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분의 삶을 살고 있나요?’ 조회수 40만 넘은 이 영상 [미디어 리터러시] 신혜림 (CBS 유튜브 채널 ‘씨리얼’ PD) “아버지는 ‘나처럼 살지 않으려면 네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이가 들수록 부담감이 컸던 거 같아요. 장학금 이런 거 남들은 다 받는데 나는 게으르고 나태해서 그것도 못 받고 자책감이 컸고, 스트레스성 폭식을 반복했고 그러면서 악순환이 시작된 거 같습니다(〈씨리얼〉, ‘1인분의 삶을 살고 있나요?’ 인터뷰 중).”2021년 즈음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 계속 언급되는 ‘요즘 20대의 일생’이란 짧은 웹툰이 있다(원작은 가바나 작가가 2014년 그린 단편 〈완벽한 백수의 일생〉이지만 누군가가 ‘불펌’하며 퍼져 나갔다. 작 워싱턴과 용산 사이 ‘빛 샐 틈’ 벌어지나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총선에 개입하기 위해 도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새해 들어 몇 차례 이어졌다. 미국 국무부의 판단은 이와 다르다고 밝혀졌다. 북한이 총선 전에 도발할 조짐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미 연합 군사연습에 대해서도 워싱턴의 움직임은 윤 대통령 발언과 미세한 차이를 드러냈다.3월6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총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를 흔들기 위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번 한·미 연합 군사연습을 통해 한·미 동맹의 굳건한 연합 방위 태세를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당신이 꼭 투표를 해야하는 이유 [정치하는 인간] 장일호 기자·최한솔·김세욱·이한울 PD 4월5일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오전 부산 강서구 명지1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쳤습니다. 이날 사전투표에는 윤 대통령을 비롯해 성태윤 정책실장, 이도운 홍보수석, 박춘섭 경제수석, 장상윤 사회수석 등이 함께했습니다.윤 대통령은 이날 경남 창원에서 열린 부산항 신항 7부두 개장식에 참석차 부산을 방문하며 사전투표를 마쳤습니다. 지난 대선 때도 윤 대통령은 부산에서 사전투표를 했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이 아니라 이번 총선 최대 격전지로 분류되는 부산을 찾 독자와의 대화 시사IN 편집국 ‘오래된 정기구독자’라고 밝힌 독자에게서 문의 메일 한 통이 왔다. 〈시사IN〉의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 기준을 묻는 메일이었다. 이호철 독자(대구가톨릭대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와 나눈 ‘우리말 탐구’ 문답을 그의 동의를 얻어 지면에 옮긴다.이호철 독자: 전공 분야는 공학이지만 〈시사IN〉을 통해 얻은 지식을 수업 시간에 곧잘 써먹곤 합니다. 특히 제가 늘 고충을 안고 있는 ‘맞춤법’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제859호 ‘사람IN’ 기사(“노란버스는 공공재다”)를 보다가 궁금해진 것도 맞춤법에 관련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 신선영 기자 어느덧 열 번째 봄을 맞았습니다. 2014년 4월16일, 10년 전 그날의 봄은 모두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10년 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슬픔의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었던 〈시사IN〉 사진팀 기자들은 10년 후 다시 세월호의 기억을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2024년 1월7일부터 4월16일까지 100일 동안, 세월호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100명의 얼굴과 100명의 말’이 모였습니다. 사회적 참사가 남긴 질문에 답을 찾는 여정 “선생님이 너희 때문에 갔다고 생각하지 마” 신선영 기자 고 남윤철 교사(당시 35세)의 아버지 남수현씨(72)와 어머니 송경옥씨(71)의 일상은 단출하다. 매일 산책을 하고, 성당을 다녀오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다. 파킨슨병 투병 중인 남편을 위해 아내 송씨는 집 안을 더 밝게 꾸몄다. 2007년 치과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직장암 판정을 받자, 아들은 학자의 길을 접고 임용고시를 선택했다. 이후 아버지는 대학교수로, 아들은 중등교사로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제자에게 차별 없는 ‘맞춤형 선생님’으로 불리던 자상한 아들은 떠났지만, 그를 기억하는 제자들은 여전히 부부를 찾아온다.“아들은 “몸은 어떻게 하겠는데 기억은 안 잊히네요” 이명익 기자 황병주씨(65)는 베테랑 잠수사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이미 산업 잠수사 경력이 30년에 이르렀다. 2014년 4월20일 첫 잠수를 시작해 7월7일까지 세월호에 있었다. 이후 잠수병을 얻었는데, 해경을 상대로 낸 산재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틀에 한 번 4시간씩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4월20일 첫 잠수를 했는데 시야가… 정말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손을 한 번 휘저었는데 한꺼번에 여러 아이들이 잡혔어요. 그 순간 감당을 못하겠는 거예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때 막 목놓아 울면서 누구한테인지 “그 친구들은 희망의 근거예요” 신선영 기자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김은지 원장(47)은 세월호 참사 이후 2년 동안 단원고등학교에서 마음건강센터 스쿨닥터로 일했다. 이후 안산에 ‘마음토닥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개원해 10년 가까이 생존자와 형제·자매들을 만나고 있다.“재난 피해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요. 6개월마다 한 번씩 생존자들을 만나죠. 다행히 국가 예산을 지원받아 10년 가까이 하고 있어요. 당시 생존 학생 75명 가운데 한 번에 40~50명씩 만나죠. 매번 만나는 친구들은 달라지기도 하고요. 그 연구와 별개로 따로 요청하면 만나기도 해요. 그들 “조금 더디더라도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까” 박미소 기자 김송이씨(35)는 2학년 4반 김건우 학생의 누나다. 15년 차 타투이스트다. 참사 이후 유가족 여러 분에게 타투를 해준 적 있다. 어떤 어머니의 가슴팍에는 아이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새겨주고, 어떤 형의 팔에는 노란 리본과 가족의 생일을 남겨줬다. 어떤 마음으로 타투를 새기는 건지 그는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아픔의 깊이를 가늠하며 함께 슬퍼했다.“엄마도 저도, 병원을 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서로 몰라요. 남들한테 건너 듣죠. 서로 걱정시키기 싫어서요. 지금까지 동생 이야기는 서로 잘 하지 않아요. 전 엄청 바쁘게 지내 “하고 싶은 거 꼭 하면서 살려고요” 박미소 기자 한혜진씨(26)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김민지 학생과 생존자 장애진씨의 중학교 친구다.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후, 민지씨의 생일이 다가올 때면 애진씨와 함께 민지씨를 만나러 간다.“금요일을 좋아하고 퇴근을 좋아해요. 곧 퇴사하는데, 3·5·8월에 여행을 가요. 제 좌우명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살겠다’는 거예요. 민지 장례식 때, 민지 아버지께서 안아주시면서 ‘너희는 하고 싶은 거 꼭 하면서 자라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때부터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좀 더 고민하고, 정말로 그렇게 살아요.사실 가끔씩은 민지를 약간 원망했어요. “아직도 선원과 학생들 꿈을 꿔요” 이명익 기자 화물차 운전기사인 윤길옥씨(60)는 제주행 배에 오를 때마다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먹는다. 그래야 짧은 시간이나마 배에서 잠잘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 화물 기사의 삶은 육지로 오고 가는 삶을 뜻한다. 그는 10년 전 세월호에 올랐던 화물차 기사다. 세월호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한 생존자이기도 하다.“아직도 왼쪽 팔은 끝까지 올라가지 않아요. 두 발의 화상도 이식수술을 계속 해야 하는데 요즘은 힘들어서 하지 못하고 있어요. 세월호 참사가 있고 나서 3년 만에 운전대를 잡았는데, 오래 하진 못했어요. 다른 일을 좀 하다가 2년 전에 다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