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사태에 대한 침묵과 대조적으로 정부 여당은 일제히 종교계를 향한 구애의 말풍선을 날리는 중이다. 특히 3월12일 천주교 주교회의가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뒤 정운찬 총리가 직접 나서서 주교들을 접촉하는 등 ‘천주교 달래기’가 한창이다.

청와대 대변인실은 3월22일 고위 당정청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4대강살리기추진본부를 질책한 내용을 소개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천주교 측의 요청을 추진본부가 거절한 것을 두고 “그건 잘못된 것이다. 당연히 가서 설명을 했어야 했다”라고 정 실장이 꾸짖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천주교 측의 요청을 거절한 것은 청와대가 먼저였다. 시발은 이명박 대통령취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반도 대운하 착수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2008년 3월 서울 명동성당 앞 가톨릭회관에 대형 현수막이 나붙었다. 3월19일 오후 2시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 주최로 ‘한반도 대운하 정책 토론회’가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찬성 토론자는 추부길 당시 청와대 기획홍보비서관, 반대 토론자는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찬반 토론자도 정해져 있었다.
 

ⓒ천주교주교회의 제공천주교 주교회의는 춘계 정기총회에서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그런데 토론회는 이틀 전 전격 취소됐다. 천주교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 측 발제자가 돌연 불참 통보를 해옴에 따라” 토론회를 취소하게 됐다고 밝혔다. 당시 준비를 맡았던 실무자는 “추 비서관이 정부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인 줄 알고 나오려 했는데 찬반 토론 형식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해온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토론회가 무산된 직후인 3월28일, 정의평화위원회는 최기산 주교(당시 정의평화위원장) 명의로 청와대에 정식 공문을 발송했다고 한다. “추부길 비서관과 구두로만 연락을 주고받았기에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해도 강력하게 항의하지 못했다 싶어 청와대 대통령실에 직접 공문을 전달하기로 했다”라고 당시 정의평화위원회 총무를 맡았던 이동훈 신부는 말했다. 4월4일 정부 측 실무자가 참석해 대운하 정책을 설명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동훈 신부는 “당시 이 아무개 행정관이 전화를 걸어와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라 지금은 어렵다. 총선 뒤에는 가능할 것 같다’고 통보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4월4일 설명회는 정부 측이 불참한 채 반쪽짜리로 열렸다고 한다. 4·9 총선이 끝난 뒤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청와대에 재차 공문을 보냈다. 5월2일 다시 설명회를 열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청와대는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 뒤 천주교는 자체적으로 대운하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렇게 보자면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청와대와 천주교의 갈등은 이미 그 전초 격이었던 대운하 때부터 시작되었던 셈이다. 정의평화위원회는 천주교 공식 의결기구인 주교회의 산하 20여 개 위원회 중 하나이다. 비공식 사제단 모임과는 위상이 또 다르다. 그런데 이곳의 요청을 청와대가 연속해서 거절한 셈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이 문제로 천주교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담당 수석·비서관이 지금은 모두 청와대를 떠났기에 당시 상황을 알기 어렵다고 밝혔다.

2008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살리기’를 들고 나오면서 천주교와의 관계는 다시금 꼬여갔다. 4대강 마스터플랜이 나오고 이를 연구·분석하는 자체 팀을 꾸리면서 천주교는 점점 의심을 키웠다. 지난해 가을 정부가 4대강 사업에 착공하면서 천주교 내부의 반대 움직임 또한 본격화됐다. 사업을 반대하는 사제들이 중심이 되어 교구별로 순회 설명회를 열고, 4대강 반대 자료집·만화책을 배포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녹색 순교’를 각오해야 한다는 말도 나돌았다.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이에 전국 13개 교구별 정의평화위원장이 모인 임시총회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정부 측 설명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것이 지난 2월3일이었다. 이를 앞두고 국토해양부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에 참석을 요청하는 공문을 띄웠다. 그러나 4대강 추진본부는 “내부 사정상 참석이 불가능하다”라며 불참을 통보했다. 심명필 본부장은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여러 기관·단체에서 설명이나 토론을 요청해 다 수용하기 곤란했다. 당시 추진본부 발족 1주년을 맞아 실무적으로, 시간적으로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라고 불참 사유를 해명했다.

그 뒤 정의평화위원회는 4대강 문제를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렸고, 상임위는 3월8~12일 열리는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로 결정했다. 13개 교구 22인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봄·가을 일 년에 두 번 열리는 정기총회는 천주교 최고의 의사결정기구라 할 수 있다. “주교회의는 기본적으로 성향이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 제공3월22일 영산강 승천보 공사 현장을 찾은 천주교 사제와 신도들.

정부 관계자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때였다. 대운하 때부터 치면 공식·비공식으로 다섯 번 요청하고 네 번 거절당한 끝에 간신히 정부 측 설명을 듣게 된 셈이다. 이조차도 순탄치는 않았다. 천주교 주교회의가 국토해양부에 협조 공문을 보낸 것은 2월24일. “처음에는 천주교 주교회의가 뭐냐고 묻더라. 그래서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해 주교 22인의 명단을 보내주었다”라고 주교회의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그 뒤 국장급을 보내겠다던 사업본부는 총회를 사흘 앞둔 3월5일 금요일 퇴근시간 직후, 급작스럽게 불참 통보를 해왔다. 이유도 알 수 없는 일방적인 불참 통보였다(추진본부는 이유를 묻는 시사IN의 취재에 '이미 끝난 일'이라고만 답했다).

국토부, 주교회의 사흘 전 불참 의사 통보

이에 주교회의 행정실에서 SOS를 청한 것이 국무총리실이었다. 국무총리실이 주말 동안 조정에 나서면서 국토해양부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총회 당일인 3월8일 오전 참석할 뜻을 통보하더니, 그날 오후 총회에는 국토해양부 차관을 비롯해 심명필 4대강추진본부장, 김희국 부본부장 등 고위급 간부 5명이 출동했다. 비공개였던 이날 설명회는 찬성 토론 40분(정부 측), 반대 토론 40분(김정욱 서울대 교수), 질의응답 40분 순서로 이뤄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 설명으로 정부가 천주교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기총회를 마친 3월12일 주교단은 “정부 실무진의 설명을 들어보았지만, 우리 산하에 회복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대규모 공사를 국민적인 합의 없이 법과 절차를 우회하며 수많은 굴삭기를 동원하여 한꺼번에 왜 이렇게 급하게 밀어붙여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주교단이 공식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일정한 선을 넘은 것’이라는 평가이다.  한 사제는 “주교들이 ‘4대강=반생명’이라는 인식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이상 이것이 교계에 미칠 영향은 엄청나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박형준 정무수석은 앞으로 4대강 사업이 생명 살리기라는 천주교 정신에 부합한다는 것을 적극 알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천주교 사정에 밝은 한 종교 전문 기자는 “주교단은 성향이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주교단이 나서기 전에 정부가 어떻게든 성의를 보여야 했다”라고 말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기 어렵게 됐다는 뜻이다. 이것이 정부의 자승자박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동훈 신부는 “이 정부가 4대강 사업을 하면서 국민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한 일이 있나. 천주교와의 소통 실패는 그 한 단면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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