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심한 종교 편향” 정희상 기자 명진 스님은 스스로를 ‘백운’이라 부른다. ‘바랑을 짊어지고 흰 구름처럼 떠도는 수행자’라는 뜻이다. 지난해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강남 좌파 주지 축출’ 발언과, 이명박 정부의 다양한 불교 홀대 정책에 거친 죽비를 내리치며 사회적 주목을 끌었던 명진 스님. 명진스님, “리영희 선생이 당장 극락 가길 바라지 않는다” 정희상 기자 1월22일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 각계 인사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 리영희 교수 49재가 봉행됐다. 문경 봉암사에서 동안거 중인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이날 49재를 직접 봉행하기 위해 잠시 봉은사에 들렀다. 생전에 리영희 교수는 명진 스님과 각별한 인연이었다고 한다. 리영희 교수 미망인 윤영자씨와 명진 스님이 행사 전 30여 분에 걸쳐 나눈 봉은사 직영화에 숨은 ‘함수’ 김은지 기자 “석가모니불”을 반복하는 사람들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나왔다. 영상 5℃. 11월8일 오전 서울 조계사 앞에서 봉은사 신도 150여 명은 하염없이 염불만 읊조렸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손에 든 갈색 종이에 쓰여 있었다. 앞에는 ‘직영 사찰 지정 철회’, 뒤에는 ‘명진 스님’. 다음 날 다시 시작된 시위 도중 신도들은 봉은사가 직영 사찰로 확정되었다는 소 명진, “오죽하면 청와대를 ‘청와교회’라 하겠나” 김은지 11월9일 오후, 명진 스님이 봉은사를 떠났다. 봉은사의 직영사찰 전환이 확정되자 지체 없이 짐을 쌓다. 13일 임기 종료에 앞서 주지 자리를 내어놓고 경북 문경시의 봉암사에서 동안거에 들어갔다. 그가 떠나면서 8일 특별법회는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의 마지막 죽비소리가 되었다. 저녁 7시 20분께 특별 법회를 시작한 명진 스님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백년순례’ 화두 꺼낸 도법, “희망은 지가 만들어야지” 남원·김은남 기자 도법 스님(실상사 회주)이 최근 ‘백년순례’를 제안했다는 얘기를 듣고 뭔 말인가 싶었다. 도법을 중심으로 한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장장 5년여에 걸쳐 3만 리 길을 다 걸은 것이 불과 2년 전이다. 2004년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시작된 도보 순례가 2008년 12월이 되어 끝이 났다. 그런데 또다시 순례 명진 스님이 말하는 봉은사 사태 전말 임지영 기자 명진스님 손석희 시선집중 인터뷰 중에서 그 자리에 동석했던 김영국 거사라는 분이 11월 20일 쯤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좀 조심을 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안상수 원내대표하고 자승원장하고 고흥길, 그때는 고흥길 문광위원장이 있었다는 얘기는 제가 못 들었습니다. 하여튼 앉아서 얘기하는데 앉자마자 강남의 부자 절에 좌파주지를 그렇게 놔두면 되겠 “절을 버린 지금이 최고 전성기” 박형숙 기자 도법 스님(59)은 제주에서 태어나 18세인 1966년 금산사에서 출가했다. 이후 해인사 강원을 거쳐 봉암사와 송광사 등에서 10년 넘게 수행했다. 도법이 탁발순례를 결심한 건 역사가 오래다. 1985년 금산사에 있을 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처님이 일생을 길에서 보내고 길에서 죽었어. 길에서 고민하고 길에서 고민을 풀었어. 나도 부처나 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