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이 이학수 부회장(앞줄 오른쪽)과 김인주 사장(앞줄 가운데) 등과 포즈를 취했다.

요즘 한국 최대 그룹 삼성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위기’다. 삼성 사람들은 10월29일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으로 터져나온 비자금 의혹 사건을 ‘사카린 밀수 사건’에 버금가는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한 삼성 관계자는 “2004년 대선 자금 수사,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 때도 무척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때와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걱정했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인 1966년 9월 터진 한국비료 밀수사건, 이른바 사카린 밀수사건 때는 ‘이병철 회장을 왜 구속하지 않느냐.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여론이 들끓었다.

아닌 게 아니라 위기는 위기인 모양이다. 수년간 긍정 의미의 ‘올해의 인물’로 꼽혔던 이건희 회장이 올해는 ‘최악의 인물’로 둔갑한 것이 위기의 삼성을 드러내는 또렷한 징후다. 〈시사IN〉 100인 자문단의 한 인사는 이 회장을 최악의 인물로 지목하며 격한 표현을 썼다. ‘사기를 치고 거짓을 말해도 돈만 있으면 살아남는다.’ 이른바 삼성그룹의 2인자라는 이학수 부회장(전략기획실장)과 ‘행동대장’ 김인주 사장(전략지원팀장)도 이 회장과 함께 최악의 인물 대열에 끼었다.

"삼성 문제는 결국 이재용이 핵심"

삼성을 대표하는 이 세 사람에 대해 대중의 정서가 극도로 나빠진 것은 지난 10월29일 이후 일이다. 사람들은 김용철 변호사가 털어놓은 온갖 삼성 비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 세 사람에 대해 제기된 의혹은 가히 쓰나미를 방불케 한다. 먼저 비자금 조성 용도로 의심되는 차명 계좌가 튀어나오더니 심지어 에버랜드 사건의 증인과 증언이 통째로 조작되었다는 충격적인 폭로까지 터져나왔다. ‘마법’이라는 비아냥을 받은 이 전무의 재산 증식 과정도 튀어나왔다.

이 회장 일가는 ‘원죄론’에 시달려왔다. 이학수·김인주 등 전략기획실 인사들이 온갖 변칙과 편법, 심지어 불법을 저지르게 된 것도 이 전무로의 후계 체제를 유지하려는 안간힘에서 말미암았다는 주장이 많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이 전무가 지배하는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이라는 금융 계열사가 삼성전자 등 제조업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현행 지배구조는 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라는 이른바 ‘금산분리’ 원칙을 바탕에 깔고 있는 현행 금융 관련 법률과 끝없는 불화를 빚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법률상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이학수·김인주 등 전략기획실 사람들은 정치권, 재경부·국세청·금감위 등 관계, 검찰, 언론계 등 한국 사회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관리할 수밖에 없고 그러자니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을 계열사에서 조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의 지적대로, ‘결국 삼성의 문제는 이재용으로 통하고, 이재용이 핵심’인 셈이다.

삼성 관련 의혹은 내년 상반기에도 한국 사회를 뒤흔들 폭발력 있는 사안일 수밖에 없다. 현재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가 고발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비자금 조성 및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이지만 내년 초부터는 특별검사팀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따라서 60일간의 1차 수사 결과가 발표될 2008년 3월 초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이학수·김인주라는, 삼성을 지배하고 움직이는 핵심 인사들의 인신이 자유롭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 회장은 몹시 답답할 것이다. 해마다 11월 말 무렵 일본의 오키나와에 있는 별장으로 장기간 휴가를 떠나곤 했지만, 올해는 가지 못했다. 굵직한 사건이 터졌을 때도 출국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출국금지를 당했기 때문이다. 출국 금지 대상에는 이 부회장, 김 사장도 올라 있다. 이건희 회장과 전문경영인과 함께 삼성그룹을 움직이는 ‘삼각 편대’라는 전략기획실도 어떤 형태로든 큰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내부로부터 나온다.

1966년 김두한 의원이 국회 의사당에서 ‘재벌이 도적질해먹는 것을 합리화해주는 내각을 규탄하는 국민의 사카린’이라며 국무위원 석으로 집어던진 것은 인분 두 통이었다. 이 오물 투척 사건으로 김 의원은 제명되고 결국 폐인이 되고 말았지만, 당시 민복기 법무장관과 김정렴 재무장관의 해임되는 등 타격이 컸다. 물론 삼성은 직격탄을 맞았다. 고 이병철 회장의 둘째 아들이자 이건희 회장의 형인 고 이창희 회장이 구속되고 한국비료 주식 51%를 정부에 헌납하는 것으로 종결된 것이다.

2007년판 삼성 비리 사건의 끝은 어디일까?

기자명 장영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coo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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