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연 제공길고양이는 사람에게 경계심이 많지만 오랫동안 공들여 정을 쌓으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도시의 길에는 사람이 산다. 틀렸다. 도시의 길에는 사람과, 끈질기게 살아남은 몇 가지 짐승이 산다. ‘몇 가지 짐승’은 다음과 같다. 비둘기, 고양이.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으며”(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살아남은 비둘기는 지난 3월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됐다.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은 사람은 이제 비둘기를 잡아 죽일 수 있다.

이제 남은 건 고양이다. 사람에게 ‘요물스럽고 신경통에 좋기로’ 소문난 고양이는 사람 눈을 피해 도시 구석구석에서 고된 생을 이어간다. 더럽고,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발정기가 되면 아기 울음소리를 내고,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털을 세우고 몸을 부풀리는 탓에 많은 도시 사람은 고양이를 미워하거나 무서워한다. 발을 굴려 쫓아내고, 밥에 독을 타거나 석궁을 쏴 죽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안다. 고양이만큼 자기 몸이 더러운 걸 못 견디는 동물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러운 고양이는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것을, 일정한 먹이가 주어지면 고양이는 절대로 쓰레기봉투를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존이 위협받을수록 아기 울음소리가 더 잦아진다는 것을, 극한의 두려움을 느꼈을 때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책이 털 세워 몸 부풀리기라는 것을 알기에 이 ‘어떤 이’들은 도시에 사는 고양이를 ‘도둑고양이’ 대신 ‘길고양이’라고 부르며 어여삐 여긴다.

사람들이 자신을 가여워하든 미워하든 길고양이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아무리 척박한 환경일지라도 사람에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간다. 어쩌다 집에 들여놓아도 ‘함께 지낼’ 뿐 ‘키워지지’ 않고, 개처럼 꼬리를 흔들며 복종하지 않는 길고양이를 보고 도시의 많은 문화예술인이 영감을 얻었다. 사진가는 길고양이 사진을 찍고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린다. 이들의 사진과 글, 그림에는 길고양이를 향한 연민과 미안함, 흠모의 감성이 함께 섞여 있다.
 

ⓒ박은경 그림길고양이를 거둬 집에서 함께 지내는 두 일러스트레이터의 고양이 그림.

“길고양이는 부서진 자연의 파편 같다”

일러스트레이터 박은경씨(30)가 그리는 고양이는 워낙에 도도하고 화려한 양탄자 위에 앉아 있어 ‘품종묘’로 보인다. 친구 고양이와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 속 고양이도 모델로 삼지만 주로 그리는 얼굴은 고등어 무늬의 열두 살 고양이 ‘마리’. 11년 전 길에서 거지꼴을 하고 울던 것을 데려와서 여차저차 사람 나이 아흔 살이 되도록 함께 살았다. 6년 전 들인 새끼 고양이 형제 3마리도 집 앞 공사장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길고양이였다. 박씨의 그림을 보면, 털 색깔이 어떻고 족보가 있는지 없는지에 관계없이 고양이는 모두 화려하고 예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씨는 “부서진 자연의 파편 같아서” 어릴 적부터 길고양이와 비둘기에 애틋한 마음을 가졌다.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던 대학교 3학년 때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사업(TNR)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모임에 참가한 박씨는 고양이 그림을 촘촘히 넣은 달력을 만들어 힘을 보탰다. 그림이 예뻐서 입소문이 났고, 다이어리를 만들어 한번 내놔보니 판매도 잘 됐다. 2003년 사업자 등록도 하고 일본과 캐나다 등지에 수출까지 하게 됐다. 박씨는 수익의 8%를 지금까지 길고양이를 위한 후원금으로 내놓고 있다.

미학 측면에서도 고양이가 좋지만, ‘망가진 자연의 상징’ 같아서도 박씨는 길에 사는 고양이에게 마음이 끌린다. “인간이 모든 도시 공간을 점유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폭력적으로 내쫓고, 베어버리고, 부숴버리고…. 이런 심성이 용산 철거민 사건처럼, 결국 인간에게도 향하는 것 아닐까요?”

“고양이가 사라진 동네, 좋을까요?”

황인숙 시인(51)은 본 적 없는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준다. 10마리에게 밥을 준다고 하면 고작 한두 마리의 얼굴만 구경해봤다. 없어지는 사료를 보고 ‘아, 많이 먹는 애들 대여섯 마리가 요 근처에 사는구나’라고 지레짐작할 뿐이다. 황 시인이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왠지 고양이가 좋아할 만한 장소를 물색한다. 예를 들면 오래도록 주차해놓은 큰 트럭 바퀴 뒤, 연립주책 1층 테라스와 땅바닥 사이 같은 곳 2.너무 많지 않도록 양을 조절해 그릇 두 개에 고양이 사료와 물을 담고 그곳에 둔다 3.수시로 내다보며 그릇이 비었는지, 누가 해코지는 안 하는지 확인한다 4.그릇이 비고 안전한 곳이라고 판단되면 매일 그곳에 먹이를 둔다 5.가끔 먹으러 오는 ‘그놈’ 얼굴을 보게 되면 흐뭇한 마음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그 과정이 제대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끔 아무리 빈 그릇을 바로 치우고, 비 오거나 바람 부는 날에 사료가 주변에 널브러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도 누군가는 계속 먹이 그릇을 버리고, 먹으러 오는 고양이에게 돌을 던지고, 사료에 모래를 섞어놓고, 심지어는 독극물도 부어둔다. 그렇다고 먹이 주는 일을 중단하면 더 이상 쓰레기봉투를 찢지 않는 길고양이들은 굶어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황 시인은 매일 안전한 곳으로 그릇을 숨기고, 또 숨긴다. 황 시인은 길고양이 먹이 주는 일이 “무슨 독립운동 같다”라고 말했다.

황 시인은 옥탑방에 살면서 처음 길고양이와 인연을 맺었다. 먼젓번에 살던 옥탑방에서 내려가면 보이는 1층 작은 뜰에서 큰 길고양이를 종종 만났다. 모습이 어여뻐 몇 번 먹이를 줬는데, 그가 낳은 새끼 고양이들 중 한 마리가 옥상까지 올라왔다. 황 시인은 “차라리 고양이를 모르고 살 때가 세상이 더 아름다웠다”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시어로 나긋나긋 시를 쓰는 황 시인도 고양이 이야기를 담을 때면 시에서도 목소리를 약간 높인다. “고양이들이 사라진 동네는/ 사람의 영혼이 텅 빈 동네입니다/ 이만저만 조용한 게 아니겠지요/ 그러면, 좋을까요?” (황인숙, 〈고양이를 부탁해〉 중)

‘버려진 것’의 쓸쓸함을 무조건 찍고 또 찍고…

포털 사이트 다음(daum) 메인 화면에 뜬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클릭하면, 백이면 백 길고양이 블로거 고경원씨(34)의 블로그(http://catstory.kr)로 넘어간다. 가회동 고양이, 이태원 고양이, 밀레니엄 삼색 고양이, 신사동 카오스 고양이, 오금동 턱시도 형제 등 고씨가 서울 곳곳에서 만난 길고양이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길고양이’로만 1000여 개 포스트를 쓰고 파워 블로거로 여러 곳에서 상도 받았다.

 

 

 

 

ⓒ고경원 제공김하연씨가 새벽에 길고양이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이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 꽤 친한 사이다.

2001년 봄, 서울 서대문역 근처 철거촌에서 길고양이 세 마리를 만났을 때만 해도 고씨는 자신이 ‘길고양이 전문 블로거’가 될 줄 몰랐다. 아무도 찾지 않는 철거촌 골목길, 버려진 캐비닛 사이에 그들이 있었다. ‘똑딱이’ 카메라로 사진 찍기를 즐기던 고씨는 일단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버려진 것’의 쓸쓸함이 배인 그 사진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이후 길에서 길고양이를 만나면 무조건 찍어서 글과 함께 블로그에 올렸다.

누군가는 묻는다. 버려진 고양이도 불쌍하지만 버려진 사람부터 챙겨야 하지 않느냐고. 고씨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대답한다. “물론 생명을 돕는 일에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생명을 우선순위에 따라 줄 세울 때, 그 줄에서도 저만치 뒤로 밀려난 존재들은 누가 돌봐줄까? 아무리 기다려도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 뒷줄에 서서 죽어가는 길고양이들을 생각하며 길고양이 사진을 찍고 기사를 쓴다.”(고경원,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 중) 

“부모 같고, 나 자신 같아 카메라에 담는다”

한겨레신문 서울 봉천지국장 김하연씨(40)는 매일 새벽 신문 배달을 나설 때마다 4kg짜리 카메라 가방을 챙긴다. 조용한 거리에서 오토바이 소리를 내며 달리면 곳곳에 숨어 있던 길고양이들이 얼굴을 내민다. 어떤 길고양이는 “개처럼 뛰어와” 김씨 다리에 몸을 비빈다. 김씨는 그들에게 먹이를 챙겨주거나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다. 엎드려 길고양이 사진을 찍는 김씨에게 가끔 행인이 다가와 혀를 찬다. “그걸 뭐 하려고 찍는대요? 어이구 참, 일도 없네.”

‘개처럼 살갑지 않아’ 김씨도 원래 고양이를 싫어했다. 2006년, 신문 배달 도중 틈틈이 찍은 풍경 사진들 중 몇 개를 골라 아마추어 사진전에 냈다. 별 생각 없이 찍은 길고양이 사진도 2점 섞여 있었다. 심사를 맡은 프로 사진가가 제안했다. “고양이가 여러 가지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조금 더 찍어봐라.” 피사체를 알아야 하니 인터넷과 책을 뒤지며 고양이를 공부했다. 알고 나니 고양이가 더 좋아졌다. 2007년부터 고양이 사진 개인전을 두 번 열고 개인 블로그(http: //ckfzkrl.egloos.com)에 길고양이 사진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김하연 제공길고양이를 만나고 싶으면 ‘틈새’를 잘 노려야 한다. 자동차 밑, 주택가 좁은 담장 사이처럼 조금만 외진 곳이다 싶으면 그들이 있다.

자동차 밑, 오토바이 바퀴 뒤, 길모퉁이 옆처럼 조금이라도 외진 곳이면 그곳에 길고양이가 있다. 김씨는 항상 엎드리거나 쭈그리고 그들을 찍는다. 길고양이의 눈높이로 보는 도시 풍경은 매정하고 살벌하다. 자동차 불빛도,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길고양이에게는 너무 크고 시끄럽다. 김씨는 “눈에 안 띄고 피해 주지 않으려고 자꾸 자신을 격리시키는” 길고양이를 보고 부모를 떠올렸다. 또 자신과도 닮았다고 생각했다. “도시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꼭 내 모습 같더라고요.”

취향은 도덕이 아니다. 길고양이가 예쁘고 위험하지 않은 동물이라고 100명이 설득해도 ‘그냥 정이 안 가는’ 한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길고양이 매력에 반하고, 미안해하고, 그래서 이런저런 도움을 주려고 뛰는 길고양이 애호가 중 아무도 세상 사람들에게 “길고양이를 예뻐해주세요”라는 부탁을 하지 않는다. 다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라고 말한다. 다만 이 정도만 부탁한다.
“‘아, 저 고양이들이 우리 사는 도시 속에서 함께 살고 있구나’ 정도만 인식해달라. 또 굳이, 아무런 이유 없이 괴롭히지만 말아달라.” ‘길고양이’라고 부를 때의 ‘길’은 꼭 사람만의 길이 아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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