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맥그로드 간즈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땅이다. 망명정부라고는 하지만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면 그저 티베트 난민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인도에는 이런 티베트 난민촌이 꽤 여럿인데, 맥그로드 간즈가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달라이 라마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맥그로드 간즈를 처음 방문한 때는 1999년이었다. 그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이곳을 찾은 게 아니었다. 해발 2000m 정도 되는 이 지역에 우리네 수제비와 칼국수 같은 국물 요리를 파는 곳이 있다기에 갔던 터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향한 그곳에서 난민들을 봤다. 아니 난민은 무슨, 그냥 청소년 거지 떼였다. 몇 달간 머리를 안 감으면 어찌 되는지, 거지발싸개가 어찌 생긴 물건인지를 알 수 있게 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겨울의 칼바람을 뚫고 티베트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의 맥그로드 간즈로 넘어왔다. 티베트에 사는 부모가 자식만이라도 티베트 사람으로 키워내고 싶다는 열망으로 길잡이를 붙여 죽음을 무릅쓰고 월경을 시킨 아이들이었다. 차이(인도식 홍차)를 마시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나서는 두 끼 정도 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처럼 비참한 인간의 몰골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그 시절 미국 정보기관들은 경제개발의 과실을 따먹은 중국이 곧 산산이 쪼개질 거라는 전망을 내놓곤 했다. 그 전망을 망명정부 내 모든 티베트인도 공유했다. 그들은 언젠가 자기들이 티베트의 독립을 위해 봉기하면 미국이 도울 것이고 중국 내 티베트 주민들도 호응하리라 굳게 믿었다. 헛된 희망이라 말할 자신은 없었다.
지금은 맥그로드 간즈의 누구도 20년 전과 같은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굳게 입을 다물고 각자 돈 벌어 해외로 나갈 궁리만 한다. 승려도, 세속의 주민도 서로 다르지 않은 희망을 품고 산다. 알코올의존자가 늘었고, 싸움이 잦아졌다. 희망이 사라진 상태에서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그도 이제 나이 여든넷이나 된 노인일 뿐인데 말이다.
얼마 전 1999년에 만난 아이 중 하나가 미국에 정착했노라고 안부를 전해왔다. 공부를 꽤 잘한 덕에 서양인 독지가를 만나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된 친구다. 미국으로 건너갈 때만 해도 다시 돌아와 망명정부의 동량이 되겠다던 그의 희망도 이제는 간데없다. “미국에서 열심히 살아라. 어서 동생도 데려가야지.” 그저 평범한 안부만 묻고 말았다.
‘Free Tibet’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중국인 여행자
이제 인도에도 중국인 배낭여행자가 늘고 있다. 티베트란 지역에 대해 어떤 정보도 없는 그들은 맥그로드 간즈를 자기네 동포가 모여 사는 곳이라 생각하며 찾는다. 어쩜 눈치가 이리도 없는지. 티베트 난민이 운영하는 숙소의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왜 ‘프리 티베트(Free Tibet)’인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한 중국인 여행자가 ‘프리 티베트’가 무슨 뜻이냐고 묻기에 보다 못해 중국어로 제팡시짱(解放西藏·티베트 독립)이라고 쏘아붙이고는 숙소 주인장이랑 하이파이브를 했다. 요즘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런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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