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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도 가입한 한기총 영향력 쪼그라들었다”

한기총 해체 운동을 주도했던 양희송 대표는 금권선거 논란 이후 주요 교단과 대형 교회가 대거 이탈하면서 한기총이 취약해졌다고 말했다. 이단과 사이비 교단도 받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2019년 07월 09일 화요일 제6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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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목사는 어떻게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개신교 조직인 한기총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내부는 어떤 상황인가?

양희송 청어람ARMC 대표는 이런 의문에 답변할 수 있는 인물이다. <세계관 수업>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등 저서를 펴내고 종교·교양 강좌로 개신교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져왔다. 과거 ‘한기총 해체 운동’을 주도했던 양 대표로부터 전광훈 회장에서 한기총, 한국 개신교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윤성희
양희송 청어람ARMC 대표는 “전광훈 목사 탓에 한기총 나름대로 지켜온
위상마저 잃게 됐다”라고 말했다.


전광훈 한기총 회장의 행보를 어떻게 보나?

개신교 전체를 염두에 둔 것도 아니고, 한기총이라는 자기 조직에도 위협적인 행보다. 전광훈 목사의 언행 때문에 한기총은 그간 나름대로 지켜온 위상마저 잃게 됐다. 조직을 협소하고 극단적인 위치로 내몬다. 전광훈 회장이 도무지 통제되지 않고 자기 페이스대로 가니까 한기총 안의 사람들(한기총 정상화를 위한 임원 및 회원교단장 비상대책위원회)도 위험하다고 보는 거다. ‘적정선’에서 관리가 안 되니까.

전광훈 목사는 어떻게 회장이 된 건가?

조직이 취약해진 결과다. 기존 한기총의 내부 논의 구조는 3파전 양상이었다. 주요 교단, (주요 교단에 속하지 않은) 대형 교회, 군소 교단 연합이다. 아무래도 주요 교단들 쪽 지분이 높았다. 이들이 움직여야 한기총 덩어리 전체가 움직였다. 그런데 2010년대 초반 대표회장 선출 과정에서 금권선거 논란이 세게 붙고, 이 과정에서 한기총 해체 캠페인까지 벌어지자 주요 교단들과 대형 교회가 대거 이탈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기총이 이전에 가졌던 덩치나 영향력은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지금의 한기총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하다. 이 과정에서 보수 행보로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전광훈 목사가 대표로 뽑히게 되었다. 주요 교단과 대형 교회가 들어가 있었다면 이런 인물을 추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요 교단과 대형 교회가 중심이었던 과거 한기총이 지금보다 나았다는 말인가?

국내 개신교 교단이 250개쯤인데 절반 정도는 이름만 있고 파악이 잘 안 된다(문화체육관광부의 지난해 1월 발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개신교 교단은 총 374개이고, 교세 등이 확인되지 않은 교단은 248개다). 어떤 곳이 사이비이고 이단인지, 어디가 제대로 된 데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군소 교단들은 스스로의 존재감이나 정통성을 한기총 가입으로 인정받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주요 교단들이 빠져나가고 존립이 위태로워진 한기총은 이단과 사이비로 낙인찍힌 교단들도 받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한국 개신교의 건강성을 확보하는 제일 큰 집단’이라는 한기총의 존재 의의가 완전히 무너졌다.

주요 교단이 이탈하기 전에도 한기총은 종종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았나?

2000년대 초반에 조직된 서울시청 앞 기도회가 시초였다. 그 전에는 한기총이 대대적 시위의 주체가 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한기총과 대형 교회가 기도회를 하면, 끝난 뒤 우파들(정치 세력)이 똑같은 자리에서 ‘반핵 반김 집회’를 한다. 사람을 동원하고 물자와 장비를 지원하는 본목적은 사실 우파 집회인데, “우리는 기도회를 한 것”이라고 핑계를 대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이명박 장로 대통령 만들기’가 슬로건으로 등장하면서 (교인들을) 동원하기가 좀 쉬워졌다.

2000년대 대형 교회들이 한기총 집회를 후원한 까닭은?

여러 측면이 있다. 우선 해방 후부터 개신교 전반에 잠재된 반공 코드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이 정서를 촉발한 계기는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였다. 대부분 사학이 개신교이다 보니 운영자들의 이해관계가 위협받았다. 재정적 비리처럼 불리한 이슈가 있을 때 한기총의 틀을 통해 정부와 날을 세워 해결하기도 한다. 비리가 아니라 ‘반공’ 같은 이념 때문에 핍박받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다.
2006년 1월 ‘기독교 사학 수호를 위한 한국교회 비상 구국기도회’가 열렸다.

대형 교회의 후원을 받아온 한기총은 자금력이 풍부한가?

아니다. 2000년대에 기이하다고 봤던 게, 한기총이 재정적으로 취약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회원단체가 그렇게 많은데도 내부적으로 경상비용도 확보가 안 됐다. 돈이 없으니 이벤트를 벌일 수 없고, 목돈 들고 온 사람이 큰소리치는 구조가 됐다. “대표회장이 되면 10억원을 내겠다”는 공약을 걸고 당선된 목사도 있다. 한기총은 대형 교회를 스폰서로 끌어와서 집회를 한번 크게 치러야 안팎으로 존재감도 있어 보이고 그 명목으로 후원도 받는 조직이다. 평상시 회비를 모아서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조직이 아니다. 교계에는 그런 조직이 꽤 많다. 교단과 달리 한기총 같은 연합기구들 중에는 덩치만 크고 사실상 사무실도 운영하지 못하는 곳이 꽤 있다.

전광훈 회장은 ‘기독교는 원래 정치하는 곳’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조용기 목사도 비슷한 주장을 폈다.  

기원을 따지고 보면 해방 시기 지도자들은 다 그런 생각을 했다. 일제가 물러나면 누가 나라를 운영할 것인가? 개신교층이 가장 개화되어 있고 인적 커넥션도 있었다. 이승만 정부 때도 목사 출신 국회의원이 많았고, 종교색도 꽤 드러냈다. 엘리트 그룹 상당수가 개신교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얘기(기독교 입국론)가 자연스러웠다. 1990년대 이전까지도 정권의 중심인물들은 교회에 나갔고, 거기서 모인 사람들이 직간접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개신교가 어떤 식으로든 정치권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교계에서) 했을 수는 있다. 집사 대통령이나 장로 대통령이나 목사 대통령인데, 1992년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어 장로 대통령을 만들었다. 어찌됐든 민주화운동을 했던 김영삼 대통령과 달리, 이명박 후보를 밀 때는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랐다. ‘개신교인이 권력을 장악한다. 그러면 개신교에 정치권력을 나눠줄 것이다’가 끝이었다.

개신교가 받을 실질적 이득을 위해 정치인을 지지한다?


이해관계에 근접한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대중이 구체적 이해관계를 보고 지지하진 않는다. 오히려 넓은 의미의 ‘기독교적 승리주의’에 가깝다. “크리스천이 세상에 나가서 경쟁에 임해 이겼다!”라는 대리만족의 정서다. 당연히 이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도 올려드린다. 수많은 교회 간증이 “예수 믿고 열심히 했더니 성공했고 복 받았다. 영광 돌리며 교회 안에서 살겠다”라는 구조다. 정치인의 간증은 교인 유권자에게 인간적 호기심과 호감을 유발한다. 전국에 교회 없는 데가 어디 있나? 개신교인 정치인에게는 굉장한 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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