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3일,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에 자리한 오리엔트바이오 본사 앞에서 동물보호단체 회원 20여 명이 ‘1분 묵념’을 했다. 고개 숙인 사람들 다리 사이를 유기견 보호소에서 외출 나온 비글 강아지 웅이(수컷·1세)가 꼬리를 흔들며 빙글빙글 돌았다. 사람들의 묵념은 실험실에서 죽어간 웅이 친구들을 위한 것이었다.

집회가 열리기 2주일 전, 몇몇 경제지에 짧은 기사가 하나 실렸다. ‘오리엔트바이오, 고품질 생물 소재 비글견 대량생산 기술 도입.’ 국내 생물학적 제제 제조업체인 오리엔트바이오가 미국 임상시험 대행업체 코반스(Covance)사와 공동협력 합의서를 맺어 ‘고품질’ 실험동물 비글견을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도입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기업 동향 기사였다.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은 이 ‘참담한 소식’을 듣고 13일 오리엔트바이오 본사 앞에 모여 성명서를 낭독하고 퍼포먼스를 벌였다. 동물실험 회사를 향한, 우리나라에서 열린 최초의 항의 집회였다.

ⓒ시사IN 조남진10월13일 오리엔트바이오 본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동물사랑실천협회 등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비글견을 데리고 ‘동물실험 반대’를 위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동물실험은 늘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500만여 생명이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실험대에 오른다(2007년 국립독성연구원 추정치). 동물실험을 수행하는 곳도 국공립 연구소 60여 곳, 대학 연구실 300여 곳, 민간 실험실 600여 곳으로 모두 1000여 곳에 이른다. 쥐·토끼·기니피그·돼지 등 우리나라 기업에서 직접 ‘생산’하는 실험동물도 200만 마리(2006년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자료)에 달한다. 오리엔트바이오 역시 실험동물을 생산·판매하는 숱한 기업 가운데 한 곳일 뿐이다. 다만 “그간 주로 수입에 의존해오던 고품질 비글견과 영장류를 대량생산해 아시아 시장에 보급하겠다”라는 포부를 밝힌 게 도화선이 되었다. 부글부글 끓고 있던 동물보호운동가들이 이참에 “동물실험 반대”를 외치고 나섰다.

인간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침을 흘리는 조건반사 실험에 동원된 ‘파블로프의 개’는 매우 운이 좋은 실험동물이었다. 인간의 이익 증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실험대에 오르는 동물들은 대개 그보다 훨씬 못한 처우를 받았다. 1970년대 미군 생체의학 연구개발 실험실에 들어간 비글 강아지 60마리는 6개월 동안 폭발성 화학물질인 TNT(트라이나이트로톨루엔)를 먹는 실험 대상으로 살다가 차례차례 죽어갔다. 중국 충칭 제3군대 의학대학에서는 비글 37마리가 마취주사도 맞지 않은 채 네이팜탄 화염방사 실험에 동원돼 세계 동물보호단체들이 항의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원숭이들은 ‘코카인 중독성 실험’과 1년 동안 스테인리스 방에 가둬두는 ‘고립성 실험’에, 토끼들은 주로 ‘눈 자극 실험’에 사용된다. 인체에 자극이 적은 화장품이나 세제 등을 개발하기 위해 인간들은 토끼 몸을 고정한 채 시료를 눈에 주입하고 염증이 나타나는지를 관찰한다.

ⓒIAAPEA해외 한 연구실에서 실험대에 오른 개. 표정이 힘겨워 보인다.
동물실험 옹호론자들은 동물실험이 필요악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보다 실험 대상의 통제가 간단하고 연구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이제껏 동물실험으로 얻은 의학?생물학?심리학의 발전이 엄청나다는 이유로 동물실험을 포기하지 못한다. 하지만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동물실험 무용론을 말한다. 매년 100만명 이상의 환자가 약물 거부반응으로 죽는데, 이들이 복용한 약물은 모두 동물실험을 통해 개발됐다는 것이다. 1960년대 각종 동물실험에서 부작용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부작용 없는 기적의 약'으로 선전된 입덧 방지용 수면제 탈리도마이드가 1만여 명의 기형아를 만들고, 1976년 쥐?고양이?개 실험을 통과한 지사제 클리오퀴놀이 일본인 1만여 명의 시력을 망가뜨리는 등 세계에서 벌어진 숱한 동물실험 실패 사례가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동물 보호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동물실험의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세계적으로 대체 방안을 찾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가장 앞선 곳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이다. 영국은 1959년에 동물실험 시 지켜야 할 ‘3R 원칙’(다른 방법을 찾아보고(replacement) 고통을 최소로 하고(refinement) 실험 횟수를 줄이라(reduction))을 정립해놓고 해외 과학계에 전파해왔다. 2004년 유럽연합(EU)은 대체실험검증센터를 설립해 민간에서 개발되는 대체 연구법을 검증?인가하기 시작했고, 올해부터는 동물실험을 통해 만든 화장품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했다.

미국?일본도 각각 대체실험인증센터를 마련해 동물실험을 대신할 연구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미국 환경청(EPA)과 독성연구 프로그램(NTP), 국립보건원(NIH)이 “동물을 이용한 물질 안정성 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대신 컴퓨터 모델을 이용한 실험 방법을 개발하겠다”라고 밝혔다. 미국 버지니아?메릴랜드 등 14개 주에서는 학생들에게 ‘동물 해부실험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학점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를 주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동물보호운동가들의 꾸준한 청원으로 동물실험에 관한 규제가 일부 마련됐다. 지난해 2월, 동물실험을 행하는 기관이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동물보호법’이 개정됐다. 올 3월부터는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윤리적 규제가 더 촘촘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허점이 많다. 감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행해지는 민간 연구소의 동물실험이 부지기수다. 동물실험 기관에서 입맛에 맞는 외부 인사를 내정해놓은 채 동물보호단체에게 추천인 이름만 빌려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3인 이상 15인 이내의 위원 중 동물보호단체 등 민간단체의 추천 인사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정해놓은 규정도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에선 1987년 12만 마리인 실험동물이 2007년 500만 마리(추정)로 늘어날 만큼, 동물실험 비중을 줄여나가려고 노력하는 선진국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조만간 한국에서 ‘대량 생산’하기로 한 비글종 강아지는 “목에 칼을 들이대도 꼬리를 치며 반길 정도로 순진하다”라는 이유 때문에 많은 견종 가운데 실험 대상견으로 인기를 얻었다. 생쥐는 싸고 작아서, 토끼는 눈이 민감해서, 원숭이는 사람과 비슷해서 실험동물이 되었다. 철학자 피터싱어는 동물이 인간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함부로 이용해도 된다는 ‘종 차별주의’는 인류가 이제껏 행해오던 ‘인종 차별주의’와 별로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언젠가 지금의 인류가 뼈아프게 부끄러울 것이라고 예견한다. “언젠가 우리 후손들이 지금 연구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책을 통해 알게 된다면, 우리가 로마시대 검투사 시합장과 8세기 노예 무역시장에 대한 글을 접했을 때의 혐오감과 똑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다.”

*참고한 책/〈동물해방〉:피터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인간사랑 펴냄.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레이 그릭 지음, 윤미역 옮김, 다른세상 펴냄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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