞다. 복지국가를 건설하려면 정권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야권의 정계 재편 논의로는 정권 교체가 힘들다. 단지 크고 작은 야권 세력들을 묶는 정도로는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바보인가? 그들은 어떻게든 현재의 ‘심판론’ 국면을 빠져나가려 할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 대비해서 새로운 인물을 세우고 이미지를 바꾸며 새로운 체제를 정비하려 들 것이다. 그러면 분위기가 바뀐다. 더욱이 야권은 정권을 잡은 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복지국본은 야권 재편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
복지국가라는 명확한 가치를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이 가치를 중심으로 야권을 단일 정당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단일 정당은, 보편주의 복지국가라는 가치에 동의한다면 민주당을 포함한 모든 정치 세력에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호소할 것이다.

결국 야 5당이 ‘헤쳐 모여’ 해서 ‘복지국가 단일 정당’으로 통합하자는 소리다. 그런데 당신들에게 그만한 힘이 있나. 특히 민주당이 호응할까.
그런 힘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문성근 대표의 ‘백만 민란’ 운동을 봐라. 벌써 10만 시민의 지지를 얻어내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이런 힘들이 복지국가 단일 정당이라는 큰 틀로 모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민주당도 정말 집권할 의지가 있다면 지역주의 양당 구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당의 정체성을 ‘보편주의 복지국가 건설’로 바꾸면서 외부의 진보 정치 세력 및 시민사회와 함께 당을 구성하는 것 외엔 대안이 없다. 이런 힘을 만들어내기 위한 강력한 국민운동을 추진할 것이다. 복지국가 캠페인과 지지 서명, 다양한 형태의 강연회와 간담회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빌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운동가, 정책 전문가, 기존 정치 세력, 정치 지망생 등으로 최소 3000여 명의 핵심 세력, 10만명에 이르는 서명자, 100만명의 지지 세력을 모으겠다.

그런데 시간이 많지 않다.
그렇다. 지금 추세로 가면 민주당은 올 연말에 전당대회를 열고 선거 체제를 갖출 것이다. 여기서 대표와 최고위원을 다시 뽑고 대선 후보와 총선 지휘 체계의 틀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오는 7월이면 벌써 민주당의 전당대회 준비가 시작된다. 지금 야권 재편을 주장하는 세력들은 이 같은 민주당의 일정이 그대로 진행되도록 손 놓고 구경만 할 것인가. 통합과 정권 교체를 원한다면, 민주당의 독자적 일정을 중단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복지국본은 늦어도 7~8월까지는 야권 재편을 향한 시민사회의 열망을 조직적으로 가시화시켜야 한다. ‘백만 민란’ 등과 함께해야 한다. 그러면 민주당까지 견인해서 오는 10월엔 복지국가 단일 정당 창당 준비위를 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말에 창당을 완료하고 전당대회를 열어 선거 체제를 갖추면 된다.

지금 프로젝트와 관련해 혹시 민주당이나 진보 정당, 시민사회 지도자들과 일정한 교감을 나눈 일이 있는가.
충분한 교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민주당은 견인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민주당의 핵심 지도자들 중엔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무엇보다 현 상황에서 복지국가가 국민의 명령이고 시대정신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 민주당을 결단하게 할 것이다.


ⓒ뉴시스지난 1월20일 열린 ‘복지는 세금이다, 복지 재원’ 토론회. 야권 정치인도 여럿 참석했다.

‘백만 민란’ 측과는 협력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우리와 ‘백만 민란’은 이심전심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백만 민란’은 야 5당을 통합한 단일 정당을 기획해왔고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문제도 있다. 이미 진보 양당은 민주당과는 통합이 아니라 선거연합만 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이 때문에 ‘백만 민란’ 내부에서도 통합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까. 그렇다면 ‘백만 민란’ 역시 지금까지보다 한층 발전적인 여러 방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고, 이런 과정에서 결국 복지국가 운동과 동일한 길을 걷게 되리라 내다보고 있다. 5월12일 열리는 복지국본 출범식에서도 문성근 ‘백만민란’ 대표가 축사를 할 예정이다.

우리 사회엔 진보 정당의 독자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민이 많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진보 정당 통합 이후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는 방안이 더 바람직하지 않나.
그게 어렵다고 본다. 재·보선이라면 모르겠다. 그러나 내년 총선의 경우 전국 245개 지역구에서 선거를 치른다. 이번 재·보선에서 경험한 홍역이 전국의 수백 개 지역에서 되풀이된다는 것인데, 이게 바람직한가? 총선에서 선거연합은 절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민주당도 보수 정당 아닌가. 자칫 복지국가 단일 정당론이 보수 정당의 헤게모니만 살리고 진보 정당의 싹을 죽이는 쪽으로 갈 위험은 없을까.
오히려 복지국가 단일 정당론이야말로 한국 정치의 지형을 진보 쪽으로 성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우리 목표가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겠다. 그리고 이 목표를 실현하려면 집권 세력이 되어야 한다. ‘소수파로 남겠다’가 아니라 ‘다수파가 되겠다’는 전략을 견지해야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 양대 진보 정당이 통합하고 민주당과 선거연합에 성공해서 총선에서 20석 정도를 얻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진보 정당 20석과 나머지 270~280석을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양분하는 국면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도에서 한나라당의 집권이 장기화되면 어떻게 될까. 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이 더욱 보수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세계 정치사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경험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을 중도·진보 영역으로 끌고 오는 작업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 정치 질서를 거대 보수 양당 구도에서 거대 보수-진보 양당 구도로 재편하자는 것이 우리의 프로젝트다. 지금의 민주당을 통째로 들어 중도·진보 영역에 가져다 놓자는 이야기로 보면 된다.

복지국가 단일 정당이 구성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복지국가 단일 정당은 그야말로 놀라운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범진보가 내년 총선 승리로 의회 권력을 잡고, 대선 승리로 행정 권력까지 획득하는 것이 결코 꿈이 아닌 상황이 도래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진보 세력은 2013년부터 곧바로 복지국가 건설 5개년 계획으로 진입할 수 있다. 5년씩 3단계로 나눠 재정 개혁과 복지 확충을 차근차근 이뤄나가는 프로젝트다. 총선에서 승리하지만 대선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엔 의회 권력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신자유주의적 퇴행이 심화되는 것을 저지하고, 더욱 선명한 복지국가 비전을 제시하며 다음 대선을 기다릴 수 있다. 이런 모든 꿈을 위해 지금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 바로 복지국가 단일 정당 건설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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