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일 연방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의 3분의 1을 새로 뽑는 중간선거를 코앞에 두고 미국 정치판이 요동치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중간선거이기에 각 후보와 정당의 선거 전략은 종전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근래 한 가지 다른 점은 폭스 뉴스와 MSNBC· CNN·CNBC 등 24시간 뉴스를 내보내는 케이블 채널이 후보의 당락 여부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공화·민주 양당의 후보들이 자당에 우호적인 케이블TV를 골라 집중 출연하면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케이블TV가 특정 정당과 후보의‘홍보 매체’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에 우호적인 폭스 뉴스를 가리켜 ‘파괴적’이라고까지 비난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표출한 폭스 뉴스에는 전직 공화당 거물 인사들이 ‘해설가’라는 직함으로 이런저런 시사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고 있고, 일부 인사는 아예 고정 프로그램을 맡기도 한다. 그 면면을 보면 전 알래스카 주지사 겸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이 인기 시사 프로그램 〈리얼 아메리칸 스토리〉를 맡고 있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섰던 마이크 허커비도 자신의 이름을 딴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 공화당 하원의장 출신인 뉴트 깅리치와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은 폭스 뉴스에 고정 해설가 자격으로 출연해 하루가 멀다 하고 오바마 행정부와 정책, 나아가 민주당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The New York Times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섰던 마이크 허커비(왼쪽)는 〈폭스 뉴스〉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유권자들 표심 결정, 케이블TV에 크게 의존

전국적 시청률을 굳이 따진다면 폭스 뉴스 같은 케이블TV보다는 ABC·NBC·CBS 등 전국 규모의 공중파 방송이 훨씬 더 높다. 통상 케이블TV가 시청자 수백만명을 확보하면 대성공이지만, 이런 공중파 방송은 황금 시간대에 시청자 수천만명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권자들이 선거를 앞두고 후보를 판단할 때 공중파 방송보다는 뉴스 전문 케이블TV의 영향을 더 받는다는 점이다. 실제 워싱턴의 유력한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Politico)〉가 최근 조지워싱턴 대학과 공동으로 유권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1월2일 치러지는 중간선거와 관련해 응답자의 81%가 ABC·CBS·NBC보다 폭스 뉴스나 CNN·MSNBC 같은 케이블TV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폭스 뉴스는 선호도에서 다른 경쟁 케이블TV보다 훨씬 높은 42%를 나타냈고 CNN이 30%, MSNBC가 12%로 그 뒤를 이었다. 24시간 종횡무진 선거와 관련한 각종 보도를 쏟아내는 케이블TV가 단순히 보도의 전달자가 아닌 후보의 당락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공스러운 존재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폭스 뉴스의 빌 오라일리와 글렌 벡 같은 인기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공화당 후보의 당락에 미치는 입김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폭스 뉴스가 공화당의 약진에 기여한 실례가 있다. 지난 9월 민주당의 전통적인 아성인 델라웨어 주의 연방 상원의원 예비선거에서 무명이던 크리스틴 오도넬이 공화당 지도부의 강력한 후원을 받는 마이클 캐슬 전 델라웨어 주지사를 물리친 데는 폭스 뉴스가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그가 폭스 뉴스에 적극 출연해 보수 유권자들의 민심을 끌어낸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또 민주당 텃밭인 매사추세츠 주에서 지난 1월 치른 연방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공화당의 경량급 후보 스콧 브라운이 민주당의 마사 코클리 후보를 거뜬히 누를 수 있었던 것에도 폭스 뉴스가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당시 브라운 후보는 선거일을 앞두고 폭스 뉴스에 집중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높였고, 폭스 뉴스를 통해 16차례에 걸쳐 모금을 호소했다. 하지만 상대인 코클리 후보는 그 같은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다. 폭스 뉴스가 민주당 후보인 그에게 그런 기회를 줄 리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다보니 공화당의 정치 분석가 데이비드 프롬조차 “공화당원들은 폭스 뉴스가 우리를 위해 일하는 걸로 생각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거꾸로다”라고 토로할 정도다.

ⓒAP Photo공화당의 크리스틴 오도넬(오른쪽)은 〈폭스 뉴스〉에 출연한 덕에 상원의원 예비 선거에서 승리했다.
민주당에 우호적인 케이블TV가 없는 것은 아니다. MSNBC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MSNBC의 시청률은 폭스 뉴스에 비하면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원 10명 가운데 4명이 폭스 뉴스를 고정 시청하지만, 민주당원은 10명 중 고작 2명 정도만이 MSNBC를 시청한다.

그렇다 해도 민주당에게는 MSNBC라도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공화당 인사가 폭스 뉴스에서 한껏 민주당을 질타할 때 민주당 인사도 MSNBC에 출연해 역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MSNBC에서는 〈하드볼(Hard ball)〉이라는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크리스 매슈가 그나마 인지도가 있지만, 에드 슐츠·헤럴드 포드 같은 진행자들은 여전히 시청자에게 낯설기만 하다.

공화당 대권 후보들, 케이블TV로 ‘꿈’ 키워

이처럼 폭스 뉴스가 친공화당, MSNBC가 친민주당 쪽으로 양분되어 있는 반면 세계적 뉴스 채널 CNN은 당파성을 배제한 채 균형을 취하려고 노력한다(하지만 시청률은 비교적 낮은 편이다). 이런 가운데 공화당 선거 전략가들 사이에서는 공화당 후보들이 너무 폭스 뉴스와 유착해 ABC·CBS·NBC 등 전통적인 3대 주류 방송을 외면할 경우 이번 중간선거에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염려한다.

문제는 유권자들이 공화·민주 후보의 자질을 검증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에 맞는 케이블TV만을 골라 시청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케이블TV의 양극화 현상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시라큐스 대학 부설 ‘텔레비전 및 대중문화 센터’의 로버트 톰슨 소장은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이런 양극화 현상이 기존 정치 체제와 유권자들이 후보에 관한 정보를 얻는 수단을 분쇄하는 데 기여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개탄했다. 특히 특정 후보를 선호하는 케이블TV가 중간선거는 물론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경우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폭스 뉴스에 나오는 세라 페일린·마이크 허커비·뉴트 깅리치·릭 샌토럼 등 전직 공화당 거물 인사 4명이 한결같이 2012년 대권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폭스 뉴스가 이들의‘정치적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폭스 뉴스는 이들 중 누구라도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하는 순간 폭스 뉴스와 출연 계약을 끊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지만, 문제는 이들이 자신들의 대권 도전을 최대한 늦추며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폭스 뉴스의 고정 해설가로서 유·무형의 정치적 혜택을 최대한 누리려 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과거에도 비슷한 예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90년대 공화당 우파 인사인 팻 뷰캐넌은 CNN의 시사 프로그램 〈크로스파이어(Cross fire)〉를 공동 진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얻은 인지도를 한껏 활용해 대권 지명전에 도전한 적이 있다. 현재 MSNBC의 고정 해설자로 있는 뷰캐넌조차 요즘 케이블TV의 극심한 당파적 현상과 관련해 “그때와 비교하면 우린 지금 극적으로 다른 시대에 와 있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한때 미국에서는 영향력 있는 인쇄매체가 공화·민주 양편을 지지하면서 양극화 현상을 이끈 적이 있는데, 이제는 케이블TV 쪽으로 그 양상이 옮아가는 셈이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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