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땡큐, 마스터 킴〉은 우리를 자랑스럽게도, 그리고 부끄럽게도 만드는 영화다. 외국의 유명 재즈 뮤지션에게 깊은 음악적 영감을 준 사람이 우리 전통 무속인이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자랑스럽게 한다. 그러나 그 무속인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 우리 손이 아니라 남의 손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영화 안으로 들어가면 이 상반된 감정이 더욱 복잡하게 뒤엉킨다. 우리 전통음악을 이토록 깊이 읽어주다니, 이렇게 잘 정리해서 보여주다니,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여러 번 놀라게 된다. 그러나 이런 영화의 후반부 제작비를 일본 NHK에서 후원했다는 사실과, 해외 유명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국내 영화제에서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시사IN 조남진사이먼 바커(왼쪽)와 엠마 프란츠(오른쪽)는 '탱큐, 미스터 킴'으로 유수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오스트레일리아 최고의 재즈 드러머로 꼽히는 사이먼 바커는 2005년까지 7년 동안 열일곱 번이나 한국을 찾았다. 주로 공연을 위해서 왔지만,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틈을 내 동해안 별신굿 명인인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김석출 명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의 공연 실황을 담은 CD를 듣고 완전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소원은 한 번만이라도 김 명인을 직접 만나는 것이었다. 김 명인은 장고 솜씨가 일품이었다. 즉흥 음악의 대가여서 김명곤 전 장관은 ‘신이 내린 명인’이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가 김석출 명인을 찾는 이유를 귀담아들은 음악 친구 엠마 프란츠는 이를 다큐멘터리 영화에 담기로 결심했다. 17년 동안 재즈 가수로 활동하며 33개국에서 공연했던 그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엇인가에 목마른 재즈 음악가가 80세가 넘은 한국의 무당을 만나면 무엇인가 아름다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 영화는 그녀의 감독 데뷔작이다.

의기투합한 두 오스트레일리아 재즈 뮤지션은 다시 한국을 다섯 번 더 방문했다. 그렇게 스물두 번의 방문 끝에 어렵게 김석출 선생을 만날 수 있었고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그리고 어렵사리 후반 작업을 마치고 김 명인에 대한 오마주 영화 〈땡큐, 마스터 킴〉(원제 ‘무형문화재 제82호(Intangible Asset No.82)을 이미 고인이 된 그의 영전에 바쳤다. 

번번이 실패하던 이들이 김 명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원광디지털대학교 김동원 교수(전통공연예술학과)가 길잡이로 나서준 덕이다. 김덕수 사물놀이패에서 15년 동안이나 활동했던 그는 “스승의 구실은 다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자신을 딛고 더 멀리 더 깊이 갈 수 있게 받쳐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첼리스트 요요마가 이끄는 실크로드 앙상블의 멤버이기도 한 그는 바커와 김 명인의 다리가 되어주었다. 

오랜 병환으로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한 김석출 명인을 만나러 가는 길은 직선이 아니었다. 김 교수는 김 명인이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에둘러가며 우리 음악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감독은 한국의 유명 국악인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현장의 생생한 소리를 들어보라며 지리산 오지로 그들을 안내했다.

낫으로 길을 낸 진창길을 헤치며 올라가 만난 사람은 배일동 명창이었다. 지리산 폭포 아래 오두막을 짓고 하루 16시간씩 소리를 가다듬던 그는 7년째 독공 중이었다. 멀리서 온 손님들을 옹색한 바위 위에 앉혀두고 소리를 들려주었다. 바커는 그의 둔탁하지만 애절한, 강렬한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오고무의 달인 등에게 음악적 깨달음 얻어

장구의 대가 고 박병천 명인(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보유자)과 오고무의 달인 진유림 명인도 동해로 가는 여정에 만났다. “정신병자를 고치려면 자기도 정신병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박병천 명인에게서는 우리 음악의 혼을, 장단과 호흡을 둘이 아니라 하나로 보라는 진유림 명인에게서는 자연스럽게 감정을 끌어올리는 우리 음악의 기를 읽었다.

재즈 뮤지션으로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바커는 깊은 음악적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힘을 주는 게 아니라 힘을 빼는 법을 배웠다.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힘을 주고 내지르는 것만이 아니라 힘을 빼고 억제하는 것으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탱큐, 미스터킴동해안 별신굿 기능보유자였던 김석출 선생은 세상을 뜨기 사흘 전 사이먼 바커를 마지막 제자로 받아주고 가르침을 주었다.
이 음악 여행의 마지막, 사이먼 바커는 드디어 김석출 명인을 만난다. 김 명인의 병치레를 위한 굿판이 열리는 자리였다. 한바탕 굿판이 벌어진 후 사이먼 바커는 조심스럽게 김 명인의 옆자리에 앉았다. 여든넷, 노구에도 불구하고 김 명인은 또랑또랑하게 자신의 음악관을 벽안의 제자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사흘 뒤 눈을 감았다. 불과 하루 동안의 가르침이었지만 바커는 김석출의 마지막 제자였다.

〈땡큐, 마스터 킴〉을 보는 동안 관객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김석출과 그의 음악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우리 음악의 넓이와 깊이에 대해서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사이먼 바커의 팬들은 변화된 그의 음악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이전보다 음악적으로 성숙했다는 것을 팬들이 먼저 알아챘다. 내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재즈와 굿의 만남이 거둔 음악적 성과를 인정받은 곳은 재즈의 본고장 뉴올리언스였다. 엠마 프란츠는 “사이먼의 뉴올리언스 공연에서 ‘새롭다’는 음악적 평가를 얻었다.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즉흥성을 살릴 수 있다는 점에 재즈 뮤지션들이 주목했다”라고 말했다. 바커는 김동원 교수·배일동 명창과 함께 크로스오버 재즈 밴드 ‘다오름’을 조직해 ‘김석출을 위하여’ 등의 곡을 발표했다.

NHK가 후반 작업 지원하고 판권 확보

생전에 무속음악을 한다 하여 괄시받았던 김석출 명인처럼 무속음악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 역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기를 원했지만 영화제 측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소개했다. 오히려 해외에서 호평받았다. 2009년 더반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사이먼 바커와 엠마 프란츠는 이 영화 제작을 위해 그동안 공연해 번 돈의 거의 전부인 4억원을 투자했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손을 벌렸지만 제작비가 부족해 전전긍긍하고 있을 무렵 우연히 영화제에서 일본 NHK 관계자를 만났다. 그 관계자는 30년 전 김석출 선생의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사람이다. 그는 NHK가 후반 작업 비용을 댈 수 있게 주선해주었다.

이 영화의 아시아 배급권은 NHK가 가지고 있다. 프란츠는 NHK 측에 한국만은 따로 판권을 확보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 이를 국내 독립영화 배급사인 인디플러그에 넘겼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친 뒤에야 〈땡큐, 마스터 킴〉은 한국에서 프리미어 개봉을 할 수 있었다. 바커가 김석출 선생을 만나는 과정만큼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도 험난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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