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제목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한글로 번역되면서 엉뚱하게 다른 의미로 읽히는 책들이 있다. 〈염소의 맛〉도 그런 책 중 하나일지 모른다. 다소 의도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푹 고아 드시는 그것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기회를 통해 말씀드리고자 한다. 이 책의 제목은 수영장에 가면 맡게 되는 소독약 냄새의 그것, 바로 수영장 특유의 ‘염소의 맛’이다.

척추 치료를 위해 수영장을 찾은 소년, 수줍은 성격에 익숙하지도 않은 그곳에서 별다른 의욕을 못 느끼던 소년은 한 소녀를 만난다. 수영 선수였던 그녀에게 수요일마다 수영을 배우면서 친해진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또다시 수요일을 기다린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소녀, 어느 날 소녀로 보이는 모습을 쫓다가 그토록 원하던 잠영에 성공하고 만다.

1984년생, 현재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프랑스 신예 바스티앙 비베스. 그에게 2009년 앙굴렘 만화축제 ‘올해의 발견 작가’상을 안긴 이 작품은 풋사랑의 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물빛 가득한 수영장만으로 그려냈다. 많은 독자가 이 만화의 최고 장면으로 꼽는, 소녀가 물속에서 뭔가를 고백하는 장면은 대사 없이 입모양만 보여준다. 비베스 역시 한 인터뷰를 통해, 소녀의 이 말은 개인적 추억이 담긴 것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강렬한 찰나의 감정은 일상에 숨어 있기 마련이다. 만화가 아니고는 도저히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이야기는 그 열린 결말만큼 누구에게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다가오나보다. 꾸준히 세계 각국의 숨겨진 보석 같은 예술만화를 소개하고 있는 미메시스는, 공간과 냄새 그리고 하나의 기억을 이렇게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이야기로 빚어낼 수 있는 비범한 젊은 작가 바스티앙 비베스에게 제대로 꽂혔다. 〈염소의 맛〉에 이어 그의 차기작들도 이미 소개하려고 준비 중이다. 작가도 젊고 그의 멋진 책들도 계속 나올 것이니, 언제까지고 아까운 걸작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


※이 지면은 출판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펴냈으나, 출판 시장에서 인기를 끌지 못한 책을 소개하는 난입니다.


 

기자명 김민기 (미메시스 편집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